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야

최고야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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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고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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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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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땐 뜨거웠는데” 둘만 있으면 고구마 삼킨 듯…우리 사이 괜찮을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3년 차 부부의 이혼과 재결합 과정을 그린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는 고구마 삼킨 듯 답답한 장면이 자주 나온다. 유산의 아픔을 겪은 후 냉랭한 결혼생활을 이어 온 남녀 주인공은 오해가 쌓이면 적극적으로 풀기보다 침묵을 택한다. 서운하거나 화가 나도 입을 다문다. 한때는 좋았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갈등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온 긴 시간동안 오해가 겹겹이 쌓여 결국 결별에 이른다.드라마 얘기지만 사실 주위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다. 배우자, 연인과 갈등을 회피하다 골이 더 깊어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외롭고,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된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에 빠지기도 한다.싸우는 것보단 아무 말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큰 오해다. 당장 기분이 상하고 언짢아지더라도 일단 소통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 부부, 연인 간 소통의 중요성을 입증한 여러 연구를 살펴보자. ● ‘충성’ 다해도…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대화하지 않는 부부, 연인이 행복할 수는 없다. 심지어 상대를 배려하고, 용서하고, 공감해주려고 속으로 애쓴다고 해도 말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연인 28쌍에게 2주 동안 두 사람 간 있었던 일을 일기로 쓰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했고, 그 결과는 어땠는지 자세히 적도록 했다. 이를 토대로 연구자들은 연인들이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을 아래 4가지로 나눴다. ·탈출: 끝을 암시(“더는 못하겠다”), 소리 지르거나 때림.·방치: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소통하지 않음.·충성: 상대의 잘못을 인내, 공감하려고 노력.·대화: 갈등을 공론화해 이야기함.그리고 어떤 대처방식이 관계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 살펴봤다. 가장 해로운 건 ‘탈출’로 명명된 방식이었다. 헤어지자고 말하거나, 소리 지르고 뺨을 때리는 위협은 그 끝이 가장 안 좋았다. 갈등을 회피하고 상대를 무시하는 ‘방치’ 유형도 이에 못지않게 해로웠다. 근본적 해결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이 흘러 오해를 더 키워갈 뿐이었다. 여기까진 충분히 상식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이 연구의 핵심은 상대에게 믿음을 버리지 않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충성’ 방식이 생각보다 효과가 없다는 데 있다. 상대를 배려하고, 잘못을 용서하고, 공감해주는 것은 인격적으로도 상당히 훌륭한 대응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조용한’ 노력은 상대방에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해, 배려, 용서는 특정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기에 상대에게 크게 와닿지 않아서다. 오히려 상대방에겐 이런 행동이 모호해 보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갈등을 회피하거나 방치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어느 광고 카피 문구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가 아니라,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가 더 맞는 말처럼 보인다.그래서 연구팀은 내가 상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굳이 말을 해서 생색을 내는 편이 낫다고 조언한다. (물론 이 또한 지나치면 부작용이 있다) 겉으론 아무 말 안 하고 있지만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나름의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나 나름대로는 한다고 했는데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아 서운한 마음이 생겨 제풀에 지칠 수 있다.● 관계 회복 성공 경험 있어야 돈독해져 4개 유형 중 가장 효과적 대처 방식으로 꼽힌 ‘대화’ 유형은 문제를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시적으로 언성이 높아지거나 말다툼이 일어나도 괜찮다. 세계적인 부부 상담가인 존 고트먼 미 워싱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부부 상담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실제 부부들의 대화 패턴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실험에 참여할 부부 25쌍을 모집하고, 집이나 실험실에서 이들이 결혼 생활에서 나타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녹음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부부 간 갈등에 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때 일시적으로 감정이 상하고 관계가 나빠지긴 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매우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부부 사이의 ‘관계적 효능감’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적 효능감이란, 갈등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의미한다. 대화로 갈등을 극복해낸 성공 경험이 쌓이면,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가 생긴다.이와 반대로 갈등을 회피할 경우 성공 경험을 쌓을 수 없기 때문에 관계적 효능감은 자라지 못한다. 또 대화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서로를 탓하고, 자기방어에만 급급한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넘겨짚고 결론 내 특별한 갈등 상황이 없더라도 소통은 늘 중요하다. 오해는 언제 어디서든 틈을 비집고 끼어들어 관계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자아 방어기제 가운데 하나인 ‘투사(projection)’와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어 소개한다. 우선 자아 방어기제란, 불안이나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사고나 행동 수단을 의미한다. 자아 방어기제로 투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내 감정, 생각을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자신을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확한 근거 없이 배우자나 연인도 “나를 못났다고 생각한다”고 믿기 쉽다. 이때 자신을 못나게 보는 마음은 자존감이 낮은 자기 생각이지, 상대방의 진짜 생각이 아니다. 부부, 연인 사이에서 이런 투사가 일어나면 상당히 피곤해진다. 근거 없이 상대를 의심하고, 오해하고, 넘겨짚어 관계를 섣불리 끝내버릴 수도 있다. 샌드라 머레이 미 뉴욕주립대 버팔로캠퍼스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연인 65쌍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서로 등지고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한 뒤 각자 질문지에 답을 쓰도록 했다. 한 사람에게는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간략히 쓰라고 했고,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집에 있는 물건을 최소 25개 이상 쓰라고 했다. 불만을 간략히 쓰라고 주문받은 이들은 답을 쓰는데 약 2분 정도 걸렸고, 물건 이름을 쓰는 사람들은 약 5분 정도 걸렸다. 답안지 작성이 일찍 끝난 이들은 남은 시간 동안 상대방이 열심히 답을 써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멀뚱히 기다렸다. 이때 답안 작성을 일찍 끝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서로의 질문지가 다른지조차 몰랐던 이들은 상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불만을 몇 개 적지도 않고 금방 끝났는데, 도대체 나한테 무슨 불만이 저렇게 많은 거지?”라고 말이다. 답안 작성이 모두 끝나고 이들에게 각각 상대에 대한 애정, 헌신, 신뢰도 등을 추가로 조사했다. 또 앞으로 상대가 잘못한다면 얼마나 용서해 줄 의사가 있는지, 미래에도 관계를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는 얼마나 되는지 등도 조사했다. ●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왜 관계가 나빠지지?그 결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상대에 대해 안 좋게 답했다. 애정, 신뢰도, 관계 지속 의지, 용서 여부 등에 전부 회의적이었다. 바로 투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자신을 불만족스럽게 여기는 자존감 낮은 사람은 파트너도 자신을 별로라고 여겨 답안지에 온갖 불만을 적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더 문제는 섣부른 판단으로 상대방을 오해해 애정을 거둬들였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신이 상처받을 것을 미리 방어하기 위해 상대를 비난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들은 상대방이 다른 이유로 기분이 안 좋을 때조차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고 했다.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이런 경향이 덜했다. 자신에 대해 불만이 적고, 자존감 높은 사람들은 상대방도 자신을 존중해줄 것이고, 그만큼 잘 대우해 줄 것이라 믿으며 쓸데없는 오해에 휩쓸리지 않았다.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서로 등을 지고 아무 말도 나누지 못하게 하자 이런 일이 더 극명하게 일어났다. 오해는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관계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방지하는 방법은 등 돌리고 앉았던 자세를 고쳐 앉아 서로 마주보고 입을 여는 것 뿐이다. 어쩌면 좋은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둘 중에 누가 잘못을 했느냐 보다, 그 주제로 충분한 소통을 했는가에 달려있는지 모른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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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기” VS “대파 투표”…선거철엔 왜 네거티브 전략이 판칠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그들이 저열하게 가면, 우리는 더 저열하게 가자.”요즘 정치권을 보면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의 말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미셸 여사의 원래 발언은 “그들이 저열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이다. 국내 정치에서도 네거티브 경쟁이 심화할 때마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경구다. 여야는 최근 며칠간 선거유세 과정에서 ‘개’ ‘쓰레기’ ‘나베’ ‘학살 후예’ ‘매춘’ ‘불륜’ ‘깡패’ ‘계모’ 등 끝 모를 막말을 쏟아 냈다. 일각에선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대파를 들고 투표장에 가겠다는 촌극도 벌어진다. ‘상대가 이렇게 끔찍하니 나를 뽑아 달라’는 원색적 네거티브 경쟁이 치열하다. 개인 신상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도 심각한 수준이다. 비난의 향연 속에 정작 중요한 후보자의 비전, 정치철학, 정책 공약 등은 설 자리를 잃었다.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가 지역 발전을 위해 내건 핵심 공약은 무엇인지 떠올려 보라. 선거 공보물을 꼼꼼히 읽어 보지 않았다면 구체적으로 기억하기 어렵다. 각 당 주요 공약도 마찬가지다. 반면 상대 진영을 향해 던진 비난들은 한 번만 들어도 뇌리에 깊이 박힌다. 강렬하고 불쾌한 단어일수록 기억이 더 잘 난다. 이 점에서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싫어도 보게 되고, 불쾌해도 기억하게 되는 효과를 만들어 내는 선거철 네거티브 전략에 얽힌 심리적 기제를 살펴보자.● 나쁜 소식·나쁜 말에 더 ‘솔깃’인지심리학자들은 부정적 정보에 주의를 더 집중하는 심리적 특성인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부정성 편향은 좋은 정보보다 나쁜 정보에 더 각성되고 영향을 크게 받는 심리적 경향성을 말한다. 정책 공약보다 상대를 욕하는 뉴스에 귀가 더 쫑긋했다면 부정성 편향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부정성 편향은 일상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진짜 잘한다”는 칭찬은 쉽게 흘려보내지만 “진짜 못한다”는 비판은 두고두고 신경 쓴다. 또 주식 투자에서 같은 액수만큼 올랐을 때보다 떨어졌을 때 더 큰 심리적 타격을 받는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일어나도 우리는 삶에 나쁜 일이 가득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그래서 선거철에 특정 후보의 막말이나 편법, 범죄 이력같이 부정적인 정보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 후보자가 구설에 한 번 휘말리면 나중에 좋은 공약을 발표해도 유권자 머릿속에 좋게 각인되기 어렵다. 특히 정치 신인일수록 타격이 크다. 특정 대상에 대해 가장 처음 접한 정보가 나중에 접한 정보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갖는 첫인상 효과(Primary Effect)와 부정성 편향의 영향력이 합쳐지기 때문이다.이성적으로는 정책 선거를 선호하는 유권자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막말 공방 같은 뉴스에 더 끌린다. 캐나다 맥길대 정치학과 연구팀은 실험참가자들에게 기사를 읽는 동안 안구 운동을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한다고 꾸미고, 정치 기사를 자유롭게 읽도록 했다. 실제 실험은 안구 운동과는 관계가 없었고, 이들이 어떤 기사를 얼마나 많이 읽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참가자 대부분은 공약 홍보보다 정쟁이나 갈등 위주의 기사를 더 먼저, 더 많이 클릭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정치적 갈등 뉴스를 많이 봤다. ●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나쁜 정보 수집 본능왜 부정적 정보는 긍정적 정보보다 힘이 셀까. 인간 생존 본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과거 인간은 생존에 위협이 될 만한 부정적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알아두면 좋은 긍정적 정보보다는 모르면 큰일 나는 부정적 정보가 더 중요했다. 예를 들어 사냥감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보다 맹수를 피하려면 어디를 가지 말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사냥감이 많은 곳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찾아다닐 수 있지만 맹수는 일단 한 번 만나면 끝이기 때문이다.더 이상 길에서 맹수를 만날 일은 없어졌지만, 부정적 정보는 여전히 우리 인지 체계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 중 어떤 소식을 먼저 들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다. 그러자 10명 중 8명이 나쁜 소식을 먼저 듣겠다고 답했다. 나쁜 소식을 들은 이들은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해결책을 찾는 행동에 곧장 돌입하는 경향성도 발견됐다.또 다른 연구에서 다섯 살짜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을 때 역시 부정적인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이들에게 여러 표정을 담은 얼굴 사진을 각각 보여줬더니, 기쁘고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표정보다는 화나고, 슬프고, 두려운 표정을 지은 얼굴 사진을 먼저 찾아냈다.우리 신체도 부정적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정보를 접하면 심장박동과 피부 전도도가 증가하며 안면 근육 수축이 일어나 평소 수준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긍정적 정보를 접했을 땐 이 같은 신체 반응이 거의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더라도 원래 수준으로 금방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일 세 번이 나쁜 일 한 번과 같은 값?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거철 네거티브 공세는 여러모로 가성비 좋은 전략이다. 