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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20일, 3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빅오션(Big Ocean)’이 데뷔했습니다. 준수한 외모에 호감 가는 미소, 부드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안무…. 언뜻 보기엔 매년 새롭게 데뷔하는 신인 아이돌 그룹 중 한 팀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빅오션의 무대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느 신인 그룹과 다른 점이 보였습니다. 우선 안무 중간중간 수어가 들어가 있었고요. 관람석의 모습도 남달랐습니다. 무대에 가수가 등장하면 대개 팬들이 환호하며 응원봉을 흔들고 응원하는 구호를 외치기 마련인데, 오히려 조용했던 것이죠. 대신 팬들은 양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손목을 수평 방향으로 돌리며 ‘머리위로 반짝반짝’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습니다.사실 빅오션을 따라 다니는 수식어가 하나 있습니다. ‘K팝 최초 청각 장애 아이돌 그룹’. 빅오션 멤버인 지석·현진·찬연 씨 모두 청각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팬들이 특별한 응원 동작을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소리를 듣는 데 어려움이 있는 멤버들이 행여나 팬들의 환호 소리에 무대 시작 타이밍을 놓칠까 우려해 아티스트 ‘맞춤형’ 응원을 한 셈이죠.그동안 청각에 장애가 있는 가수를 보기 어려웠던 것은, 노래하고 춤을 추려면 비트 하나도 놓치면 안되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빅오션은 어떻게 무대를 준비해 팬들 앞에 서는 것일까요? 데뷔 자체부터 관성을 깼다고 할 수 있는 빅오션의 이야기를 〈브렉퍼스트〉 팀이 만나 들어봤습니다. 기술로 청각장애 한계 보완데뷔 전 빅오션은 노래와 춤을 연습하는 방식부터 찾아야 했습니다. 자신이 내는 음이 원하는 음이름에 정확하게 도달하는지 알기 어려웠고, 멤버 간 청력에도 차이가 있어 같은 소리라도 각자 들리는 정도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는 소통이 수월했지만, 함께 음정을 잡거나 박자를 맞출 때는 타이밍이 어긋나기도 했습니다.고민 끝에 이들은 노래를 연습할 때 스마트폰의 튜너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자신이 내는 소리가 어떤 음이름에 해당하는지 알려주는 앱인데요. 이를 통해 어떤 근육에 어느 정도의 힘을 주면 어떤 높이의 소리가 나는지 체득해 나갔습니다. 반복 훈련을 통해 음정의 정확성을 높였고요. 노래를 녹음할 때는 인공지능(AI)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멤버들이 여러 번 노래를 부르면 AI가 멤버들의 목소리 데이터를 학습해 좀 더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보정하는 방식입니다.“AI 딥러닝의 도움을 받으면서 ‘우리한테서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많은 연습이 필요하구나’라고 생각하곤 해요. 언젠간 AI 딥러닝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라이브로 노래하는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석 씨)그렇다면 ‘칼군무’는 어떻게 맞춰나갔을까요. 빅오션은 시각과 촉각 등 다른 감각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빔 프로젝터에 숫자를 띄워두고, 박자에 따라 숫자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박자를 맞추기도 하고요. 발을 구를 때 발생하는 진동, 노래와 연동된 스마트워치가 음악의 BPM에 맞춰 전달하는 진동을 통해 멤버들이 박자를 인지하고 동시에 움직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하지만 다양한 기술과 방법을 활용하더라도 이들은 보조적 수단일 뿐입니다. 결국은 반복과 반복, 노력에 더해지는 노력이 필요했다고요.“기계에 완전히 의존할 수만은 없거든요. 연습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촬영해서 멤버 간 동작이 서로 일치하는지 계속 확인해야 해요.” (현진 씨)조금 느리지만, 더 멀리 갑니다빅오션 멤버들은 모두 20대입니다. 막내 지석 씨(21)가 20대 초반이고, 현진 씨(25)와 찬연 씨(26)는 20대 중반입니다. 아이돌 가수들이 보통 10대 중후반에 데뷔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빅오션은 ‘늦깎이’ 아이돌 그룹인 셈이죠.빅오션 멤버들은 데뷔 전 각기 다른 일을 했습니다. 지석 씨는 알파인 스키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학창 시절 지석 씨의 뛰어난 운동 신경을 알아본 학교 선생님의 권유에서 시작했습니다. 