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금주’ 지킨 음주 뺑소니범, 징역1년→집유 감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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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서 실형 선고받고 보석… ‘밤 10시 귀가’ 등 조건 지켜
2심 재판부 “치유법원 첫 사례”

음주 뺑소니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30대 남성이 ‘3개월간 절대 금주’ ‘오후 10시 귀가’ 등 보석 조건을 지킨 끝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을 받았다. 범죄 원인이 된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이른바 ‘치유법원’ 프로그램의 국내 첫 적용 사례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4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허모 씨(34)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또 1년간 특별 준수사항으로 “가능하면 술을 마시지 말고 가급적 오후 10시까지 귀가하라”는 완화된 조건을 덧붙여 보호관찰을 함께 명령했다.

과거 음주운전으로 2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허 씨는 올 1월 술을 마신 채 진로 변경 중인 차를 들이받았다가 도주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허 씨가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는데 항소심 첫 재판에서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재판부는 허 씨에게 국내에서 아직 전례가 없는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시범 실시해 볼 것을 제안했다. 허 씨가 음주에 대한 절제력과 책임감을 키워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이를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허 씨가 이를 받아들이자 재판부는 직권 보석을 결정하고 비공개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일상 활동보고서’를 올리도록 했다. 허 씨는 퇴근 후 술을 먹지 않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촬영해 카페에 올렸다. 매일 촬영 시간과 날짜, 자신의 얼굴이 담긴 15초 분량의 동영상을 첨부해야 했다. 판사, 검사, 변호인들은 허 씨의 변화된 일상에 댓글로 격려했다.

지난달 결심 공판에서 허 씨는 “금주가 습관이 되어가는 일상을 보며 큰 변화를 느꼈다”면서 “술로 다시는 가족을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모습도 보였다. 재판부는 이날 허 씨에게 “3개월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성실하게 과제를 수행했다”면서 “치유법원 첫 졸업자로서 우리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시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음주운전#치유법원#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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