일부 학자들은 부정성은 긍정성보다 3배 이상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후보자가 자신의 정치 철학이나 비전을 세 번 호소하는 것과 상대 후보 ‘디스’ 한 번 하는 것의 효과는 비슷하다.부정성 편향을 연구해 온 랜디 라슨 미 워싱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1~3개월간 실험 참가자들에게 하루 기분을 세밀하게 기록하도록 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사람들은 보통 기분 좋은 날 세 번에 기분 나쁜 날 한 번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삶에서 긍정성과 부정성 비율이 3 대 1이 될 때 그다지 비극적이지도, 극적으로 행복하지도 않은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팀은 “부정적인 경험이 긍정적인 경험보다 약 3배 큰 효과를 낳는다”고 했다.이 연장선상에서 ‘부정성 편향’의 저자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4의 법칙’을 제안한다. 보통의 삶보다 조금 더 행복하려면 긍정성이 부정성보다 최소 4배는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를 선거운동에 대입해 보면 자신에 대한 긍정 이미지 홍보를 네 번 해야 상대의 네거티브 공세 한 번을 이길 수 있다.이런 특성 때문에 기업에서는 부정 이슈를 덮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붓는다. 돈 내고 소비하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아주 냉혹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해 중국 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맥주 원료에 소변 보는 장면이 포착돼 소비량이 급감한 칭따오 맥주가 다시 반등하려면, 엄청난 규모의 긍정 이슈 물량 공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나쁜 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안타까운 점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14일뿐이라는 것이다. 짧은 시간 내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기 위해선 네거티브 공세가 더 효과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인간은 위협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정적 정보에 더 솔깃할 수는 있어도 이를 긍정적 정보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향한 비방과 욕설 같은 네거티브 공세는 장기적으론 유권자를 지쳐서 떠나게 만든다.미 조지아공대 연구팀은 15개월 동안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게시글 52만여 개를 분석해 이들의 팔로어, 공유 빈도, 즐겨찾기 추이를 살펴봤다. 부정적 내용을 많이 올리는 이용자들은 초반에 관심을 끌었지만 15개월 후 팔로어 수 증가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긍정적 게시 글을 지속해서 올린 이용자의 팔로어 수는 훨씬 더 늘어났다. 장기적으로 보면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는 대상에게 더 끌리게 돼 있다는 것이다. 부정성이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긍정성을 더 선호한다. ● 유권자 “신상 공격하는 후보에게 투표 안 해”후보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심성욱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유권자는 네거티브 전략을 쓰는 후보자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특히 상대 후보자의 군대 문제나 가족, 종교, 건강 같은 신상을 공격하는 후보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그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사실상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네거티브 공세가 신상 공격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정치권이 꼭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다만 네거티브 홍보 내용 가운데 상대방의 재정 조달 대책 같은 정책 관련 이슈가 있을 때는 달랐다. 유권자들은 상대 후보의 신상이 아니라 정치적 견해와 주장을 비판할 때 이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비난의 화살이 후보자 개인을 향하는 게 아니라, 그의 정치적 주장을 향할 때 그나마 네거티브 전략이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후보에 대한 투표 의향은 신상 공격을 한 후보자보다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심 교수는 “상대 후보의 정치적 견해에 네거티브 공격을 한정할 때 비교적 더 합리적인 비판으로 보일 수 있다”며 “이번 총선처럼 신상 공격이 주를 이룬다면 장기적으로는 유권자들이 정치에 회의를 느껴 투표율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다급한 정치권에선 막말과 원색적 비난을 쏟아 내며 우리의 눈과 귀를 잠시 홀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이를 이성적으로 평가하고 심판하는 능력 또한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는 나쁜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주의가 집중될 뿐, 이를 결코 더 좋아하는 게 아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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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막말과 비방이 공약보다 머리에 쏙쏙 들어올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학살 후예’ ‘쓰레기’ ‘매춘’ ‘불륜’ .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듣기 거북한 말들이 선거판에 흘러넘친다. ‘상대가 나쁘니 나를 뽑아 달라’는 원색적 네거티브 경쟁이 치열하다. 상대 후보의 각종 막말부터 편·탈법, 전과 지적 등 다양하다. 개인 신상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도 심각한 수준이다. 자극적 비난의 향연 속에 정작 중요한 후보자의 비전, 정치철학, 정책 공약 등은 설 자리를 잃었다.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가 지역 발전을 위해 내건 핵심 공약은 무엇인지 떠올려 보라. 선거 공보물을 꼼꼼히 읽어 보지 않았다면 구체적으로 기억하기 어렵다. 각 당 주요 공약도 마찬가지다. 반면 상대 진영을 향해 던진 비난들은 한 번만 들어도 뇌리에 깊이 박힌다. 이때 유권자는 어떤 후보가 지역 발전을 가져올지보다, 누구 흠결이 그나마 더 봐줄 만한지 결정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다. 이는 상대 흠집 내기에 혈안인 정치인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다.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언론, 유튜버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원적으로 작용하는 심리적 기제가 숨어 있다. 왜 정치인들은 네거티브 공세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 부정적 정보에 먼저 쏠리는 눈과 귀 인지심리학자들은 부정적 정보에 주의를 더 집중하는 심리적 특성인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부정성 편향은 좋은 정보보다 나쁜 정보에 더 각성되고 영향을 크게 받는 심리적 경향성을 말한다. 정책 공약보다 상대를 욕하는 뉴스에 귀가 더 쫑긋했다면 부정성 편향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부정성 편향은 일상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진짜 잘한다”는 칭찬은 쉽게 흘려보내지만 “진짜 못한다”는 비판은 두고두고 신경 쓴다. 또 주식 투자에서 같은 액수만큼 올랐을 때보다 떨어졌을 때 더 큰 심리적 타격을 받는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일어나도 우리는 삶에 나쁜 일이 가득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선거철에 특정 후보의 막말이나 편법, 범죄 이력같이 부정적인 정보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 후보자가 구설에 한 번 휘말리면 나중에 좋은 공약을 발표해도 유권자 머릿속에 좋게 각인되기 어렵다. 특히 정치 신인일수록 타격이 크다. 특정 대상에 대해 가장 처음 접한 정보가 나중에 접한 정보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갖는 첫인상 효과(Primary Effect)와 부정성 편향의 영향력이 합쳐지기 때문이다. ●10명 중 8명 “나쁜 정보 먼저 듣겠다” 왜 부정적 정보는 긍정적 정보보다 힘이 셀까. 인간 생존 본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과거 인간은 생존에 위협이 될 만한 부정적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알아두면 좋은 긍정적 정보보다는 모르면 큰일 나는 부정적 정보가 더 중요했다. 예를 들어 사냥감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보다 맹수를 피하려면 어디를 가지 말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사냥감이 많은 곳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찾아다닐 수 있지만 맹수는 일단 한 번 만나면 끝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길에서 맹수를 만날 일은 없어졌지만 부정적 정보는 여전히 우리 인지 체계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 중 어떤 소식을 먼저 들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다. 그러자 10명 중 8명이 나쁜 소식을 먼저 듣겠다고 답했다. 나쁜 소식을 들은 이들은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해결책을 찾는 행동에 곧장 돌입하는 경향성도 발견됐다. 우리 신체도 부정적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정보를 접하면 심장박동과 피부 전도도가 증가하며 안면 근육 수축이 일어나 평소 수준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긍정적 정보를 접했을 땐 이 같은 신체 반응이 거의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더라도 원래 수준으로 금방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약 홍보보다 가성비 높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거철 네거티브 공세는 여러모로 가성비 좋은 전략이다. 일부 학자들은 부정성은 긍정성보다 3배 이상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후보자가 자신의 정치 철학이나 비전을 세 번 호소하는 것과 상대 후보 ‘디스’ 한 번 하는 것의 효과는 비슷하다. 부정성 편향을 연구해 온 랜디 라슨 미 워싱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1∼3개월간 실험 참가자들에게 하루 기분을 세밀하게 기록하도록 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사람들은 보통 기분 좋은 날 세 번에 기분 나쁜 날 한 번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삶에서 긍정성과 부정성 비율이 3 대 1이 될 때 그다지 비극적이지도, 극적으로 행복하지도 않은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팀은 “부정적인 경험이 긍정적인 경험보다 약 3배 큰 효과를 낳는다”고 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부정성 편향’의 저자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4의 법칙’을 제안한다. 보통의 삶보다 조금 더 행복하려면 긍정성이 부정성보다 최소 4배는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를 선거운동에 대입해 보면 자신에 대한 긍정 이미지 홍보를 네 번 해야 상대의 네거티브 공세 한 번을 이길 수 있다. ● 유권자 “신상 공격하는 후보에게 투표 안 해” 안타까운 점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14일뿐이라는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대중 뇌리에 각인되기 위해선 네거티브 공세가 더 효과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인간은 위협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정적 정보에 더 솔깃할 수는 있어도 이를 긍정적 정보보다 더 좋아하지는 않는다. 상대를 향한 비방과 욕설 같은 네거티브 공세는 장기적으론 유권자를 지쳐서 떠나게 만든다. 미 조지아공대 연구팀은 15개월 동안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게시글 52만여 개를 분석해 이들의 팔로어, 공유 빈도, 즐겨찾기 추이를 살펴봤더니 부정적 내용을 많이 올리는 이용자들은 초반에 관심을 끌었지만 15개월 후 팔로어 수 증가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긍정적 게시 글을 지속해서 올린 이용자의 팔로어 수는 훨씬 더 늘어났다. 장기적으로 보면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는 대상에게 더 끌리게 돼 있다는 것이다. 후보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심성욱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유권자는 네거티브 전략을 쓰는 후보자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특히 상대 후보자의 군대 문제나 가족, 종교, 건강 같은 신상을 공격하는 후보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그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다만 네거티브 홍보 내용 가운데 상대방의 재정 조달 대책 같은 정책 관련 이슈가 있을 때는 달랐다. 유권자들은 상대 후보의 신상이 아니라 정치적 견해와 주장을 비판할 때 이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방식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후보에 대한 투표 의향도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심 교수는 “상대 후보의 정치적 견해에 네거티브 공격을 한정할 때 비교적 더 합리적인 비판으로 보일 수 있다”며 “이번 총선처럼 신상 공격이 주를 이룬다면 장기적으로는 유권자들이 정치에 회의를 느껴 투표율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다급한 정치권에선 막말과 원색적 비난을 쏟아 내며 우리의 눈과 귀를 잠시 홀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이를 이성적으로 평가하고 심판하는 능력 또한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는 나쁜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주의가 집중될 뿐, 이를 결코 더 좋아하는 게 아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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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연, 개인에게만 맡겨선 안돼… 기업-학교 함께해야”

    “직장인 흡연자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은 하루 최소 40분입니다. 평균 연봉 대비 시급과 비교하면 기업은 1년에 한 달 치 월급을 손해 보는 셈이에요.” 김혜경 서울금연지원센터장(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교수)은 22일 동아일보와 만나 직장 내 금연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금연지원센터는 4기 공모 사업을 통해 올 1월 이화여대에 설치됐다. 기존 금연 지원 사업은 병원 중심으로 이뤄져 지원 대상이 한정적이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올해부터는 기업, 학교같이 일상 공간으로 직접 찾아가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국내 흡연자는 감소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흡연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2023 담배 폐해 국제 심포지엄’ 자료에 따르면 흡연으로 인한 국내 하루 평균 사망자는 159명으로 연간 6만 명에 이른다. 심지어 담배는 지구온난화에도 악영향을 준다. 담배 산업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연 8000만 t이나 되고 담배 필터에 함유된 미세 플라스틱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김 센터장은 “금연은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 아니라 기업이나 학교 같은 조직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흡연자들의 사교의 장으로 여겨지는 일명 ‘담배 타임’이 잦은 조직일수록 흡연 횟수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개인의 금연 결심이 지켜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금연지원센터는 기업 내 금연 환경 조성을 위해 ‘찾아가는 금연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경제성 평가 서비스다. 근로자의 흡연율, 평균 연봉 정보 등을 조사해 흡연으로 발생하는 휴식시간에 따른 기업 손실을 계산해준다. 학교로도 직접 찾아간다.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학생들이 흡연 청소년과 직접 만나 금연뿐만 아니라 학업이나 진로 상담을 해준다. 김 센터장은 “청소년 흡연은 진로를 비롯해 다양한 스트레스와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금연 문제로만 접근하면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대상 금연 운동은 이화여대와 인접한 연세대 서강대 등을 중심으로 금연 캠퍼스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흡연율이 높은 취약 계층을 위한 금연 지원 프로그램도 중점 사업이다.