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이유가 없다’ 병원조차 안 가던 독거어르신이 변한 이유는

  • 뉴스1
  • 입력 2019년 4월 15일 08시 26분


코멘트
© News1 DB
© News1 DB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박모씨(71)는 등반을 하다 다리를 다친 이후 바깥 출입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다른 사람과 보조기구 도움 없이는 혼자 서 있기도 힘들다. 집안에서도 지팡이를 짚고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을 정도다.

설상가상 외출을 시도했다 낙상 사고까지 당했다. 이혼한 지 오래됐고 하나뿐인 자녀와도 연락이 끊겼다. 혈압이 높고 당뇨도 있지만 거동이 불편해 병원 진료도 받지 못한다. 식사도 복지관 반찬서비스로 하루 한 끼만 해결한다. 대부분 시간을 혼자 지내다 보니 우울증도 찾아왔다.

성동구에 거주하는 최모씨(76)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이혼한 후 두 자녀와도 왕래 없이 혼자 살고 있다. 고혈압과 당뇨병 등을 앓고 있고 치매 고위험군 판정을 받았지만 “살 소망이 있어야죠”라며 병원 방문을 거부했다.

최씨는 치아가 나빠 음식을 잘 씹지도 못한다. 복지관에서 도시락이 와도 거의 매일 라면을 끓여 불려서 먹는다. 사회적 고립과 무기력감에 외로움과 우울감이 수시로 찾아온다. ‘외롭고 살 이유가 없다’는 최씨에겐 담배와 술이 유일한 탈출구가 되고 있다.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들이 보건소 건강돌봄팀이다. 건강돌봄팀은 마을의사, 간호사, 영양사, 사회복지사, 정신건강요원 등으로 구성됐다. 돌봄이 필요한 가정에 직접 찾아가 원스톱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고 사후관리까지 맡는다.

박씨의 집을 방문한 관악구 보건소 건강돌봄팀은 필요한 의료 서비스 지원은 물론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했다. 자원봉사자를 연결해 말벗서비스를 제공하고 요양보호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집에서 혼자 생활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수동침대와 안전바를 설치했다. 근력 강화를 위해 실내 운동을 교육하고, 요양보호사가 단백질 식품을 요리해 제공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이후에도 주 1회 가정방문과 전화상담을 계속하고 있다.

성동구 보건소 건강돌봄팀이 최씨를 위해 우선 목표로 잡은 것은 고혈압 관리와 치매 검진, 영양 생활습관 개선, 단절된 사회적 관계망 회복이었다. 고혈압약을 처방하고 치매지원센터에서 서울의료원과 연계해 신경과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한글배우기 등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계획도 세웠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신을 돌보지 않던 최씨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우울감이 개선되고 술도 전보다 줄였다. 극부 거부하던 병원 진료도 받기로 했다. 손때 묻은 앨범을 꺼내 옛 사진들을 보여주며 자식들 얘기도 들려줬다.

성동구 보건소 건강돌봄팀에서 활동한 한 의사는 “건강돌봄팀은 건강돌봄을 필요로 하는 시민의 집으로 직접 찾아간다”며 “각자 전문분야별로 돌봄 대상자에게 꼭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 돌봄서비스의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12월 관악구, 노원구, 성동구, 은평구 4개구에서 시범운영한 건강돌봄을 올해 10개구로 확대한다. 5월까지 신규 참여 자치구를 선정한 후 7월부터 서비스를 추진한다. 2022년까지 전 자치구로 확대할 계획이다.

건강돌봄은 건강뿐 아니라 생활환경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전국 최초의 통합돌봄서비스다. 시민 누구나 정든 지역에서 건강한 노후 보내기를 실현해 나가는 게 목표다.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88.6%는 건강할 때 현재 거주하는 집에서 살기를 희망하고, 57.6%는 거동이 불편해져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어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열린 ‘서울케어-건강돌봄 선포식’에서 “우리나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며 “이 사업의 최종목표는 돌봄이 필요한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성화해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원 서울의료원 과장은 “대부분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은 환경이 안 좋기 때문에 다시 건강상태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분들을 위해서는 의료 이외에 복지 분야 전문가들이 협력해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