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접종 의사 “바이러스와 ‘짱돌’들고 싸우다 이젠 총든 느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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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 시작]전국 200여 곳서 1만6813명 접종

“대통령에겐 언제 기회 옵니까”… 정은경 “순서 늦게 오시길” 26일 서울 마포구보건소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왼쪽)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대통령한테는 언제 기회를 
줍니까?”라고 묻자, 정 청장은 “순서가 늦게 오시기를…”이라고 답했다. 질병청은 “백신 불신으로 대통령이 먼저 맞는 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에겐 언제 기회 옵니까”… 정은경 “순서 늦게 오시길” 26일 서울 마포구보건소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왼쪽)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대통령한테는 언제 기회를 줍니까?”라고 묻자, 정 청장은 “순서가 늦게 오시기를…”이라고 답했다. 질병청은 “백신 불신으로 대통령이 먼저 맞는 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괴로워서 죽을 것 같다는 말이 어떤 건지 알았지요. 그 기억을 떠올리며 백신을 맞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심묘락 씨(60·여)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목소리에선 아픔이 느껴졌다. 경북 경산시 서린요양원의 간호부장인 심 씨는 2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았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2월 27일 서린요양원에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어르신 18명과 종사자 8명 등 26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요양원 안에 격리된 채 보낸 38일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서로를 응원하며 터널을 빠져나오려 했지만 감염된 어르신 중 4명은 끝내 세상을 떠났다.

“수년 넘게 같이 지냈던 분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가족을 잃은 것 같았어요.”

심 씨는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백신은 꼭 맞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일상 복귀 위한 여정의 시작



26일 오전 9시 전후로 전국 200여 개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재활시설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일제히 시작됐다. 오후 6시까지 1만6813명이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첫 번째 우선접종 대상자(약 28만9480명)의 5.81%, 전 국민(약 5200만 명)의 0.03%다.

충북 진천군 본정요양원 배양민 원장(41)도 그중 한 명이다. 본정요양원 역시 지난해 집단 감염으로 코호트 격리가 됐다. 배 원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직원들도 힘들었지만 어르신들이 가장 안타까웠다”며 “2차 접종까지 빨리 끝나서 어르신들이 하루빨리 자녀들과 자유롭게 만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맘때 ‘1차 유행’의 진원지였던 대구경북 지역의 접종 분위기는 특히 남달랐다. 당시 대구경북에서는 신규 확진자가 하루 800명 이상 쏟아질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6일 오전 9시 22분경 대구 1호 접종자인 북구 한솔요양병원 황순구 원장(61)이 왼팔 소매를 걷어붙이고 접종을 받자 주변에선 감격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함께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보건소를 방문했다. 현장에서 김윤태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원장(60)이 첫 접종을 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김 원장은 “그동안 마스크 잘 쓰고 개인위생 잘 지키라는 방역수칙을 볼 때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짱돌’ 들고 싸우는 느낌이었는데, 이제야 방탄복 입고 총 들고 제대로 싸우게 된 것 같다”고 반가워했다. 김 원장은 “접종을 했어도 방역수칙을 지키며 조심해야겠지만 조금은 더 자유롭고 적극적인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방역당국은 ‘공식적인 1호 접종자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시간으로만 보면 서울 노원구 상계요양원 요양보호사 이경순 씨(62·여)가 전국 기준 첫 번째 접종자였다. 이 씨는 이날 오전 8시 45분 접종을 받았다.

“제가 오늘 주간 근무라 일찍 보건소에 갔거든요. 1호 접종 이런 건 생각도 못하고 빨리 근무하러 가야 되니까 일찍 맞을 수 없겠냐고 부탁했더니 주사를 놔주셨어요.” 생각지도 않게 이름이 알려져 얼떨떨하면서도 그는 이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요양원으로 출근해 어르신들을 돌봤다. 이 씨는 “집이 가까워 영광을 차지한 것 같다”며 “늘 불안했는데 이젠 좀 안심이 된다. 어르신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 순조로운 접종…일부 경미한 이상반응

이날 접종은 우려와 달리 전국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노동훈 경기 의정부시 카네이션요양병원 원장(45)은 “백신 한 병에서 주사기로 10회분을 뽑아내야 하다 보니 용량 조절에 실패해 약이 모자랄까 걱정이었다”며 “막상 뽑아 보니 10명분보다 좀 더 여유 있는 양이 들어있었다”고 전했다.

경북 포항과 인천 등 일부 지역에서 접종 후 숨이 차고 혈압이 올랐다는 이상반응이 보고됐지만 아나필락시스(접종 후 급성반응) 등 심각한 상황은 없었다. 그럼에도 일부 요양병원은 3·1절 연휴 동안 응급 상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접종을 다음 달 2일 이후로 미뤘다. 만약 휴일 동안 39도 이상의 고열이나 호흡 곤란, 두드러기가 나타나면 119 또는 질병관리청 콜센터에 문의해야 한다.

이미지 image@donga.com·김소영 / 대구=명민준 기자
#1호 접종 의사#백신 접종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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