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환경일수록 흡연으로 인한 질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고, 건강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 김 센터장은 “경제 수준에 따라 서울 자치구별 흡연율도 다르다”며 “일률적 지원보다 도움이 더 필요한 곳에 지원 서비스를 더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또 금연 의지는 있지만 심리적 문턱이 높아 센터 방문을 꺼리는 이들을 위한 비대면 서비스 ‘고독한 금연자’ 캠페인도 실시한다. 센터 방문은 최소화하고 금연 전문가와의 비대면 소통을 통해 금연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김 센터장은 “흡연자의 금연을 유도하고 비흡연자의 흡연 예방 및 간접 흡연을 감소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계층 간, 지역 간 흡연율 격차를 해소해 건강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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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고 싶어라” 한국인이 중국·일본인 보다 더 많이 우는 이유[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없어, 지구상에 단 한 명도 내 편이 없어!”최근 방영을 시작한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의 남자 주인공 김수현(백현우 역)은 친구 앞에서 맥주를 마시다 울음을 터트린다. 아내와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서다. 그는 애초에 아내와 만난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내 팔자를 내가 꼬았다”고 신세 한탄을 한다.성인 남성이 다른 사람 앞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우는 모습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다. 눈물 많은 남자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남들 앞에서 울기보단 죽기 살기로 이겨내겠다고 다짐하는 편이 더 익숙하다. 비교적 눈물에 관대한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나약하고 감정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한다. 그런데 지난 기사()에서 살펴봤듯 눈물을 참고 사는 건 몸과 마음에 모두 해롭다. 잘 웃고 긍정적인 태도로 생활하는 것 못지않게 눈물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배출해내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어금니 꽉 깨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포커페이스로 사는 건 결과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인은 얼마나 울고 살까?가장 최근 눈물을 흘린 적은 언제인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운 것이더라도 상관없다. 며칠, 몇 주, 몇 달 전? 아니면 몇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면 문제가 있다. 특히 남성 중에는 언제 마지막으로 울었는지 기억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남녀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한국은 상대적으로 덜 우는 나라다. 나라별로 얼마나 우는지 비교가 가능할까 싶지만, 놀랍게도 국가별 눈물 경향성을 분석한 연구가 있다. 네덜란드 연구진은 37개국을 대상으로 ‘성인 울음에 관한 국제 연구(International Study on Adult Crying·ISAC)’를 진행했다. 전 세계에서 모집된 실험참가자 5715명 가운데 한국인은 415명이 포함됐다. 연구진은 실험참가자들에게 언제,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울었는지 일정 기간 눈물 일기를 쓰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얼마나 잘 우는지 나타내는 국가별 ‘눈물 경향’을 수치로 나타냈다. 10점 만점으로 점수가 클수록 잘 우는 것이다. 또 국가별 특징을 비교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 인구밀도, 정치 상황, 종교, 정신질환 발병률, 행복 지수, 성격검사 결과 등을 총체적으로 살펴봤다. ○ ‘잘 우는’ 나라 순위1. 브라질2. 스웨덴3. 이탈리아4. 독일 …19. 한국, 이스라엘, 가나 …29. 중국 …35. 나이지리아36. 일본37. 말레이시아자료: 성인 울음에 관한 국제 연구(International Study on Adult Crying·ISAC) 자료를 가공하여 순위 산출.한국의 남녀 눈물 경향 평균 점수는 4.54점이었다. 평균 점수를 기준으로 37개국을 차례로 나열하면, 19번째에 해당한다. 가나, 이스라엘과 점으로 공동 순위다. 1위는 브라질이었고, 그 뒤를 스웨덴, 이탈리아, 독일 등이 이었다. ● 정치-문화 자유로운 국가에서 더 많이 울어언뜻 생각하기에 “슬픔과 고통이 큰 환경에서 더 많이 우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잘 우는 순위 상위권에 오르는 것은 불명예로 보인다. 사실 이 연구를 진행한 연구진조차도 자료를 분석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치적으로 억압당하고, 우울증을 많이 앓는 나라에서 울 일이 더 많을 거라고 본 것이다. ‘눈물=고통’이라는 전제에서다.하지만 결과를 분석해보니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살기 힘든 나라에서 더 많이 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생활 환경이 꽤 괜찮은 나라에서 더 많이 우는 경향이 나타났다. 왜일까?구체적으로 보면 정치적 민주화 정도가 높을수록, 경제적으로 부유할수록, 개인주의 성향이 강할수록 더 많이 우는 경향이 있었다. 연구진은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에서 개인이 덜 억압받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또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국가에서 더 많이 우는 것으로 나타난 이유는 각자의 자유로운 감정 표현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 있기 때문으로 봤다. 또 개인의 성격 특성으로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사교성이 높게 나타난 나라일수록 더 많이 울었다. 감정을 참으며 삭이지 않고 밖으로 분출해낸다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잘 표현하고, 사회적으로 수용 받으며 살기에 이들이 응답한 주관적 행복 지수도 높았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눈물=고통’이 아니라, ‘눈물=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즉, 자기를 표현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거부감을 덜 느껴야 잘 울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연구진은 인구밀도가 높고, 문화적으로 동질적인 구성원으로 구성된 단일 문화에서는 자유롭게 울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서로의 행동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걱정돼 감정 표현에 제한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 고정관념이 강해 남성의 감정 표현을 제약받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상당 부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중국(29위)과 일본(36위)은 한국보다 순위가 훨씬 떨어졌다. 무엇이 다른 걸까.중국은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해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약받는 사회 분위기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구진은 정치적 자유 항목에서 영장 없는 수색 금지, 사법부의 독립성, 무죄 추정의 원칙 적용, 사상 교육의 자유 등을 통합적으로 살펴봤다. 그 결과 중국은 조사 대상국 가운데 시민권 항목에서 최저점을 기록했다. 일본은 민주주의 점수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이는 정치적 환경보다는 강한 남성상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조사 대상국 가운데 남성성을 중시하는 항목에서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에 더해 친절을 강조하고, 감정 절제를 미덕으로 여기는 전통적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우는 남자의 설 곳을 마련하라그런데 많이 우는 국가조차도 여성과 남성의 눈물 지수 차이가 꽤 컸다. 가장 많이 우는 국가로 조사된 브라질에서조차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이, 자주 울었다. 이런 현상은 37개국에서 빠짐없이 나타났다.이는 감정을 억압하는 강한 남성을 강조하는 ‘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강한 남자는 울지 않는다’는 신념은 자신도 울지 못하게 막을 뿐 아니라, 다른 남자가 우는 것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연구진은 우는 사람의 성별에 따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드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여성 참가자들은 우는 사람의 성별과 관계없이 돕고 싶다고 답한 수치가 비슷하게 높았다. 그런데 남성 참가자들은 우는 여성은 돕겠다고 답했지만, 우는 남성은 돕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또 다른 연구에서는 직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남녀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는데, 사람들은 직장에서 우는 남성은 같은 상황에서 우는 여성보다 더 무능하고, 감정적이고, (감정을 주체 못 한)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답했다.물론 공적인 장소인 직장에서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는 남자를 돕기도 싫어하고, 더 무능하다고 여기는 가혹한 시선이 직장이 아닌 어떤 곳에서도 울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남성이 울고 나서 기분이 나아지는 효과가 여성보다 덜하다는 여러 연구 결과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울고 나서 뒤늦게 창피함과 민망함을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린 뒤 느끼는 후련함보다 뒷감당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은 셈이다. 앞서 소개한 모든 연구 결과는 우는 사람을 주변에서 잘 수용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 우는 사람을 보고 “징징댄다” “질질 짠다”고 비하하는 시선이 더 강하다면, 이것이 곧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가 아닐까.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눈물도 웃음만큼이나 당위적인 여러 감정 표현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자. 울면 나약해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감정을 억압하는데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 시원하게 울고 나서 부정적 감정을 털어버린 뒤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것이 나에게도 더 좋지 않을까.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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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오히려 울어야 행복해진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넌 모든 슬픔이 이 안에서 못 나오게 하면 돼.”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는 ‘슬픔이’가 서 있는 바닥에 원을 그리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원 안에 가만히 있으란 소리다. 기쁨이는 툭하면 울 것 같은 슬픔이가 자꾸 돌아다니면, 이 감정들의 주인인 꼬마 라일리가 불행해질까 봐 걱정한다. 애니메이션에는 기쁨과 슬픔 외에도 ‘버럭이(화)’, ‘까칠이(짜증)’, ‘소심이(두려움)’ 등 우리의 감정을 의인화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대장 역할의 기쁨이는 이들 중 유독 슬픔이를 견제한다. 우리 삶에서도 슬픔이란 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기쁨만 가득해야 행복한 것이고, 슬픔은 느껴서 좋을 게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이미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기쁨이가 틀렸다. 인간은 다채로운 감정을 함께 느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우리에게 쓸모없는 감정이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슬픔이나 눈물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울고 싶어도 꾹꾹 억누르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위치 때문에, 바보같아 보일까 봐, 남자라는 이유로 체면 차리려 감정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에선 더욱 그렇다. 고작 “힘들다”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감정을 퉁치기도 한다. 그러나 있는 감정을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살면 어떤 식으로든 부작용이 나타난다. 기쁠 때 웃는 것이 자연스럽듯, 슬프거나 힘들 때 눈물 표현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지 일시적 후련함을 느끼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슬픔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처럼, 눈물도 생각보다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 눈물은 진짜 내 감정과 만나는 통로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울어야 부정적인 감정이 방출된다고 했다. 눈물이 복잡하고 괴로운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는 통로라고 본 것이다. 울고 나면 후련해지는 눈물의 카타르시스 효과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때 우는 행위의 전제는 눈물 나게 하는 다양한 감정을 피하지 않고 직면한다는 데 있다. 슬픔이나 서러움, 절망, 우울, 죄책감 같은 부정적 감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감동이나 고마움, 성취감, 안도감 등 다양한 감정을 포함한다. 심리치료 과정에서도 눈물은 큰 의미가 있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여러 현실적 이유로 살면서 미처 느낄 겨를이 없어 가슴 속 깊이 억압해 둔 부정적 감정을 다시 꺼내 생생하게 느끼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를 ‘접촉(contact)’이라고 표현하는데, 눈물은 더 깊은 접촉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그러면 억압해 뒀던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씩 방출되며 해소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더 홀가분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심리치료에서 상담자는 내담자가 눈물을 억지로 참지 않고 자유롭게 울 수 있도록 권장한다. 실제로 내담자가 눈물을 흘리는 등 감정표현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치료 효과가 좋았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있다.울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와 반대로 마음이 괴로워도 울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해질 수 있다. “나는 안 울고, 안 생생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슬픔에 둔감한 사람은 기쁨에도 둔감하다. 감정의 희로애락을 나타내는 곡선이 지나치게 들쑥날쑥해도 괴롭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일정하다면 이 또한 문제다. “언제 울어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눈물을 억압하는 남성들이 특히 위험하다. 눈물을 보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고, 나약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힘든 감정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아 없는 척 외면하면 한꺼번에 크게 터질지 모른다. 한국 남성 자살률이 여성 자살률의 2배를 웃도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도 평소에 힘든 내색을 못 한다는 데 있다. 힘들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비율은 여성의 5분의 1 수준으로 현저히 낮다. (최고야의 심심토크 기사 참고)울지 않는 사람은 잘 우는 사람에 비해 질병에도 취약할 수 있다. 울지 않고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사람은 심혈관, 소화계, 갑상샘, 뇌, 근골격계 질환에 취약하다는 여러 연구가 있다. 또 눈물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감소시키고 독성 노폐물을 배출한다거나, 고통을 줄여주는 내인성 오피오이드 분비를 증가한다는 다양한 가설도 있다. 울어도 되는 안전한 장소·대상 찾아야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느라 울고 싶어도 참는다. 