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 출입통제 안되고 배수구 막혀… 무너진 기본이 피해 키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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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해취약지역 둘러보니… 80대 급류 휩쓸려 숨진 도림천
‘통제’ 무시하고 산책 즐겨… 주요 하천 일부만 차단기 설치
지하차도 위험 알릴 전광판 없어, 배수구 쓰레기 가득… 아예 폐쇄도

1일 집중호우로 서울 도림천에서 80대 남성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지만 다음 날인 2일 시민들이 출입이 통제된 도림천에 들어가 산책하고 있다. 뉴스1
1일 집중호우로 서울 도림천에서 80대 남성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지만 다음 날인 2일 시민들이 출입이 통제된 도림천에 들어가 산책하고 있다. 뉴스1
“비가 안 와서 산책하러 들어왔는데요.”

폭우가 잠시 멎은 1일 오후 7시경 서울 관악구 도림교 인근 도림천 산책로에서는 시민들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탔다. 불과 6시간 전에 900m 떨어진 봉림교 인근 도림천에서 급류에 휩쓸린 80대 남성 A 씨가 이곳에서 구조됐다가 사망했다. 시민들은 이 같은 사고에도 별다른 경각심을 갖지 않는 듯했다.

사고 현장 주변은 구청 직원 1명이 안전선이 쳐진 진출입로에 서서 경광봉을 들고 통제하는 게 전부였다. 주변의 진출입로에는 지키는 직원이 없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최근 전국적으로 시간당 최고 100mm가 넘는 ‘물 폭탄’이 쏟아져 인명 피해가 이어지고 있지만 관계 당국의 적극적인 통제도, 이를 따르는 시민도 찾기 어려웠다.

○ 폭우 시 출입 차단기, 통제 인력 부족

도림천 사고 발생 이틀 전인 지난달 30일 동아일보 취재팀은 전 국립방재연구소장인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서울 도림천과 홍제천, 불광천 등 3곳을 들러 집중호우로 인한 사고 대비 상태를 점검했다. 현장을 둘러본 조 교수는 “집중호우 시 빠르면 5분 만에 하천 산책로가 물에 잠겨 버릴 수 있다. 진출입로 차단시설도 부족하고 현장을 지킬 인력도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우선 차단시설이 부족했다. 1일 시민 28명이 한때 고립될 정도로 물난리가 심했던 영등포구 대림역 인근 도림천에는 진출입로 2곳 중 1개꼴로만 차단기가 설치돼 있었다. 홍제천과 불광천 진출입로에도 차단기가 일부만 설치돼 있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폐쇄회로(CC)TV로 하천 수위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 일정 수위 이상이 되면 현장 점검을 나가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구 사정상 차단기를 한꺼번에 설치하기 어려웠다. 순차적으로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시민들은 하천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차단기가 내려가 있지 않으면 괜찮은 줄 알고 들어갈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도림천 급류 사망 사건의 경우 보다 적극적인 현장 통제가 필요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악구에 따르면 도림천에서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A 씨는 1일 오전 11시 16분경 관악구 문화교 인근 진출입로를 통해 산책로로 들어갔다. 당시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이날 오전 11시경 서울시에 호우주의보가 발표됐다.

관악구는 오전 11시 40분부터 ‘호우로 인해 하천 출입이 위험하니 출입을 삼가 달라’는 방송 안내를 여러 차례 했다. 진출입로 차단은 그로부터 40분 뒤인 낮 12시 20분경에야 이뤄졌다. 비는 이때부터 내리기 시작해 오후 1시까지 많은 비가 쏟아졌다. 한 시민이 급류에 휩쓸린 A 씨를 목격하고 신고한 시간은 낮 12시 37분이었다. 구 관계자는 “진출입로 차단 뒤 도림천 일대를 순찰했지만 A 씨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천 수위를 모니터링하는 현행 방식만으로는 구멍이 있는 것이다.

○ 배수 설비인 빗물받이는 담배꽁초로 막혀

서울 강남역 주변은 호우로 흙탕물로 뒤덮인 이후에도 빗물받이가 여전히 철판으로 막혀 있다. 행인들이 담배꽁초를 버린다며 인근 상점주가 막아놓은 것이다(위 사진).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의 한 빗물받이가 행인들이 버린 담배꽁초와 낙엽들로 막혀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강남역 주변은 호우로 흙탕물로 뒤덮인 이후에도 빗물받이가 여전히 철판으로 막혀 있다. 행인들이 담배꽁초를 버린다며 인근 상점주가 막아놓은 것이다(위 사진).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의 한 빗물받이가 행인들이 버린 담배꽁초와 낙엽들로 막혀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기본적인 침수 대비 장치 중 하나인 빗물받이 관리도 엉망이었다. 빗물받이는 빗물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로변 등에 설치된 배수시설이다. 집중호우에 대비해 장마철에는 개방된 상태로 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폭우가 내렸던 1일 상습 침수지역인 신촌역 일대를 둘러보니 상가 앞 빗물받이 대부분이 덮개로 덮여 있었다. 덮개가 없는 빗물받이 안에는 담배꽁초 등 생활 쓰레기가 가득했다.

조 교수는 “여름철이면 빗물받이로 냄새가 올라와 많이들 막아놓는데, 빗물받이가 막히면 폭우가 내릴 때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쓰레기도 방치하면 빗물받이 거름망을 막아 배수를 방해한다”고 했다. 2018년 8월에도 신촌역 일대의 빗물받이가 담배꽁초 등으로 막혀 1시간가량 침수됐지만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상습 침수지역인 강남역 일대는 폭우가 내린 1일 하수가 역류해 침수됐다. 강남역 주변의 빗물받이는 침수가 된 이후에도 덮개로 덮여 있었다. 아예 빗물받이 위를 철판으로 막아놓은 곳도 있었다. 한 상가 직원은 “빗물받이가 보이면 사람들이 담배꽁초를 버려 아예 막아놨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강남역 주변 지역은 배수시설에도 문제가 있지만, 눈에 보이는 빗물받이 관리부터 철저히 해야 비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서울 지하차도에도 폭우 위험 알릴 전광판 없어

지난달 23일 부산 동구 초량동에선 집중호우로 주변 도로로 흘러넘치던 물이 지하차도에 순식간에 흘러들어 지하차도를 지나던 3명이 사망했다. 당시 지하차도 출입구에 부착된 전광판에 침수 위험을 경고하는 안내 문구가 없던 것도 참변의 원인 중 하나였다.

취재팀이 지난달 31일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와 서울 송파·마포·은평구 지하차도 5곳을 확인한 결과 4곳에 집중호우가 내릴 때 진입금지 조치를 알릴 안내 전광판이 없었다. 자연재해대책법에 근거해 제정된 행정규칙 ‘지하 공간 침수방지를 위한 수방기준’에서는 지하차도에 이용자 진입 차단시설, 안내표지 등을 설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관할 관청인 서울시 동부도로사업소 관계자는 “실시간 수위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일정 수위 이상 되면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진입을 통제할 것”이라며 “아직 안내 전광판 설치 계획은 없다”고 했다. 안 전 교수는 “전광판이나 경고 방송, 구체적 위치를 명시한 재난 문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전 통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서울#수해취약지역#주요하천#호우#출입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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