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VS “대파 투표”…선거철엔 왜 네거티브 전략이 판칠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6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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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정보에 집중 ‘부정성 편향’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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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치인이 쏟아내는 막말과 독설이 선거철 뉴스를 장식할수록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해야 하는 유권자들은 씁쓸함을 느낄 뿐이다. 동아일보 DB
여야 정치인이 쏟아내는 막말과 독설이 선거철 뉴스를 장식할수록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해야 하는 유권자들은 씁쓸함을 느낄 뿐이다. 동아일보 DB

“그들이 저열하게 가면, 우리는 더 저열하게 가자.”

요즘 정치권을 보면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의 말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미셸 여사의 원래 발언은 “그들이 저열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이다. 국내 정치에서도 네거티브 경쟁이 심화할 때마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경구다.

여야는 최근 며칠간 선거유세 과정에서 ‘개’ ‘쓰레기’ ‘나베’ ‘학살 후예’ ‘매춘’ ‘불륜’ ‘깡패’ ‘계모’ 등 끝 모를 막말을 쏟아 냈다. 일각에선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대파를 들고 투표장에 가겠다는 촌극도 벌어진다. ‘상대가 이렇게 끔찍하니 나를 뽑아 달라’는 원색적 네거티브 경쟁이 치열하다. 개인 신상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도 심각한 수준이다.

비난의 향연 속에 정작 중요한 후보자의 비전, 정치철학, 정책 공약 등은 설 자리를 잃었다.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가 지역 발전을 위해 내건 핵심 공약은 무엇인지 떠올려 보라. 선거 공보물을 꼼꼼히 읽어 보지 않았다면 구체적으로 기억하기 어렵다. 각 당 주요 공약도 마찬가지다.

반면 상대 진영을 향해 던진 비난들은 한 번만 들어도 뇌리에 깊이 박힌다. 강렬하고 불쾌한 단어일수록 기억이 더 잘 난다. 이 점에서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싫어도 보게 되고, 불쾌해도 기억하게 되는 효과를 만들어 내는 선거철 네거티브 전략에 얽힌 심리적 기제를 살펴보자.

● 나쁜 소식·나쁜 말에 더 ‘솔깃’

인지심리학자들은 부정적 정보에 주의를 더 집중하는 심리적 특성인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부정성 편향은 좋은 정보보다 나쁜 정보에 더 각성되고 영향을 크게 받는 심리적 경향성을 말한다. 정책 공약보다 상대를 욕하는 뉴스에 귀가 더 쫑긋했다면 부정성 편향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부정성 편향은 일상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진짜 잘한다”는 칭찬은 쉽게 흘려보내지만 “진짜 못한다”는 비판은 두고두고 신경 쓴다. 또 주식 투자에서 같은 액수만큼 올랐을 때보다 떨어졌을 때 더 큰 심리적 타격을 받는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일어나도 우리는 삶에 나쁜 일이 가득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후보자의 공약보다 막말 한 번이 더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동아일보 DB
후보자의 공약보다 막말 한 번이 더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동아일보 DB

그래서 선거철에 특정 후보의 막말이나 편법, 범죄 이력같이 부정적인 정보는 강력한 힘을 갖는다. 후보자가 구설에 한 번 휘말리면 나중에 좋은 공약을 발표해도 유권자 머릿속에 좋게 각인되기 어렵다. 특히 정치 신인일수록 타격이 크다. 특정 대상에 대해 가장 처음 접한 정보가 나중에 접한 정보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갖는 첫인상 효과(Primary Effect)와 부정성 편향의 영향력이 합쳐지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는 정책 선거를 선호하는 유권자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막말 공방 같은 뉴스에 더 끌린다. 캐나다 맥길대 정치학과 연구팀은 실험참가자들에게 기사를 읽는 동안 안구 운동을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한다고 꾸미고, 정치 기사를 자유롭게 읽도록 했다. 실제 실험은 안구 운동과는 관계가 없었고, 이들이 어떤 기사를 얼마나 많이 읽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참가자 대부분은 공약 홍보보다 정쟁이나 갈등 위주의 기사를 더 먼저, 더 많이 클릭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정치적 갈등 뉴스를 많이 봤다.

●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나쁜 정보 수집 본능

왜 부정적 정보는 긍정적 정보보다 힘이 셀까.

인간 생존 본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과거 인간은 생존에 위협이 될 만한 부정적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알아두면 좋은 긍정적 정보보다는 모르면 큰일 나는 부정적 정보가 더 중요했다. 예를 들어 사냥감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보다 맹수를 피하려면 어디를 가지 말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사냥감이 많은 곳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찾아다닐 수 있지만 맹수는 일단 한 번 만나면 끝이기 때문이다.