혼자 있는 차 안이나 화장실에서 울거나, 자기 전 홀로 조용히 울음을 삼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우는 것보다 위로해 줄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함께 있을 때 눈물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네덜란드 연구진은 국가나 문화권 별로 우는 행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 37개국 성인 5715명을 대상으로 ‘성인 울음에 관한 국제 연구(International Study on Adult Crying·ISAC)’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각국의 실험참가자들에게 눈물 일기를 쓰도록 요청했다. 가장 최근에 운 것은 언제인지,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울었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등을 일정 기간 기록하게 했다.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스웨덴같이 겨울에 극도로 추운 나라에서 유독 더 자주 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울었다고 가장 많이 보고한 시간은 오후 7~10시 사이였다.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연구진은 저녁이 되면 해가 일찍 지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기후의 나라에서는 집에 일찍 들어와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봤다. 저녁 식사 이후부터 자기 전까지는 회사나 학교에서 겪은 일을 터놓고 얘기하기 좋은 시간이다. 집에는 나를 평가하거나, 이상하게 여길 외부인도 없으니 마음껏 울 수 있다. 또 피로로 인해 눈물의 역치가 낮아진 시간대라 눈물을 참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장 덜하기도 하다. 특히 이들은 어머니나 배우자, 연인과 함께 있을 때 자주 울었다고 보고했다. 학계에서는 이를 애착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자신을 돌보고 수용해 줄 만한 애착 대상이 있을 때 마음이 무장해제 되기 쉽다는 것이다. 반면, 혼자 살거나 자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들보단 덜 울었다. 연구진은 “사회적 유대감이 낮은 사람은 함께 울어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고, 결과적으로 우울하고 덜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눈물은 “돕고 싶다”는 공감 일으켜그렇다고 반드시 친한 사람 앞에서만 울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는 당사자는 다른 사람 앞에서 울면 바보 같거나, 나약해 보일 것을 걱정하지만 이런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상대방이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일지라도 우는 사람을 보면 돕고 싶다는 따뜻한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눈물에 관해 연구를 해온 애드 빙거호츠 네덜란드 틸뷔르흐대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눈물은 다른 사람과 더 연결돼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 친근함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 연구팀은 성인 남녀 196명을 대상으로 눈물 흘리는 여성 사진과 디지털 기술로 눈물을 지운 여성의 사진 약 200장을 무작위로 보여줬다. 그리고 이 여성들을 실제로 만났다고 가정했을 때 이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조사했다.그 결과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성들에 대해 “슬퍼 보인다” “힘이 없어 보인다”뿐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동정심이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직접 만난다면 도와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응원해 주고 싶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눈물을 지우고 보여준 여성 사진에 대해서는 이런 반응이 훨씬 적게 나왔다. 이후에 다른 연구팀이 실시한 41개국 대상 대규모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우는 사람을 보면 힘이 없고, 난감해 보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갔을 때 덜 밀쳐낼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눈물은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에 보는 사람이 그 사람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가까이 가서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눈물은 사회적 연결감을 높이고 공감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고, 강해 보이고 싶은 사람은 눈물로 인한 도움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다음 주 기사에서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이 우는 나라일까 △부유할수록 더 많이 운다 △남자는 다른 남자의 눈물을 어떻게 생각할까 등을 소개할 예정입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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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조건 나를 따르라!” 자기 과신 넘치는 리더가 위험한 이유[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저쪽에 먹이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가볼래?”“저기 확실히 먹이가 있다. 나를 따르라!”각각 이렇게 소리치는 미어캣 중 한 마리를 따라가야 한다면, 미어캣 무리 내에선 어느 쪽이 인기가 더 많을까? 당연히 후자다. 미어캣들은 먹이를 찾기 위한 이동 신호를 보낼 때 우물쭈물한 태도보단 당당함으로 가득 찬 울음소리를 선호한다.울음소리를 확실하게 내기만 한다면 서열이 낮은 미어캣도 무리를 이끌고 달릴 수 있다. 물론 두 유형 모두 광활한 사막에서 먹이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나를 따르라”고 한 미어캣을 따라갔다가 먹이 대신 자칼 같은 포식자를 만나도 그건 이 무리의 운명이다. 그런데도 미어캣들은 왠지 모를 확신에 차 있는 미어캣을 따른다.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서 미어캣을 연구한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팀은 미어캣의 이런 습성이 인간과 닮았다고 봤다. 잘못된 주장을 하더라도 당당하게 행동하면 일단 믿고 보는 것은 인간이나 미어캣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에서다.실제 가진 능력에 비해 눈에 띄게 ‘나대는’ 사람이 과분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이 연장선에서 설명할 수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당당한 태도로 나오면 ‘저 사람 뭔가 있나 봐’라며 깜빡 속아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무능하지만 근거 없는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리더를 뽑으면 결국 피해는 모두의 몫이 된다. 이 리더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들에게 혹하는 걸까. 때마침 선거철이다. 난무하는 각종 호언장담 속에서 ‘허세의 리더십’을 구별하는 데 적용해 보자.능력 없어도…기세로 밀어붙이면 통한다리더십이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개인의 이런 특성을 과신(overconfidence·過信) 성향이라 부른다.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는 의미에서 허세와도 비슷하다. 자기 과신은 긍정적 의미의 자신감과는 달리 야망, 사기, 허풍, 뻔뻔함과 더 연관이 있다.자기 과신 성향이 큰 이들은 본인의 능력과 지식이 매우 뛰어나다고 믿고 자만하는 특성이 있다. 자기 확신에 차서 비현실적으로 높은 목표를 제시하거나 질 게 뻔한 경쟁에 뛰어들기도 한다. 자기 뜻대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그로 인한 위험성을 잘 못 느끼는 데서 비롯된다. 또 자기는 과대평가하고, 상대는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한다. 이들이 기업을 경영하게 되면 잘못된 결정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히기 쉽고, 국가 지도자가 되면 무리한 전쟁을 일으키는 등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이런 리더는 피해야 한다·실력이 없는데 있는 척한다. ·여럿이 함께 한 일에서 자신의 기여가 큰 척한다.·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한 존재인 척한다.·자신이 성취한 일이 가치 있는 척한다.·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척한다.·자신에게 본받을 것이 많은 척한다.·유능한 사람들과 친분이 있는 척한다.·자신이 남들보다 더 필요한 사람인 척한다.자료: 한국소통학보 ‘허세 측정 척도’ 중.그런데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기 과신 성향이 큰 이들은 능력에 비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리더십으로 착각할 만한 특성을 갖고 있어서다. 이들은 뭔가 큰일을 해낼 것처럼 앞장서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남에게 능력자로 보이고 싶어 하기에 외향성, 주도성, 적극성도 두드러진다. 실력보다는 일종의 기세로 밀어붙이는 것이다.“말 많고 ‘나대는’ 사람이 리더로 보여”실제 능력을 검증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능력자인 척하는 전략이 특히 잘 통한다. 캐머런 앤더슨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자만심이 넘치지만 실제로 능력은 별로 없는 사람이 공동체에서 어떤 지위로 인식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연구팀은 실험 참가자 140명을 모집해서 사회 문화 역사 지리 등에 박식한 사람이 풀 수 있는 문제로 이뤄진 시험을 치렀다. 각자 실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이들을 네 팀으로 나누고 서로 토론해서 정답을 맞히는 두 번째 시험을 진행했다. 시험이 끝난 뒤 팀원들의 문제 풀이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누가 팀의 리더감인지 서로 평가해 보라고 했다.그 결과 아는 척하며 말을 많이 한 이들에게 높은 점수가 돌아갔다. 개인 점수가 형편없는 경우라도 마찬가지였다.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을 리더감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연구팀은 “자신의 분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나, 자기 능력보다 겸손하게 행동하는 사람보다 능력에 비해 자만심 넘치는 이들이 조직 내에서 더 높은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더 놀라운 사실은 개인 점수를 모두에게 알려주고 나서도 평가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지표를 보고 겉모습에 속았다거나, 자신이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으면 상대의 평가 점수를 깎아내릴 법도 한 데 말이다.심지어 연구진이 실시한 또 다른 실험에서 이 모습을 모두 지켜본 제삼자에게 리더십 평가를 부탁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은 실제론 무능하더라도 자신을 돋보이게 행동하는 사람을 리더라고 여겼다.무능력 밝혀져도…신뢰는 지속된다왜 능력도 없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믿음을 보내는 걸까. 표면적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처음 입력된 정보가 나중에 습득한 정보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초두(初頭) 효과(primacy effect) 때문이다. 첫인상 효과라고도 한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리더감으로 인식했다면 기대에 못 미치는 실력이 드러나도 판단을 잘 바꾸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이 분야에선 선수지!”하는 당당한 태도를 계속 유지하면, 여전히 “저 사람 그래도 뭔가 있나 봐” “자신 있으니까 저러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작동한다.또 아는 척하고 말을 많이 하는 것 자체가 능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앞에 나서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모습을 리더의 자질로 본다는 것이다. 자꾸 앞에 나서서 말을 많이 할수록 존재감이 부각되고, 왠지 일을 능숙하게 할 것 같다는 인상을 형성하게 된다. 실상은 부족한 능력을 가리기 위한 화려한 퍼포먼스와 언변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능력을 포장하는 언변에 속는 일은 여러 방면에서 일어난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2019년 발행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학술 연구비 지원 사업에서도 지원 신청서에 ‘있어 보이는’ 단어를 많이 넣은 연구진이 연구비를 많이 타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8~2017년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접수된 연구비 지원 신청서 6794건을 분석한 결과다.고득점 신청서에는 ‘유전자’ ‘치료’ ‘박테리아’같이 연구 잠재력을 강조하는 포괄적 어휘가 자주 등장했다. 미래지향적이고 비전을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단어들이 많이 쓰인 것이다.반면 사실적이고 구체적 단어를 쓴 ‘정직한’ 신청서들이 지원 사업에 채택된 비율은 상당히 낮았다. 저득점 신청서를 분석해보니 ‘소화관’ ‘점막’ ‘t 세포(t-cell)’같이 구체적이고 좁은 의미의 단어가 많이 쓰였다. 정작 연구 성과를 비교해 보면 둘의 차이가 크지 않거나 구체적 단어를 쓴 연구진의 업적이 더 뛰어난 경우가 많았다.이 보고서에서 강조하는 점이 하나 더 있다. 고득점 신청서는 대부분 남성 연구진의 것이었고, 저득점 신청서는 상당수가 여성 연구진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즉, 남성들이 연구 성과의 잠재력을 강조하기 위해 포괄적이고 ‘있어 보이는’ 단어를 즐겨 쓴 반면, 여성들은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단어를 많이 썼다. 이는 남성이 여성보다 허세 전략에 더 익숙하다는 것을 보여준다.‘허세의 리더십’…변수 많은 상황에서 더욱 활개어쨌거나 허세와 자기 과신은 생각보다 쏠쏠한 결과를 낳는 것처럼 보인다. 능력에 비해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여주니 말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런 특성이 오랜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문명 발달 전 인류에게 필요한 리더는 경쟁 집단이나 짐승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줄 힘이 센 사람이었다. 실제로 잘 싸우지 못해도 으르렁거리고 센 척하는 허세가 통하는 경우도 있었을 터다. 경쟁자가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면, 원래 실력으로는 얻지 못했을 식량 등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센 척하다가 진짜 센 상대에게 큰코다치는 일도 있었겠지만, 전반적으로 허세는 꽤 가성비 높은 생존 전략이었다.물리적 위협이 사라진 지금도 석기시대 지도자감을 좋은 리더로 보는 경향이 뇌에 각인돼 있다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리더십의 사바나 가설(savanna hypothesis)이라고 칭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굶느니 센 척하는 리더를 믿고 따랐다는 것이다.2017년 과학 저널 네이처에 실린 ‘과신의 진화’라는 기고는 불확실하고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요즘같이 여러 후보가 경쟁적으로 유세를 펼치는 선거철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대중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은 정치인들이 평소보다 더 센 척하며 능력을 과대 포장할 수 있다.그러나 무능한 사람이 허세 전략을 통해 지도자가 되면 많은 사람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그래서 ‘권력의 심리학’ 저자 브라이언 클라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능력은 있지만 권력에 관심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한다. 클라스 교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정치에 입문해 공공을 위하여 일할 사람, 도덕적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영입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리더에게 진짜 중요한 건 허세나 기세가 아닌 능력이다. 리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어떻게 보일지에 더 관심을 두게 되면 피해는 결국 우리의 몫이 되니 말이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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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짜고짜 “나를 따르라”는 리더에게 우리는 왜 혹할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미어캣 무리는 먹이를 찾아 이동할 때 특이한 울음소리를 낸다. 이곳에는 더 이상 먹이가 없으니 다른 데로 가자는 신호다. 누군가 첫 신호를 보내고 난 뒤 두 마리 정도가 동의하는 신호를 보내면 이동이 시작된다. 울음소리를 당당하게 내기만 한다면 서열이 낮은 미어캣도 무리를 이끌고 달릴 수 있다. 쭈뼛거리며 “저쪽에 먹이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가보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것보다 자신 있게 “저기 확실히 먹이가 있다. 