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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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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65〉

    발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65〉

    발열 ―정지용(1902∼1950) 처마 끝에 서린 연기 따라 포도순이 기어나가는 밤, 소리 없이, 가물음 땅에 쓰며든 더운 김이 등에 서리나니,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아오르노나. 가쁜 숨결을 드내쉬노니, 박나비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 입술을 붙이고 나…

    • 20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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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 가는 길[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64〉

    남산 가는 길[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64〉

    남산 가는 길 ―민병도(1953∼) 구름을 타고 가네, 걸어서는 가지 못하네 넘어져 본 사람만이 저 산에서 짐작하리라 산새도 슬픔이 있어 돌아앉아 운다는 것을 바람은 제 입 속으로 마른 댓잎을 던져 넣고 연꽃을 든 문수보살 돌 밖으로 나투시면 첫눈이 절 가는 길을 허리춤에 …

    • 202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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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식탁[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63〉

    아침 식탁[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63〉

    아침 식탁 ―이우걸(1946∼ ) 오늘도 불안은 우리들의 주식이다 / 눈치껏 숨기고 편안한 척 앉아보지만 / 잘 차린 식탁 앞에서 식구들은 말이 없다 싱긋 웃으며 아내가 농을 걸어도 / 때 놓친 유머란 식상한 조미료일 뿐 / 바빠요 눈으로 외치며 식구들은 종종거린다 다 가고 남…

    • 202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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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의 동경[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62〉

    힘의 동경[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62〉

    힘의 동경 ―오상순(1894∼1963) 태양계에 축이 있어 한 번 붙들고 흔들면 폭풍에 사쿠라 꽃같이 별들이 우슈슈 떨어질 듯한 힘을 이 몸에 흠뻑 느껴보고 싶은 청신한 가을 아침― 이 시는 공초 오상순의 것이다. 공초 선생은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고, 집도 없었…

    • 20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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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길[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61〉

    밤길[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61〉

    밤길 ― 장석남(1965∼ ) 밤길을 걷는다걸음은 어둠이나 다 가져라 걸음 없이 가고 싶은 데가 있으니 어둠 속 풀잎이나 바람결이나 다 가져라 걸어서 닿을 수 없는 데에 가고 싶으니 유실수들 풋열매 떨어뜨리는 소리 이승의 끝자락을 적신다 (…)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법이…

    •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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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탄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60〉

    성탄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60〉

    성탄제 ― 김종길(1926∼2017) 어두운 방 안엔 / 바알간 숯불이 피고, /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 이윽고 눈 속을 /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 20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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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에 걸리는 말[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9>

    목에 걸리는 말[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9>

    인간을 믿으세요? 쓸쓸히 묻는 당신의 말에는 뼈가 들어 있다. 밤이 깊어지면 나는 그것을 안다. 까마귀 떼가 서쪽으로 날아가는 이 는개 속에서 당신 말의 뼈가 목에 걸린다. 희디흰 당신의 외로움을 등 뒤에서 나는 찌를 수가 없다. 당신의 말은 타오르는 석윳불, 밤이 깊어지면 나의 말…

    • 202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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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우[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8〉

    동우[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8〉

    동우 ―심훈(1901∼1936) 저 비가 줄기줄기 눈물일진대세어보면 천만 줄기나 되엄즉허이, 단 한 줄기 내 눈물엔 베개만 젖지만 그 많은 눈물비엔 사태가 나지 않으랴. 남산인들 삼각산인들 허물어지지 않으랴. 야반에 기적소리! 고기에 주린 맹수의 으르렁대는 소리냐 우리네 젊은 사람의…

    • 202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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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자[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7〉

    문자[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7〉

    문자 ―김경후(1971∼ ) 다음 생애/있어도/없어도/지금 다 지워져도 나는/너의 문자/너의 모국어로 태어날 것이다 우리는 정지용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곧잘 기억한다. 유명한 시 몇 편이 따라오는 유명한 시인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정지용이 유명한 걸까. 그건 바…

    • 20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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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6〉

    사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6〉

    사람? ―김휘승(1957∼) 사람이었을까 사람이 아니었을까,서로 깃들지 못하는 사람 밖의 사람은. ……지나간다, 아이는 웃고 울고, 때없이 꽃들은 불쑥 피고, 눈먼 웃음 소리, 휙 날아가는 그림자새, 곧 빗발 뿌릴 듯 몰아서 밀려오는 바람에 사람이 스친다, 비바람에 귀가 트일 때 사…

    • 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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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사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5〉

    어떤 사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5〉

    어떤 사람 ―신동집(1924∼2003)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별을 돌아보고 늦은 밤의 창문을 나는 닫는다. 어디선가 지구의 저쪽 켠에서 말 없이 문을 여는 사람이 있다. 차갑고 뜨거운 그의 얼굴은 그러나 너그러이 나를 대한다. 나즉히 나는 묵례를 보낸다. 혹시는 …

    •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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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물에만 눈물이 난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4>

    강물에만 눈물이 난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4>

    강물에만 눈물이 난다 ― 허연(1966∼) 어차피 나는 더 나은 일을 알지 못하므로 강물이 내게 어떤 일을 하도록 내버려둔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강물이 내게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다 한 번도 서러워하지 않은 채 강물이 하는 일을 지켜본다 나는 오직 강물에만 집중하고 강물에만 눈물이…

    • 2020-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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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점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3〉

    종점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3〉

    종점들 ―이승희(1965∼ ) 이제 그만여기서 살까 늙은 버드나무 아래 이름표도 없이 당신과 앉아서 북해의 별이 될 먼지들과 여기와 아무 데나를 양손처럼 매달고 웃었다 세상의 폐허 말고 당신의 폐허 그 둘레를 되짚어가면서 말이죠 폐허의 옷을 지어 입으면 등은 따뜻할까요 머뭇대다가 지…

    • 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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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2〉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2〉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이원하(1989∼) 유월의 제주/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중략… …

    • 20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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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편[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1〉

    장편[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1〉

    장편 ―윤제림(1960∼) 전화기를 귀에 바짝 붙이고 내 곁을 지나던 여자가/우뚝 멈춰 섰다 “……17호실? 으응, 알았어 응 그래 울지 않을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운다 짐승처럼 운다 17호실에…… 가면 울지 않으려고 백주대로에서 통곡을 한다 이 광경을 김종삼 시인이 물…

    •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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