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지식전수 넘어 생산해야… 高大 경쟁자는 삼성같은 대기업”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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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4년 보내고 2월 말 퇴임하는 염재호 고려대 총장 인터뷰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인터뷰에서 “고려대의 경쟁 상대는 대기업이다. 대학의 역할은 ‘지식 전수’에서 ‘지식 생산’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4년 전 총장 취임 직후 ‘상대평가, 출석체크, 시험감독’을 폐지하고 성적 우수 장학금을 없앤 그는 “새로운 시도로 충격을 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염 총장은 28일 퇴임한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인터뷰에서 “고려대의 경쟁 상대는 대기업이다. 대학의 역할은 ‘지식 전수’에서 ‘지식 생산’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4년 전 총장 취임 직후 ‘상대평가, 출석체크, 시험감독’을 폐지하고 성적 우수 장학금을 없앤 그는 “새로운 시도로 충격을 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염 총장은 28일 퇴임한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고려대의 경쟁 상대는 다른 대학들이 아니라 삼성, 현대차, SK, LG 같은 대기업입니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64)은 지난 4년 동안 고려대를 ‘지식 전수’가 아닌 ‘지식 생산’의 근거지로 변화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고 밝혔다. 현재를 ‘21세기 문명사적 전환기’로 규정한 그는 “더 이상 대학이 20세기 패러다임에 머물면 안 되고 외부와의 네트워크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학협력으로 외부에서 연간 5000억 원 이상이 고려대로 들어오는 것을 그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4년의 총장 임기를 마치고 28일 퇴임하는 염 총장을 서울 성북구 고려대 본관 인촌 챔버에서 만나 한국 대학이 가야 할 길과 고려대의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 “대학을 ‘지식의 놀이동산’으로 바꿔야”


‘상대평가 폐지, 출석체크 폐지, 시험감독 폐지.’

염 총장은 2015년 3월 취임 직후 이와 같은 ‘3무(無) 정책’을 추진했다. 기존 대학 수업의 기본 틀을 깨는 파격이었다. 학생들이 평가에 얽매여 좋은 성적을 받기에 유리한 과목만 골라 수강하는 폐해를 없애려는 목적이었다.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수동적으로 교수 강의를 듣고 외워 성적을 높이는 데만 매달리는 학생 다수에게 ‘더 이상 그렇게는 안 된다’는 자극을 주고 싶었다는 게 염 총장의 설명이다. ‘성적 우수 장학금’을 없애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도 같은 목적이었다. 그는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해서 충격을 주고 화두를 던지는 것이 제가 한 일이다. 그중 일부는 열매를 맺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진행형이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대학을 ‘지식의 놀이동산’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대기업 위주의 취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염 총장은 고려대 안에 컨테이너를 쌓아 학생들이 모여 토론하는 공간인 ‘파이빌(π-Ville)’을 만들었다. 또 학생의 아이디어를 직접 제품으로 생산하는 ‘엑스개라지(X-Garage)’도 세웠다. 염 총장은 “파이빌에선 다른 대학에 다니는 학생과 졸업생들까지 포함해 60여 개 팀이 돌아가면서 최장 두 달 단위로 활동한다”고 밝혔다.

그는 고려대가 국방부와 공동 운영하는 사이버국방학과를 취업 패러다임 전환의 성공 사례로 제시했다. 국방부가 사이버국방학과 학생들에게 4년간 학비 전액과 매달 생활비를 50만 원씩 지급하며 사이버 보안 전문 장교를 육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염 총장은 “전국 최고 수준인 사이버국방학과 학생들은 세계해커대회에서 2차례 우승하며 우수성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대가 파격적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의 근거로 등록금 환원율을 제시했다. 2017학년도 학생 1인당 교육비로 2286만 원을 써서 등록금 환원율이 241%라고 설명했다. 학생이 낸 등록금의 2.4배 이상을 교육에 투자했다는 의미다. 염 총장은 “이젠 대학이 등록금을 받고 가르치기만 하는 시대가 아니라 새 시대를 이끌 지식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 “코디네이터 있어야 SKY 간다? 완벽한 허구”

염 총장은 최근 종영한 최상위권 대학 입시 문제를 다룬 TV 드라마를 언급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잘못된 입시 정보가 유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액을 들여 입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해 성적과 봉사활동 등의 스펙을 철저하게 관리해주면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수시모집을 통해 이른바 ‘SKY(서울-고려-연세)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완벽한 허구’라는 것이다.

염 총장은 “학원가에서 코디네이터 나오는 드라마 내용의 70%가 사실이라고 한다는데 학원들이 학부모들을 겁줘서 끌고 가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코디네이터 고용 등에 들어갈 거액을 쓸 수 없는 집안의 학생이 고려대에 많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고려대 재학생 2만여 명의 가정 소득 수준을 0∼10분위로 구분했을 때 2700여 명이 기초생활수급자(소득 0분위)와 차상위계층(1분위), 차차상위계층(2분위)이다. 3분위까지가 전체의 22%”라고 밝혔다. 또 그는 ‘강남 학생들이 고려대에 많이 들어간다’는 소문도 오해라고 했다. 2019학년도 입시에서 수시모집으로 고려대에 합격한 3469명의 출신 고교가 1000개가 넘는다는 것이다. 염 총장은 “다양성을 중시해 신입생을 선발하다 보니 강남에선 오히려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는다며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염 총장은 수험생과 학부모가 사교육 업체를 찾아가 거액을 들여 입시 컨설팅을 받는 비정상적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고려대는 지난해 국내 대학 최초로 일대일 대면 입시 상담이 상시 가능한 진로진학상담센터를 열었다. 염 총장은 “대학이 직접 ‘우리는 이런 학생을 뽑는다’며 상담에 나서자 작년에만 전국 각지에서 3000명 넘는 학생이 상담을 받았다”고 말했다.

염 총장은 퇴임 후 당분간 자유롭게 책을 쓸 계획이라고 했다. 또 고등학교의 대안학교 같은 ‘대안대학’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구상도 밝혔다. 염 총장은 “지식의 절반이 10년 안에 의미가 없어질 만큼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며 “전통 학문 대신 생각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대안대학으로 기존 대학에 충격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주 djc@donga.com·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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