나를 따르라”고 하는 게 더 잘 통한다. 물론 두 유형 모두 광활한 사막에서 먹이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나를 따르라”고 한 미어캣을 따라갔다가 먹이 대신 자칼 같은 포식자를 만나도 그건 이 무리의 운명이다. 그런데도 미어캣들은 왠지 모를 확신에 차 있는 미어캣을 따른다.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서 미어캣을 연구한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팀은 미어캣의 이런 습성이 인간과 닮았다고 봤다. 잘못된 주장을 하더라도 당당하게 행동하면 일단 믿고 보는 것은 인간이나 미어캣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에서다. 실제 가진 능력에 비해 눈에 띄게 ‘나대는’ 사람이 과분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이 연장선에서 설명할 수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당당한 태도로 나오면 ‘저 사람 뭔가 있나 봐’라며 깜빡 속아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무능하지만 근거 없는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리더를 뽑으면 결국 피해는 모두의 몫이 된다. 이 리더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들에게 혹하는 걸까. 때마침 선거철이다. 난무하는 각종 호언장담 속에서 ‘허세의 리더십’을 구별하는 데 적용해 보자.● 리더에게 중요한 건 능력 아닌 기세?리더십이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개인의 이런 특성을 과신(overconfidence·過信) 성향이라 부른다.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는 의미에서 허세와도 비슷하다. 자기 과신은 긍정적 의미의 자신감과는 달리 야망, 사기, 허풍, 뻔뻔함과 더 연관이 있다. 자기 과신 성향이 큰 이들은 본인의 능력과 지식이 매우 뛰어나다고 믿고 자만하는 특성이 있다. 자기 확신에 차서 비현실적으로 높은 목표를 제시하거나 질 게 뻔한 경쟁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들이 기업을 경영하게 되면 잘못된 결정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히기 쉽고, 국가 지도자가 되면 무리한 전쟁을 일으키는 등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그런데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기 과신 성향이 큰 이들은 능력에 비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리더십으로 착각할 만한 특성을 갖고 있어서다. 이들은 뭔가 큰일을 해낼 것처럼 앞장서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외향성, 주도성, 적극성도 두드러진다. 실력보다는 일종의 기세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실제 능력을 검증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능력자인 척하는 전략이 특히 잘 통한다. 캐머런 앤더슨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자만심이 넘치지만 실제로 능력은 별로 없는 사람이 공동체에서 어떤 지위로 인식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 140명을 모집해서 사회 문화 역사 지리 등에 박식한 사람이 풀 수 있는 문제로 이뤄진 시험을 치렀다. 각자 실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이들을 네 팀으로 나누고 서로 토론해서 정답을 맞히는 두 번째 시험을 진행했다. 시험이 끝난 뒤 팀원들의 문제 풀이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누가 팀의 리더감인지 서로 평가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아는 척하며 말을 많이 한 이들에게 높은 점수가 돌아갔다. 개인 점수가 형편없는 경우라도 마찬가지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개인 점수를 모두에게 알려주고 나서도 평가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연구진이 실시한 또 다른 실험에서 이 모습을 모두 지켜본 제삼자에게 리더십 평가를 부탁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은 실제론 무능하더라도 자신을 돋보이게 행동하는 사람을 리더라고 여겼다. ● 무능력 밝혀져도 첫인상 효과 지속왜 능력도 없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믿음을 보내는 걸까. 표면적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처음 입력된 정보가 나중에 습득한 정보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초두(初頭) 효과(primacy effect) 때문이다. 첫인상 효과라고도 한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리더감으로 인식했다면 기대에 못 미치는 실력이 드러나도 판단을 잘 바꾸지 않는다. 또 아는 척하고 말을 많이 하는 것 자체가 능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앞에 나서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모습을 리더의 자질로 본다는 것이다. 실상은 부족한 능력을 가리기 위한 화려한 퍼포먼스와 언변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능력을 포장하는 언변에 속는 일은 여러 방면에서 일어난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2019년 발행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학술 연구비 지원 사업에서도 지원 신청서에 ‘있어 보이는’ 단어를 많이 넣은 연구진이 연구비를 많이 타간 것으로 나타났다. 고득점 신청서에는 ‘유전자’ ‘치료’ ‘박테리아’같이 연구 잠재력을 강조하는 포괄적 어휘가 자주 등장했다. 2008∼2017년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접수된 연구비 지원 신청서 6794건을 분석한 결과다. 반면 현실적이고 구체적 단어를 쓴 ‘정직한’ 신청서들이 지원 사업에 채택된 비율은 상당히 낮았다. 저득점 신청서를 분석해보니 ‘소화관’ ‘점막’ ‘t세포(t-cell)’같이 구체적이고 좁은 의미의 단어가 많이 쓰였다. 정작 연구 성과를 비교해 보면 둘의 차이가 크지 않거나 구체적 단어를 쓴 연구진의 업적이 더 뛰어난 경우가 많았다.● 허세는 가성비 높은 생존본능허세와 자기 과신은 생각보다 쏠쏠한 결과를 낳는 것처럼 보인다. 능력에 비해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여주니 말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런 특성이 오랜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문명 발달 전 인류에게 필요한 리더는 경쟁 집단이나 짐승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줄 힘이 센 사람이었다. 실제로 잘 싸우지 못해도 으르렁거리고 센 척하는 허세가 통하는 경우도 있었을 터다. 경쟁자가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면, 원래 실력으로는 얻지 못했을 식량 등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센 척하다가 진짜 센 상대에게 큰코다치는 일도 있었겠지만 전반적으로 허세는 꽤 가성비 높은 생존 전략이었다. 물리적 위협이 사라진 지금도 석기시대 지도자감을 좋은 리더로 보는 경향이 뇌에 각인돼 있다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리더십의 사바나 가설(savanna hypothesis)이라고 칭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굶느니 센 척하는 리더를 믿고 따랐다는 것이다. 2017년 과학 저널 네이처에 실린 ‘과신의 진화’라는 기고는 불확실하고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요즘같이 여러 후보가 경쟁적으로 유세를 펼치는 선거철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대중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은 정치인들이 평소보다 더 센 척하며 능력을 과대 포장할 수 있다. ‘권력의 심리학’ 저자 브라이언 클라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능력은 있지만 권력에 관심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한다. 클라스 교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정치에 입문해 공공을 위하여 일할 사람, 도덕적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영입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리더에게 진짜 중요한 건 허세나 기세가 아닌 능력이다. 리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어떻게 보일지에 더 관심을 두게 되면 피해는 결국 대중의 몫이 되니 말이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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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대학교, 제3기 골프 최고위 과정

    정체된 골프 실력의 벽을 뛰어넘어 실전 필드에 강한 품격 있는 리더 양성! 연세대학교에서는 최상의 골프 교육과 최고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골프 문화를 제공하고자 ‘연세 골프 최고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골프장 실전 평가 및 프로암 라운드를 비롯해 세미필드(파3)에서 이루어지는 숏 게임과 골프학 개론, 스윙 및 클럽 이론, 규칙 등 커리큘럼이 다양하다. 골프 이론가 정헌철 운영위원장, 고준영 KPGA 시니어 투어 프로가 이끄는 전담 프로 강사진을 비롯해 SBS ‘생활의 달인’의 골프 레슨 달인 문정욱 프로, 2018년 챔피언스투어 2차 우승자 문지욱 프로, 1995년 한국오픈 우승자 권영석 프로, 2020∼22년 KLPGA 3년 연속 챔피언스투어 상금왕 김선미 프로, 국가대표 및 국가대표 감독 출신 성시우 프로 등이 강의한다. 과정을 수료하면 세브란스 건강검진센터 검진 시 20% 할인 혜택과 업계 최고 전문 교수진과의 적극적인 네트워킹 기회를 얻게 된다. 원우회 활동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총장 명의 수료증도 제공한다. 입학식은 5월 16일, 수료식은 11월 27일 열린다. 이론 수업은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반∼9시 10분 연세대 이윤재관 최고위 강의실에서 저녁을 포함한 2개 강좌로 진행된다. 실습은 매주 목요일 오후 서울 근교 연습장, 세미필드(파3), 골프장 등에서 열린다. 모집 인원 40명 내외. 기업 및 단체 임원급 이상 경영자, 분야별 전문가 및 사회 지도층 인사 등이 대상이다. 문의 최고위 과정 사무국.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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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대 산학협력단, 기술경영 혁신으로 경제 사회적 가치 창출

    한양대는 기업 수요 기반의 IP 이전 사업화 혁신 프로세스를 정립해 중대형 이상 고부가가치 기술이전을 늘리고, 그 수익금의 일부를 IP 개발 및 고도화에 투자하여 기술료 수익을 재창출하는 기술사업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대학, 지자체, 출연연(TP/KIBO), 민간기업과의 기술적 협력을 통해 기술이전 사업화 거점으로 성장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경제적(재정수익) 사회적(지역과 기업 성장 견인)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먼저 기업 수요 기반의 IP 사업화 전략을 통해 중대형 기술이전을 증대시켰다. 기업 최종수요 IP 발굴, IP 포트폴리오 및 기술 패키징, 타켓 마케팅, 적정가치 산정 등을 통해 사업화 역량이 우수한 대기업과 중견기업으로의 기술이전을 확대했다. IP 수익 재투자를 통해 “지속 가능한 자립형 기술사업화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성과 창출·기술료 수익·재투자의 선순환 구조다. 연구 성과(기술)를 이전 사업화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수익 일부를 연구(기술) 개발 또는 기술이전 사업화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체계 기반을 확립했다. 기술이전 사업화 허브(Hub)의 역할을 보다 더 확대 강화할 예정이다. 기업 혁신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대학 간 기술 패키징을 주도, 미활용 특허 기술이전(무상, 소액)을 통한 중소기업 기술경쟁력 강화 지원, 기술창업 및 투자유치 지원 등 대학, 지자체, 출연연(TP/KIBO), 기업, 민간투자사(AC/VC)와의 기술적 협력을 통해 전국/지역 단위 기술이전 사업화 메카의 임무를 수행하고자 한다. 한양대의 산학협력 성과는 기술이전 부분에서 국내대학 가운데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교원 창업 부문에서도 국내 대학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변중무 산학협력단장은 산학협력 분야에 있어 국내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낸 이유를 △지식재산경영 혁신 △기술창업 및 지원체계 확립 △기술 나눔을 통한 지역 및 중소기업 성장지원 시스템 구축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김학성 기계공학부 교수가 특허 출원한 ‘반도체 검사기용 THz(테라헤르츠)’ 특허가 지난해 3월 주식회사 엑트로에 기술 이전됐다. 이 기술은 반도체 인라인에 적용할 수 있는 테라헤르츠 기반 실시간 반도체 공정 검사 알고리즘 및 검사 시스템으로 이전비로 7억 원을 받았다. 김 교수는 “한국의 메모리 중심 반도체 산업이 시스템 반도체 산업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수율에 영향을 주는 패키징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패키징 검사에서 한계가 많은 기존의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사용하는 것보다 공기 중에서 실시간 검사가 가능한 테라헤르츠를 활용하면 패키징 수율 극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신기술의 의미를 설명했다. 현대차와 기아차에 기술을 이전한 5G 통신 표준특허 10건도 한양대의 체계적인 산학협력의 산물이다. 김선우 융합전자공학부 교수(5G/무인이동체 융합기술 연구센터장)가 개발한 표준특허는 △단말-기지국 간의 매크로 통신 △V2X 통신을 활용한 자율주행, 가상현실(VR)·혼합현실(MR)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고속 데이터 전송 △센서 네트워크 등으로 5G 통신 네트워크가 활용되는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될 예정이다. 김 교수는 5G·6G 네트워크 환경에서 고정밀 센싱·측위 및 통신을 위한 신호처리, 시스템 기술을 연구해오고 있으며, 무인 이동체 지원을 위한 협력 통신·센싱 분야의 주요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또 3세대 이동통신 시스템 규격(3GPP) 관련 표준기술 약 30건을 개발해 한국, 미국, 중국에 특허를 출원하고 등록 중이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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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제10기 문화예술 최고위 과정 4월 개강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은 21세기 기업 경영 핵심 역량인 문화 리더십 양성을 위한 제10기 문화예술 최고위 과정(ACA) 신입 원우를 모집한다. ACA의 강점은 차별화된 프로그램과 명사들이다. 시대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예술 그 자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건축, 미술, 음악(클래식 전통 재즈 대중), 무용, 교양, 미학, 인문학 & 패션, 미주(美酒)로 구성된다. ‘고급 취향 어른을 위한 복합 문화예술 특강’을 컨셉트로 한 이번 과정은 의미가 깃든 공간에서의 경험형 강연도 함께 진행된다. 조영란 ACA 주임 교수는 “각 분야 리빙 레전드의 ‘구별 되는 예술철학’이 원우들에게 생생히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세계적 안무가 안은미, 미술사학자 양정무, 조병수 건축가, 문훈숙 유니버셜발레단 단장, ‘생활 명품’ 저자 윤광준,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이상민, ‘주락이 월드’ 진행자 조승원 MBC 기자,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대중음악 평론가 임희윤, 소설가 김중혁,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이수자 이자람, 미술과 문학을 아우르는 이동섭 작가, ‘싱글 몰트 위스키 바이블’ 저자 유성운 한국증류주협회 사무차장 등이 강사로 나선다. ACA는 지난 9년간 매 기수 50명 이상 수료할 만큼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원우들은 과정 수료 이후에도 관심있는 수업을 청강할 수 있다. 제10기 ACA 강의는 문화예술대학원 최고위 과정 강의실에서 4월 17일∼11월 20일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반부터 9시까지 진행한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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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혹시 T야?” 이런 대화는 그만…의사소통 ‘훈련’이 필요한 겁니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나 속상해서 빵 샀어.”한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재미 삼아 MBTI 성향을 가늠해 보는 테스트로 유행했던 말이다. 여기에 “무슨 일 있었어?”라고 답하면 감정을 중시하는 F(Feeling) 성향, “무슨 빵 샀어?”라고 답하면 사고를 중시하는 T(Thinking) 성향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속상한데 빵을 왜 사?” “그만 먹어” “내 것도 샀어?” “나는 빵 안 먹어” 등 T 성향의 지인에게 각종 ‘오답’을 들었다는 SNS 인증 글이 다수 올라왔다.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기보단, 사실관계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너 혹시 T야?”