먼 옛날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위협이 될만한 부정적 단서들에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먼 옛날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위협이 될만한 부정적 단서들에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더 이상 길에서 맹수를 만날 일은 없어졌지만, 부정적 정보는 여전히 우리 인지 체계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 중 어떤 소식을 먼저 들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다. 그러자 10명 중 8명이 나쁜 소식을 먼저 듣겠다고 답했다. 나쁜 소식을 들은 이들은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해결책을 찾는 행동에 곧장 돌입하는 경향성도 발견됐다.

또 다른 연구에서 다섯 살짜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을 때 역시 부정적인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이들에게 여러 표정을 담은 얼굴 사진을 각각 보여줬더니, 기쁘고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표정보다는 화나고, 슬프고, 두려운 표정을 지은 얼굴 사진을 먼저 찾아냈다.

우리 신체도 부정적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정보를 접하면 심장박동과 피부 전도도가 증가하며 안면 근육 수축이 일어나 평소 수준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긍정적 정보를 접했을 땐 이 같은 신체 반응이 거의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더라도 원래 수준으로 금방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일 세 번이 나쁜 일 한 번과 같은 값?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거철 네거티브 공세는 여러모로 가성비 좋은 전략이다. 일부 학자들은 부정성은 긍정성보다 3배 이상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후보자가 자신의 정치 철학이나 비전을 세 번 호소하는 것과 상대 후보 ‘디스’ 한 번 하는 것의 효과는 비슷하다.

부정성 편향을 연구해 온 랜디 라슨 미 워싱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1~3개월간 실험 참가자들에게 하루 기분을 세밀하게 기록하도록 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사람들은 보통 기분 좋은 날 세 번에 기분 나쁜 날 한 번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삶에서 긍정성과 부정성 비율이 3 대 1이 될 때 그다지 비극적이지도, 극적으로 행복하지도 않은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팀은 “부정적인 경험이 긍정적인 경험보다 약 3배 큰 효과를 낳는다”고 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부정성 편향’의 저자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4의 법칙’을 제안한다. 보통의 삶보다 조금 더 행복하려면 긍정성이 부정성보다 최소 4배는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를 선거운동에 대입해 보면 자신에 대한 긍정 이미지 홍보를 네 번 해야 상대의 네거티브 공세 한 번을 이길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기업에서는 부정 이슈를 덮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붓는다. 돈 내고 소비하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아주 냉혹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해 중국 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맥주 원료에 소변 보는 장면이 포착돼 소비량이 급감한 칭따오 맥주가 다시 반등하려면, 엄청난 규모의 긍정 이슈 물량 공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나쁜 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안타까운 점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14일뿐이라는 것이다. 짧은 시간 내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기 위해선 네거티브 공세가 더 효과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인간은 위협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정적 정보에 더 솔깃할 수는 있어도 이를 긍정적 정보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향한 비방과 욕설 같은 네거티브 공세는 장기적으론 유권자를 지쳐서 떠나게 만든다.

우리는 나쁜 소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뿐이지, 이를 더 좋아하지는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나쁜 소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뿐이지, 이를 더 좋아하지는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미 조지아공대 연구팀은 15개월 동안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게시글 52만여 개를 분석해 이들의 팔로어, 공유 빈도, 즐겨찾기 추이를 살펴봤다. 부정적 내용을 많이 올리는 이용자들은 초반에 관심을 끌었지만 15개월 후 팔로어 수 증가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긍정적 게시 글을 지속해서 올린 이용자의 팔로어 수는 훨씬 더 늘어났다. 장기적으로 보면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는 대상에게 더 끌리게 돼 있다는 것이다. 부정성이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긍정성을 더 선호한다.

유권자 “신상 공격하는 후보에게 투표 안 해”

주민들이 아파트 단지 내에 설치된 총선 선거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는 사진.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후보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심성욱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유권자는 네거티브 전략을 쓰는 후보자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특히 상대 후보자의 군대 문제나 가족, 종교, 건강 같은 신상을 공격하는 후보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그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사실상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네거티브 공세가 신상 공격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정치권이 꼭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다만 네거티브 홍보 내용 가운데 상대방의 재정 조달 대책 같은 정책 관련 이슈가 있을 때는 달랐다. 유권자들은 상대 후보의 신상이 아니라 정치적 견해와 주장을 비판할 때 이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비난의 화살이 후보자 개인을 향하는 게 아니라, 그의 정치적 주장을 향할 때 그나마 네거티브 전략이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후보에 대한 투표 의향은 신상 공격을 한 후보자보다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심 교수는 “상대 후보의 정치적 견해에 네거티브 공격을 한정할 때 비교적 더 합리적인 비판으로 보일 수 있다”며 “이번 총선처럼 신상 공격이 주를 이룬다면 장기적으로는 유권자들이 정치에 회의를 느껴 투표율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는 신상 비방에 집중한 후보자에게 투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목포=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다급한 정치권에선 막말과 원색적 비난을 쏟아 내며 우리의 눈과 귀를 잠시 홀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이를 이성적으로 평가하고 심판하는 능력 또한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는 나쁜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주의가 집중될 뿐, 이를 결코 더 좋아하는 게 아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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