라고 묻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특정 성향이 더 옳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성향은 각자 다른 것이지, 맞고 틀린 게 아니다. 또 상황에 따라 감정이나 사고를 앞세워야 하는 경우가 다르듯, 각 성향마다 빛을 발하는 때와 장소가 다를 뿐이다.오히려 이는 성향보다 의사소통 ‘능력’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아는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반면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표현이 서툴다면, 의도와 다르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 평소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말이 안 통한다” “섭섭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면, 단지 ‘T라서’가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것일지 모른다. 다행인 것은 의사소통 능력은 훈련하면 발전할 수 있다. 수십 년간의 국내외 연구를 통해 입증된 공감적 소통의 기술을 살펴보자.사리 대화 vs 심정 대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대화의 유형은 ‘사리(事理)대화’와 ‘심정(心情)대화’로 나눌 수 있다.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사리대화보다 심정대화에 더 서툰 경향이 있다.사리대화는 정보와 지식을 주고받는 대화다. 회의처럼 정보를 교환하고,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장단점을 논의하는 등 논리적 대화가 오가는 자리에선 사리대화가 필요하다. 심정대화는 감정을 주고받는 대화다. 회의 같은 공적인 자리보다 가족, 친구, 지인 등 친밀한 사람들과 사적인 영역에서 주로 이뤄진다. 두 대화 형식은 필요한 순간과 역할이 각각 다르기에 상황에 따라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대부분 공적인 자리에서 사리대화가 필요할 때는 잘 지켜지는 편이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심정대화가 이뤄져야 할 때 사리대화가 튀어나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말을 했을 때 객관적 사실관계를 앞세우는 답변을 할 때가 그렇다.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네…”예를 들어 저녁에 퇴근한 배우자가 “나 오늘 회사에서 진짜 바쁘고 힘들었어”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지금이 심정대화의 타이밍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라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자기네 회사 원래 바쁘잖아” “월급 받기 쉬운 줄 알았어?”라고 답한다면 심정대화가 필요한 순간을 구별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사리대화“나 오늘 회사에서 진짜 바쁘고 힘들었어.”→ “자기네 회사 원래 바쁘잖아” “월급 받기 쉬운 줄 알았어?”●심정대화“나 오늘 회사에서 진짜 바쁘고 힘들었어.”→ “온종일 힘들었겠구나.” “고생해서 많이 피곤하겠구나.”이때 배우자는 힘든 하루를 보낸 자신의 마음을 공감받고 싶은 것이지, 돈 벌기 힘든 직장인의 숙명을 깨닫고자 말을 꺼낸 게 아니다. 이런 대답을 들으면, 상대가 나의 마음을 이해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무너진다. ‘말이 안 통한다’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다’는 반응에 더해 섭섭함, 야속함까지 느낄 수 있다. 물론 심정대화는 항상 좋고, 사리대화가 항상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당혹스러운 얼굴로 화장실이 어딘지 묻는 사람에게 “많이 급하시겠어요” “화장실을 못 찾아서 얼마나 힘드실까요”라고 감정에 공감해주는 것은 코미디다. 때와 장소에 맞는 대화를 할 줄 아는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말의 내용보다 밑에 숨은 감정에 주목하기심정대화의 기본은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고, 이를 반영해 답변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한 감정이구나’라는 기본 문장 형식을 응용하면 된다. 그러려면 일단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어떤 마음일지 헤아려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동으로 튀어나오려는 사리대화의 욕구를 접어두고, 상대가 무슨 감정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인지 잠시 멈춰 생각해보자.●심정대화와 사리대화의 예시“엄마, 난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럼 네가 학교 안 다니면 뭐 할 건데?”(사리대화)→ “학교 가는 게 의미 없게 느껴지는구나?”(심정대화)“아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 “그럼 이직 준비해.”(사리대화)→ “회사 생활이 힘들구나?”(심정대화)심정대화를 잘하려면 표면적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아래에 깔린 마음을 읽어줘야 한다.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는 동료에게 “힘들구나” “속상하구나” 등 일명 ‘그랬구나’ 화법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무작정 상대의 말에 동의하라는 게 아니라, 감정을 알아주라는 이야기다. 이와 반대로 “그럼 때려치워” “그냥 관둬”라며 이직을 권유하는 것은 말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사리대화다. 회사생활에 지친 마음을 이해받고 싶다는 동료의 기대감을 바사삭 부수는 답변이기도 하다. 심정대화를 더 잘하려면, ‘우리’가 지금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네 말을 듣다 보니 나도 화가 난다” “네 말을 들으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는 식이다. 그러면 감정을 토로한 사람은 큰 공감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돼 더 긴밀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좀 더 깊이 공감해주려면?“우리 팀 ○○은 진짜 개념이 없어. 모르는 일은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못하겠다고 해서 나한테 일이 다 몰린다니까.”→ “그럼 너도 그냥 못한다고 해.”(사리대화)→ “듣다 보니 나도 화난다. 너 정말 짜증 났겠다.”(심정대화)불만을 말할 땐 ‘나’를 주어로상대의 감정을 잘 받아주는 것만큼 내 감정을 상대에게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불만이 있거나, 화가 날 때 그렇다. 날카롭고 직설적인 말은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 또 듣는 사람 입장에선 자신이 비난받고 통제당한다고 느껴 반항심을 가질 수도 있다.그래서 불만이나 화를 표현할 땐 주어를 ‘너’가 아닌 ‘나’로 바꿔서 표현해야 한다. 이를 ‘나 전달법’ 혹은 ‘아이 메시지(I-Message)’라고도 한다. ‘나 전달법’은 미국 심리학자인 토마스 고든이 개발한 부모 교육 프로그램에서 자녀와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는 방식으로 소개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1970년대 부모 교육에서 시작해 이후 학교, 기업 내 의사소통 훈련법으로 다양하게 응용됐다. 신경질적 표현을 배제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 전달법’은 몇 가지 요건이 있다. 우선 △비난이나 판단 없이 상대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그로 인해 우려되는 상황을 설명한 뒤△‘나는 어떠한 감정을 느낀다’로 표현해야 한다. 시험 기간에 스마트폰만 보며 공부하지 않는 자녀 때문에 화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나 전달법’을 통해 자녀에게 화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나 전달법’의 3요소1. 상대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2. 앞으로 우려되는 상황을 설명하기 3. ‘나’를 주어로 감정 표현하기 → “네가 공부를 안 하고 3시간째 스마트폰을 보니까(1) 시험을 망칠까 봐(2) 엄마(아빠)는 화가 난다/걱정된다/불안하다(3).”이와 반대로 ‘너’를 주어로 표현하면 매우 간명하다. “너 빨리 공부 안 해?” “너 왜 계속 딴짓만 하니?” 등 상대방을 비난하고 평가하는 내용이 된다. 매우 직관적이라 표현하긴 쉽지만, 듣는 사람에겐 공격으로 느껴진다.이렇듯,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은 빠르고 직관적이지만, 감정을 배려하는 말은 여러 생각의 단계를 거치는 노력이 들어간다. 그만큼 상대를 배려하는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의미기도 하다.“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롭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감정을 나누는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 곁에 오래도록 좋은 인연이 머물긴 힘들다. 가족끼리도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이유는 심정대화와 ‘나 전달법’ 표현이 부족해서인지 모른다.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표현에 서툴러서’라는 핑계는 잠시 내려놓고, 소중한 사람들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위해 노력해보자.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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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점에 취업까지… 영림원소프트랩, 일학습병행 청년 108명 지원

    전사적자원관리(ERP) 전문 기업 영림원소프트랩은 8일 고용노동부, 자립준비청년 지원 관계자들과 일학습병행제 운영 우수 사례를 공유하는 간담회를 진행했다고 13일 밝혔다. 일학습병행제는 근로자가 일터와 대학을 오가며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기반으로 하는 현장 훈련과 이론 교육을 이수해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독일과 스위스에서 시작된 교육제도를 한국 현실에 맞게 재설계했다. 영림원소프트랩은 2014년부터 근로자 108명을 대상으로 일학습병행 사업을 진행해 왔다. 영림원소프트랩의 일학습병행제 프로그램에 참여한 근로자는 현장학습 연계 과정을 이수한다. 현장학습을 통해 개발자의 소양을 갖추고 미리 회사 생활을 체험할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대학에서는 이를 현장 외 훈련으로 보고, 학점으로도 인정해준다. 실무 경험을 쌓아 회사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기회를 얻고, 경제 활동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지원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진행된 간담회에서는 보호 기간이 종료돼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오갔다. 자립준비청년은 진로나 적성을 탐색할 기회가 적을 수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영림원소프트랩은 기존 일학습병행제 대상은 재직자나 재학생 위주였지만, 기업이나 학교에 소속되지 않은 자립준비청년에 대해서도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을 논의했다. 이들에게 일학습병행제 참여 기회를 확대해 역량을 강화하고 직무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일학습병행제를 꾸준히 운영해 온 영림원소프트랩은 인턴사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중을 2022년부터 높여왔다. 일학습병행제를 통해 학습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율이 늘면서 계획적인 인력 수급이 가능해진 것도 이점이다. 직무 경험을 먼저 제공하기 때문에 직무와 적성에 맞는 근로자를 선발해 조기 퇴사율을 낮출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홍기화 영림원소프트랩 기획혁신팀 상무는 “컴퓨터공학이나 산업공학, 경영정보학과 재학생들이 인턴으로 시작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례를 보면서 해당 전공의 후배들에게도 자연스럽게 회사를 알리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고용부에서도 자립준비청년들의 취업을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일학습병행제의 이점을 널리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지난해 12월 고용부와 보건복지부가 자립준비청년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현재 80여 명의 자립준비청년이 국민취업지원제도를 통해 취업에 도전하고 있다”며 “일학습병행제를 적극 활용하는 등 앞으로도 현장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권영범 영림원소프트랩 대표는 “일학습병행제로 현장 경험과 양질의 교육 과정을 융합해 취업준비생들이 적응력을 강화하고 높은 수준의 전문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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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직했니?” “결혼 안 하니?” 대신 이렇게 말해보세요[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반에서 몇 등 하니?”“취직했니?”“애인은 있니?”“결혼 언제 할 거니?”“애는 안 낳니?”“둘째 생각은 없냐?”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안부를 묻는 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안부를 가장한 잔소리 공격을 받는 처지에선 딱히 뭐라 답할 말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포털에 ‘명절 잔소리 대처법’을 검색하면 각종 방어 전략이 나온다. “취직했니?”라는 질문엔 “노후 대비는 하고 계세요?” “이번에 진급하셨어요?”라고 응수하라거나, “애인은 있니?”라는 물음엔 “결혼할 테니 집값 1억만 보태주세요”라고 답하라는 식이다. 가족 간 대화가 아니라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암만 애정과 관심이 담겼다 해도 민감한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애초 의도와 달리 서로에게 찜찜함만 남기는 대화로 끝나기 쉽다.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와 찜찜하고 껄끄럽게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입 닫고, 귀 닫은 채로 서로 대화를 하지 않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어떻게 묻고, 어떻게 대화해야 오해 없이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공감적 대화법에 관해 연구한 심리학 연구를 살펴보며 ‘명절 잔소리 대처법’이 아닌, ‘명절 안부 대화법’을 탐구해 보자. 직설화법, 쓸데없는 참견으로 여겨질 수도상대방에게 조언해주고 싶더라도 이래라저래라하는 직설적인 조언은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나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구체적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도, 상대방 입장에선 “너 잘못하고 있다” “지금 넌 틀렸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서다. 그래서 조언할 땐 완곡한 표현을 택해야 한다. 이 미묘한 경계선을 지키지 않으면 도움을 주고도 “오지랖 넣어 두시라”고 비난받는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니얼 볼저 미국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조언해줄 때 어떻게 말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연구했다. 연구팀은 대학생 실험 참가자를 모집해 마약, 낙태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주제로 대중 강연을 준비하라고 요청했다. 참가자들은 짧은 시간 내에 의견을 글로 정리하고,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상황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연구팀은 이들에게 강연 준비에 조언하는 도우미를 한 명씩 붙여줬다. 참가자 절반에게는 직설적인 말투로 조언하는 도우미를, 나머지에는 같은 내용이라도 완곡하게 조언하는 도우미를 짝지어 줬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직설적 조언“이런 말을 해드리고 싶네요. 좋은 강연을 하려면, 강연 맨 앞에 의견을 요약해서 말하고, 마지막에는 결론을 매우 강한 어조로 전달하세요.”●완곡한 조언“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겠네요. 보통 이런 경우에 좋은 강연을 하려면, 강연 맨 앞에 의견을 요약해서 말하고, 마지막에는 결론을 매우 강한 어조로 전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같은 내용을 전달했지만, 뉘앙스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연구팀은 강연이 끝나고 나서 참가자들이 강연 준비 기간 동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측정했다.그 결과 직설적 조언을 받은 사람들은 완곡한 조언을 받은 사람들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3배 더 상승했다. 연구팀은 “직설적 조언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됐다고 지적받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래서 자존심 상한다고 느꼈고, 상대방이 쓸데없이 참견한다고 생각했다”고 분석했다. 오지랖보다 침묵이 낫긴 하지만…그러면 이쯤에서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겠네?”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래라저래라 조언하는 것보단 나은 선택이다. “살 좀 빼라” “그래서 연애하겠냐?” 같은 조언이 아닌 비난에 가까운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만 이런 경우가 아니라 정말로 도움이 되고 싶은 조언을 하는 상황에선 조금 다르다. 왜 그런지 살펴보기 위해 볼저 교수 연구팀의 또 다른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연구팀은 앞서 실험과 같이 강연을 준비하는 상황을 조성했다. 이번에는 배정되는 도우미 조건을 △직설적 조언 △완곡한 조언 △아무 조언도 하지 않음 3가지로 나눴다. 그리고 각 조건에 속한 참가자들이 강연 준비를 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느꼈는지 측정했다. 그 결과는 아래 그래프와 같다.앞서 실험과 비슷하게 직설적 조언을 받은 그룹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느꼈다. 그런데 가장 스트레스를 적게 받은 그룹은 도우미가 침묵한 그룹이 아니라, 완곡한 조언을 받은 그룹이었다. 왜 그랬을까? 연구팀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말할 때 상대가 당신의 좋은 의도를 알아차리고, 이를 호의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진짜 상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면,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완곡한 방식으로 말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잘될 거야” vs “고생 많다” 어떤 말이 좋을까?“힘내” “잘될 거야” “툭툭 털어버려” 등의 말은 좋은 의도를 담고 있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공허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상대방이 실패 경험으로 자존감이 하락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잘될 거야” 같이 긍정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면, 자신의 힘든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라고 여기게 된다. “별것 아니다” “털어 버려라”라는 조언도 듣는 사람은 자신의 힘든 처지를 상대방이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긴다고 생각할 수 있다.예를 들어 열심히 노력했지만 시험을 망친 조카에게 “고작 수많은 시험 중 하나일 뿐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라고 하기보단, “열심히 노력했을 텐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힘들었겠다. 고생하고 있다” 등 그의 속상한 마음에 공감해 주는 화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한 실험 결과가 있다. 데니스 메리골드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힘든 상황에서 어떤 조언을 해줄 때 더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는지 연구했다. 실제로 시험을 망치거나, 해고당하거나, 실연당한 실험 참가자에게 실험 파트너가 어떤 위로를 했을 때 가장 도움이 됐는지 살펴본 것이다.참가자 일부에게는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네 얘기를 들으니 나도 정말 화난다” “만약 내가 너의 입장이라도 정말 기분이 나빴을 거야” “그걸 감당하느라고 고생했겠구나”라며 힘든 감정에 공감하는 말을 건넸다. 나머지에는 “그게 그렇게 별일은 아니야” “다음에는 더 잘할 거야” “적어도 이번 일을 통해 너는 뭔가를 배웠어”라고 긍정적 측면만 강조하는 말을 했다. 그 결과 힘든 경험으로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들은 긍정적 위로에 그다지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대화에 더 참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힘든 마음을 공감받은 사람들은 위로의 말을 건넨 실험 파트너와 관계가 돈독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상대의 떨떠름한 반응, 내 기분에도 영향 미쳐이쯤 되면 ‘대화하는데 고려해야 할 게 왜 이리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메리골드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대화는 내 기분과 자기효능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내 나름의 관심과 애정으로 대학, 취직, 결혼, 출산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조언했다고 쳐보자. “제가 알아서 해요”라는 조카의 떨떠름한 반응으로 인해 나의 관심이 무시당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만약 상대가 내 관심을 감사해하고,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내가 도움이 됐구나”하는 생각으로 자기효능감이 올라갈 수 있다. 그 반대 상황이라면 거절당하는 느낌으로 인해 기분이 나빠지고 자기효능감은 떨어진다. 연구팀은 “조언을 건네는 사람이 이런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되는 순간, 조언을 튕겨내는 상대를 비판하는 대화로 흐를 수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좋은 대화할 기회는 물 건너가게 된다는 의미다.이처럼 의도를 빗나간 대화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끝날 수 있다. 세 가지만 기억하자. △이래라저래라하는 직설적 말투보단 완곡하게 표현하자 △조언할 땐 완곡한 표현이 좋지만, 자신 없다면 그냥 침묵하자 △“힘내” “잘될 거야”란 말에 앞서 힘든 마음에 공감부터 해주자.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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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어도 못 버려” 잡동사니와 동거…왜 이렇게 버리기 아까울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멀쩡한 것을 어떻게 버리나.”60대 주부 김정선 씨(가명)는 최근 20년 넘은 김치냉장고를 두고 딸과 다퉜다. 새로 산 김치냉장고가 배달되던 날, 김 씨가 기존 냉장고를 버리지 않고 베란다에 두겠다고 고집한 게 빌미가 됐다. 딸을 비롯한 가족들은 소음이 심하고 전기 효율도 떨어지는 낡은 냉장고는 당장 버리자고 했다. 하지만 김 씨는 “아깝게 왜 버리느냐”고 버럭한 뒤 베란다 한켠에 자리를 마련했다. 그곳에는 이미 낡은 믹서기부터 선풍기, 청소기, 러닝머신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집안 곳곳에는 김 씨가 모아 둔 책, 신문, 장식품, 종이가방 같은 잡동사니로 가득하다.김 씨처럼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까워서” “멀쩡한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요즘처럼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라도 함부로 버리기 아까운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오래 사용해 추억이 깃든 것이라면 더욱 쉽지 않다. 그러나 짐을 정리하고 싶어도 물건을 버리는 일이 괴롭게 느껴지고, 뭘 버릴지 결정하지 못해 한 없이 정리를 미루는 수준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게다가 잡동사니로 인해 가족들이 불편해한다면 반드시 되짚어봐야 한다. 가족들에겐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물건으로 여겨져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잡동사니를 끼고 살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왜 이렇게 아까운 게 많고, 마음이 쓰여 버리지 못하는 게 많은 걸까.“100% 확신 없인 안 버려” 완벽주의 발동단순히 ‘짠순이’ ‘짠돌이’라고 여겨지기 쉽지만, 이들의 마음속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작용이 일어난다. 게으르고 귀찮아서 정리를 못하는 것만도 아니다.잡동사니를 끼고 사는 사람들을 30년 이상 연구해 온 랜디 프로스트 미국 스미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저장 강박’으로 설명한다. 저장 강박이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과도하게 쌓아두는 행동을 말한다. 물론 아까워서 못 버리는 사람들이 전부 저장 강박증에 걸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을 연구 내용이 많다.관련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이들은 ‘절대 낭비하지 않겠다’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는 완벽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완벽주의 성향의 사람들은 언제나 100%를 지향한다. 당장은 쓸모가 없더라도 100% 쓸모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물건을 버리지 않는다. 이를 거스르고 멀쩡한 물건을 버렸을 때 낭비했다는 생각에 빠지고, 죄책감과 찝찝함을 느낀다.●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나중에 필요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물건을 보관해 둬야 한다.·이 물건을 버리는 것은 내 일부를 버리는 것이다.·공짜로 나눠주는 물건을 가져오지 않으면 매우 안타깝다.·물건을 버리는 것은 물건을 가혹하게 대하는 것이다.·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내가 보관하는 물건은 중요한 것이다.·나는 버리는 것이 완벽하게 옳다고 느낄 때만 물건을 버릴 것이다.‘저장 신념 질문지’ 발췌이들은 ‘언젠간 꼭 쓸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품고, 아주 작은 쓰임새라도 있을 것 같다고 판단되는 물건은 일단 보관한다. 이렇게 아껴뒀던 물건 중에 한 번이라도 요긴한 사용처를 찾는 경험을 하면 “역시 내 말이 맞았어”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저장 행동을 강화한다.여기에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는 완벽주의적 성향과 불안감이 더해지면 버려도 된다는 확신을 갖기에 더욱 어려워진다. 물건을 실수로 버리는 일도 낭비에 해당하며, 이 역시 죄책감을 일으킨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물건이 쌓이는 속도가 버리는 속도를 앞지를 수밖에 없다.“언젠가 꼭 필요”…공짜-할인에 집착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공짜’ ‘할인’에 마음이 특히 약하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싼값에 얻을 수만 있다면, ‘언젠간 꼭 쓸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수납공간이 꽉 차 있어도 할인하는 물품을 잔뜩 사는 경우가 많다. 담아갈 가방이 있으면서도 상점에서 주는 공짜 종이가방을 반드시 챙겨온다. 온라인몰에서 상품을 주문할 땐 항상 선물 포장 요청 메시지를 남겨 포장지를 챙긴다. 가끔은 “아직 멀쩡한 걸 누가 버렸다”며 남이 버린 물건을 주워 오는 경우도 있다.그런데 손해나 낭비를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는 강박적 생각에 사로잡힐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보관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대가로 집안 공간을 원래 용도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지저분함을 참아야 한다. 안쓰던 물건이 필요할지도 모를 ‘언젠가’를 위해 훨씬 오랜 시간 동안 쾌적함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집안에 잡동사니가 가득 차 있는 것을 싫어하는 가족이 있다면 감정적 갈등도 견뎌야 한다.“추억이 사라질까 두려워” 과도한 의미부여잡동사니를 버리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해당 물건을 버리면 그에 얽힌 추억과 경험도 영영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에서는 ‘나(자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로 결정되는 ‘물질적 자아(material self)’가 있다고 본다. 가지고 있는 물건이 ‘나’라는 존재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만약 나의 소유가 곧 나의 존재라면, 나의 소유를 잃을 경우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나에게 의미 있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행위 역시 의미를 갖는다.그런데 잡동사니를 끼고 사는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하는 물건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사소한 물건을 처분할 때도 자신의 일부가 사라지는 일처럼 여기고, 남에겐 쓰레기에 불과한 것에도 집착한다. 예를 들어 해외여행에서 사용했던 지하철 탑승권이나 영수증 등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기념품처럼 모은다. 소유한 것이 나의 존재를 설명한다고 생각하기에 가지고 있는 하찮은 물건에도 나의 추억 또는 나의 일부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런 ‘소중한’ 물건들을 잘 보관하기보다는 집구석 어딘가에 방치해두기 일쑤라는 것이다.신문, 잡지, 책 등 정보가 들어 있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처분하면 그 안에 있는 정보를 영영 잃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주 찾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분야에서 저장 강박 증세를 다루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수년 치에 달하는 이메일을 삭제하지 않거나, 어느 폴더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각종 파일을 외장하드에 통째로 저장하는 이들이 연구 대상이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데이터를 함부로 삭제했다가 관련 정보를 영영 잃어버리거나,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정보를 없애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산다.공허한 마음 달래…의인화하기도잡동사니에 묻혀 사는 사람은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운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쇼핑 중독에 빠져 계속 물건을 사들이는 상황과도 유사하다. 텅 빈 마음을 물건들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한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슬프고 우울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자신을 위해 물건을 더 많이 사들이는 결정을 내렸다. 마음이 허한 사람들이 잡동사니와 함께 사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지난해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성인 108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물건을 못 버리는 성향이 있는 이들 가운데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77.7%에 달했다. 반면 물건을 버리는 데 문제없는 이들 중에서는 36.8%에 불과했다.연구팀은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고립돼 외로움을 많이 느낄수록 사람 대신 물건에 애착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건이 외로움에 대한 일종의 보상인 셈이다. 연구팀은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습관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사물을 의인화하는 경향도 보인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척 놀랜드(톰 행크스)가 대표적이다. 혼자 무인도에 조난된 그는 떠내려온 택배 상자에 들어 있던 배구공에 눈코입을 그린 뒤 ‘윌슨’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로 삼는다. 폭풍우가 몰아친 후 윌슨이 바다에 떠내려가자, 그는 마치 자식을 잃은 듯 절규한다.버리는 물건에 안쓰러움을 느낀 적이 있다면 물건을 의인화한 것이다. “오래 썼는데, 버리려니 미안하네” “이 아이가 쓰레기 폐기장으로 가는 긴 여행을 하다 결국 파쇄되겠지…”라며 감정이입을 한다. 그래서 특별히 소중한 물건이 아니어도 불쌍한 마음에 버리기 어려워한다.노인층에 3배 많아…“하나 사면, 하나 버려야”국내 연구사례는 아직 없지만, 해외에서는 물건을 못 버리는 성향의 노인층이 젊은 층보다 약 3배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히 혼자 사는 경우에 두드러진다. 사회생활 빈도가 줄어들고, 교류하는 대인 관계 폭이 좁아지면서 이런 성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2017년 국제학술지 ‘노인정신의학’에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잡동사니를 쌓아두고 사는 성향은 40세 전부터 조금씩 조짐을 보이다가 55세 이후 급격히 증가한다. 은퇴 등으로 사회적 관계에서 점차 고립되는 것과 관련 있다. 이 중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노인의 저장 강박과 관련한 연구 13개를 종합 분석한 결과다.대부분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그친다. 하지만 저장 강박 수준이 심각한 경우라면 쉬이 넘길 일이 아니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5)에선 2013년부터 강박장애의 일종인 ‘저장장애’로 분류할 정도다. 집을 온통 쓰레기로 채우고 사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평생 유병률은 2~ 6%다. 이런 수준이면 사실 치료가 쉽지 않다. 증상은 같지만, 각자의 발병 원인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치료자가 짐을 하나씩 같이 처분하는 수준으로 도와줘도 정리가 어렵다.아직 병리적 수준이 아니라면 당연히 희망은 있다. ‘저장장애’의 저자 유성진 한양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일상에서 쉽게 시도해 볼 만한 방법으로 ‘선입선출’ 원칙을 추천했다. 유 교수는 “물건이 생활공간을 침범해 본래의 기능대로 공간을 쓰지 못하는 것이 저장장애의 핵심적 문제”라며 “새로운 물건을 들여놓는 경우 기존 물건을 버리는 원칙을 지키는 ‘선입선출’ 규칙으로 물건 총량을 제한하는 방법이 특히 실용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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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쓸모없어도 못 버린다… 소유의 고통[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60대 주부 김정선(가명) 씨는 최근 20년 넘은 김치냉장고를 두고 딸과 다퉜다. 새로 산 김치냉장고가 배달되던 날, 김 씨가 기존 냉장고를 버리지 않고 베란다에 두겠다고 고집한 게 빌미가 됐다. 딸을 비롯한 가족들은 소음이 심하고 전기 효율도 떨어지는 낡은 냉장고는 당장 버리자고 했다. 하지만 김 씨는 “왜 아까운 것을 버리느냐”고 버럭한 뒤 베란다 한켠에 자리를 마련했다. 그곳에는 이미 낡은 믹서기부터 선풍기, 청소기, 러닝머신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집안 곳곳에도 김 씨가 모아 둔 책, 신문, 장식품, 종이가방 같은 잡동사니가 가득하다. 김 씨처럼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아까워서” “멀쩡한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요즘처럼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라도 함부로 버리기 아까운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추억이 깃든 것이라면 더욱 쉽지 않다. 그러나 짐을 정리하고 싶어도 물건을 버리는 일이 괴롭게 느껴지거나, 무엇을 버려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수준이라면 왜 그런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잡동사니로 인해 가족들이 불편해한다면 반드시 되짚어 봐야 한다. 왜 이렇게 아까운 게 많고, 마음이 쓰여 버리지 못하는 게 많은 걸까.●“언젠간 꼭 필요” 100% 확신 없인 못 버려단순히 ‘짠순이’ ‘짠돌이’라고 여겨지기 쉽지만, 이들의 마음속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작용이 일어난다. 잡동사니를 끼고 사는 사람들을 30년 이상 연구한 랜디 프로스트 미국 스미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저장 강박’으로 설명한다. 저장 강박이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과도하게 쌓아두는 행동을 말한다. 아까워서 못 버리는 사람들이 전부 저장 강박증에 걸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을 만한 연구 내용이 많다. 관련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이들은 ‘절대 낭비하지 않겠다’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는 완벽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완벽주의 성향 사람들은 언제나 100%를 지향한다. 당장은 쓸모가 없더라도 100% 쓸모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물건을 버리지 않는다. 이를 거스르고 멀쩡한 물건을 버렸을 때 낭비했다는 생각에 빠지고, 죄책감과 찝찝함을 느낀다. 이들은 ‘언젠간 꼭 쓸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품고, 아주 작은 쓰임새라도 있을 것 같다고 판단되는 물건은 일단 보관한다. 이렇게 아껴뒀던 물건 중에 한 번이라도 요긴한 사용처를 찾는 경험을 하면 “역시 내 말이 맞았어”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저장 행동을 강화한다. 여기에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는 완벽주의 성향과 불안감이 더해지면 버려도 된다는 확신을 갖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물건을 실수로 버리는 일도 낭비에 해당하며 이 역시 죄책감을 일으킨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물건이 쌓이는 속도가 버리는 속도를 앞지를 수밖에 없다.●“추억이 사라질지 몰라”잡동사니를 버리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해당 물건을 버리면 그에 얽힌 추억과 경험도 영영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에서는 ‘나(자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로 결정되는 물질적 자아(material self)가 있다고 본다. 가지고 있는 물건이 나라는 존재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나에게 의미 있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행위 역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잡동사니를 끼고 사는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하는 물건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사소한 물건을 처분할 때도 자신 일부가 사라지는 일처럼 여기고, 남에겐 쓰레기에 불과한 것에도 집착한다. 해외여행에서 사용했던 지하철 탑승권이나 영수증 등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기념품처럼 모은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런 ‘소중한’ 물건을 잘 보관하기보다는 집구석 어딘가에 방치해 두기 일쑤라는 것이다. 신문, 잡지, 책같이 정보가 들어 있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처분하면 그 안에 있는 정보를 영영 잃게 된다는 생각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주 찾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분야에서 저장 강박 증세를 다루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수년 치 이메일을 삭제하지 않거나, 어느 폴더에 뭐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각종 파일을 외장하드에 통째로 저장하는 이들이 연구 대상이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데이터를 함부로 삭제했다가 관련 정보를 영영 잃어버리거나,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정보를 없애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산다.● 물건에 위안 느껴… 외로운 걸지도잡동사니에 묻혀 사는 사람은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운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조사한 성인 1080명 가운데 물건을 못 버리는 성향이 있는 이들 중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77.7%에 달했다. 반면 물건을 버리는 데 문제없는 이들 중에서는 36.8%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외로움을 많이 느낄수록 사람 대신 물건에 애착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건이 외로움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연구팀은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습관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물을 의인화하는 경향도 보인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 주인공 척 놀랜드(톰 행크스)가 대표적이다. 혼자 무인도에 조난된 그는 떠내려온 택배 상자에 들어 있던 배구공에 눈 코 입을 그린 뒤 ‘윌슨’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로 삼는다. 폭풍우가 몰아친 후 윌슨이 바다에 떠내려가자 그는 자식을 잃은 듯 절규한다. 버리는 물건에 안쓰러움을 느낀 적이 있다면 물건을 의인화한 것이다. “오래 썼는데, 버리려니 미안하네” “이 아이가 쓰레기 폐기장으로 가는 긴 여행을 하다 결국 묻히겠지”라며 감정이입을 한다. 그래서 특별히 소중한 물건이 아니어도 불쌍한 마음에 버리기를 어려워한다.● 노인 중에 많아… 심하면 강박장애국내 연구사례는 아직 없지만 해외에서는 물건을 못 버리는 성향의 노인층이 젊은 층보다 약 3배 많다는 연구 결과가 적잖다. 특히 혼자 사는 경우에 두드러진다. 사회생활 빈도가 줄어들고 교류하는 대인 관계 폭이 좁아지면서 이런 성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2017년 국제학술지 ‘노인정신의학’에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잡동사니를 쌓아두고 사는 성향은 40세 전부터 조금씩 조짐을 보이다가 55세 이후 급격히 증가한다. 은퇴 등으로 사회적 관계에서 점차 고립되는 것과 관련 있다. 이 중에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저장 강박은 대부분 용인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그친다. 하지만 저장 강박 수준이 심각하다면 쉬이 넘길 일이 아니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5)에선 2013년부터 강박장애 일종인 저장장애로 분류할 정도다. 집을 온통 쓰레기로 채우고 사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평생 유병률은 2∼6%다. 이런 수준이면 치료가 쉽지 않다. 증상은 같지만 각자 발병 원인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치료자가 짐을 하나씩 같이 처분하며 도와줘도 정리가 어렵다. 아직 병리적 수준이 아니라면 당연히 희망은 있다. ‘저장장애’ 저자 유성진 한양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새로운 물건을 들여놓는 경우 기존 물건을 버리는 원칙을 지키는 ‘선입선출(先入先出)’ 규칙을 지켜 물건 총량을 제한하는 방법이 실용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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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대학교, 중앙아시아에 제약보국의 꿈을 심다

    연세대학교(총장 서승환)는 우즈베키스탄 제약산업발전청에서 발주한 ‘타슈켄트 제약산업단지 조성 1단계 관리단 사업’에 선정됐다. 연세대는 이번 사업을 위해 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디에이그룹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사무소, 문엔지니어링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사업 총괄 책임자는 연세대 생명공학과 한균희 교수이며, 강혜영 약학대학장 등 약대 교수 6명도 사업에 참여한다. 한 교수는 지난달 29일 우즈베키스탄 제약산업발전청을 방문해 아지조프 압둘라 압디살라모피치 청장과 착수보고회를 개최했다. 타슈켄트 제약산업단지 조성 1단계 관리단 사업은 우즈베키스탄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타슈켄트 주 보스탄릭 지역에 제약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제약산업 경쟁력 제고에 필요한 핵심 인재를 양성하고, 제약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이번 계약을 통해 체결한 주 사업 범위는 △국립약학대학 건축 △기자재 공급 △정보통신기술 시스템 구축 △교육 컨설팅 서비스 등이다. 총 사업비는 9860만 달러이며, 이 가운데 8370만 달러는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 지원금이다. 연세대는 관리단 사업비 96억 원 중 30%에 해당하는 약 28억 5000만 원을 지급받는다. 향후 연세대 자문단은 △학부과정 및 대학원 석사과정 교육과정 수립 △대학운영체계 수립 등 교육 컨설팅 △교수 역량 강화 교육 △교육 및 연구용 장비 선정 및 입찰 등 선진적인 교육과정을 전수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은 국내기업의 해외진출 확대뿐만 아니라, 양국의 과학기술 외교 및 경제협력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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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영상대학교, 영상 콘텐츠 네트워킹데이 개최

    방송 특성화 대학인 한국영상대학교(총장 유재원)는 19일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코리아에서 ‘영상 콘텐츠 네트워킹데이’를 개최했다. 영상 콘텐츠 관련 기업과 한국영상대 동문 간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영상인들이 새로운 협업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255명의 기업 대표, 관계자, 한국영상대 동문이 참석했다. 행사 주요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산학 협력 성공 사례 공유’가 있었다. 이를 통해 동문들은 산업 주요 동향, 혁신적인 아이디어 등을 듣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소리를 그리다’의 진효진 대표, ‘재담미디어’의 류수정 팀장, ‘리플로우’의 조영근 대표 등 동문 소개 세션에서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경력과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동문회는 장학금을 전달해 후학 양성에 힘을 보탰다. 조동관 동문회장은 “이번 네트워킹 데이는 영상 계열 기업과 동문들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협력 기회를 찾기 위한 최고의 기회였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우리 동문이 한곳에 모이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자리가 생겨 이야기를 나누고 협력의 문을 열게 된 것은 서로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동문회원들이 모은 소중한 장학금이 미래의 영상인에게 뜻깊게 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동문 간의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협력을 위한 미래의 토대를 마련하는 출발점이 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한국영상대는 앞으로도 이와 같은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동문 간의 네트워킹과 협업을 촉진할 계획이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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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대학교, 수험생-학부모 함께 참여하는 감성 이벤트 마련

    국민대학교(총장 정승렬)는 지난 13일 2024학년도 정시모집 조형대학 실기고사에 응시한 수험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감성 이벤트’를 개최했다. 이번 실기고사는 1단계 전형을 통과한 수험생 약 720명이 응시했다. 국민대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본부관과 북악관 등에 인생네컷 포토부스를 설치했다. 본부관 벽면에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따뜻한 마음을 담은 메시지를 부착할 수 있도록 감성 이벤트 판넬을 설치했다. 응원·격려·감사의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이 가득 차면, 행운을 상징하는 클로버와 하트 모양이 형상화되도록 기획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수고한 나에게, 감사한 부모님께, 함께 해준 친구에게’라는 기획의도에 맞게 합격을 소망하는 마음을 포스트잇에 담아 감성 이벤트 판넬에 부착했다. 국민대는 이벤트에 참여한 수험생 300명에게 후드집업, 스노우볼, 모자 등 합격 기원 굿즈 세트를 마련해 정승렬 총장과 이은형 대외협력처장이 직접 전달했다. 정승렬 총장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노고를 응원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며 “국민대는 추운 날씨도 이겨낼 수 있는 수험생들의 꿈과 열정을 아낌없이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각디자인학과를 지원한 우지현 양은 “디자인 최고의 명문대로 손꼽히는 국민대에 지원하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왔다”며 “친구와 함께 시험을 보러 왔는데, 생각지 않은 이벤트가 마련돼 있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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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대 제3기 연세 식품산업 최고위 과정 개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식품산업은 인공지능, 메타버스, 사물인터넷, 정보통신 등 첨단 기술이 융합된 푸드테크라는 새로운 비즈니스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식품 배달 분야 또한 무서운 속도로 성장 중이다. 연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상남경영원은 급변하는 식품산업 시장에서 기회를 선점할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고자 제3기 연세 식품산업 최고위과정을 개설한다. 본 과정은 국내 식품산업의 현재와 미래, 창업 비즈니스, 푸드테크의 현황과 발전 방향, 식품 산업의 법률적 이슈와 특허 등 4가지 모듈로 구성돼 있다. 식품 가공 기술의 적용 방안, 소비자 개인정보에 맞춘 맞춤형 상품 및 서비스 제공 방법, 유통 체계 및 유통 과정에서 첨단기술 접목 방안, 코로나 이후 식품산업 변화 등에 대한 체계적인 전문지식 습득이 가능하다. 주임교수인 생활과학대학 식품영영학과 함선옥 교수를 비롯해 안병익 한국푸드테크 회장, 신정규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교수, 권오희 365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박재현 한국브랜드마케팅연구소 대표,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UT인프라 김형미 이사, 이현재 우아한형제들 이사 등 식품 분야 최고 전문가와 기업 대표들이 지난 학기를 진행했다. 3월 21일 입학식을 시작으로 7월 4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40분부터 9시 10분까지 매주 2개의 강연이 열린다. 모집인원은 50명 내외. 강의는 상남경영원에서 진행된다. 연세식품산업 최고위 사무국에 전화나 홈페이지로 문의하면 된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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