현진 씨는 청각장애인 유튜버 크리에이터로 활동했는데요, 청각 장애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깨고 싶어서 관련된 주제로 영상들을 많이 촬영해 제작했다고 합니다. 찬연 씨는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청능사(난청인의 특성을 고려해 청각기능의 평가와 재활을 담당하는 전문가)로 일했었고요. 모두에게 ‘아이돌’이란 먼 꿈입니다. 이들에게는 한 걸음 정도 더 멀었을 겁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저마다의 계기로 음악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9살 때 인공 와우 수술을 하게 됐는데, 소리가 기계적으로 들리다보니 소리라는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소리를 긍정적으로 느끼게 됐고, 클래식 음악부터 케이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어요” (현진 씨)지석 씨는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방탄소년단(BTS) 멤버 RM(본명 김남준·30)의 선행을 꼽았습니다. 2019년 9월 RM은 ‘청각장애 학생들의 음악 교육에 써달라’며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서울삼성학교에 1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그 때 지석 씨가 재학생이었습니다.“원래는 음악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악기를 배울 기회도 딱히 없었고요. 그런데 RM 선배님의 기부로 학교에서 다양한 악기를 배울 수 있게 됐거든요. 그러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이 커지더라고요.” (지석 씨)아이돌로서 출발은 늦었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과거’는 현재 활동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크리에이터로 활동했던 현진 씨는 카메라 앞에 섰기 때문에 데뷔 후에도 카메라가 낯설지 않습니다. 지석 씨는 운동신경이 있다보니 안무 습득을 빠르게 하는 편이고요. 찬연 씨는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가 높습니다. “청각장애 관련 전공을 공부했으니 멤버들의 청력이 어느정도인지 인지하고 ‘멤버들과 소통을 하려면 이정도로 말을 해야하겠구나’하고 이해할 수 있었죠. 또 간단히 응급처치가 필요한 경우 제가 하기도 해요.” (찬연 씨) ‘손짓’으로 일으킨 파도, 미국 빌보드도 주목요즘 아이돌들은 기본적으로 글로벌 활동을 병행합니다. 데뷔 전부터 해외 팬들의 관심을 얻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보컬 및 안무 연습뿐 아니라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요. 빅오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외국어는 음성 외국어가 아닌, 나라별 수어입니다. “수어도 언어기 때문에 나라마다 수어의 문법이 다르고 어순이 달라요. 다른 나라의 수어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은 셈이죠. ‘보는 언어’를 통해 더 많은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싶어요.” (현진 씨)실제로 빅오션 팬의 국적을 살펴보면 미국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달에는 미국 빌보드가 ‘이달의 K팝 루키’로 빅오션을 선정하고, “K팝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인 자신의 이야기와 음악으로 리스너들에게 영감을 준다”고 평했습니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팬들의 호응도 커지고 있고요. 빅오션 노래의 안무에는 수어도 상당수 반영돼있습니다. “음악은 ‘들으며’ 즐기는 거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수어를 사용함으로써 저희가 무대에 섰을 때 ‘보는 즐거움’까지 드리고 싶어요.” (지석 씨)“언젠가 각 나라에서 콘서트를 하게 될 때 그 나라의 수어를 저희 노래에 추가해 더 많은 ‘파도(빅오션의 팬덤 이름)’를 만날 거에요.” (찬연 씨) 가뜩이나 치열하다는 아이돌 세계. 어떤 사람들은 빅오션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빅오션은 그런 시선에 굴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통해 대중들이 느낄 희망에 더 집중하겠다고요.“사회의 틀, 고정관념 때문에 상처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장애 유무를 떠나 하고싶은 일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용기를 내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습니다!”아침 식사가 왜 영어로 Breakfast인지 아시나요? Fast는 ‘금식’이란 뜻입니다. Break Fast는 ‘금식을 깬다’는 의미죠. BreakFirst는 이른 아침 당신의 허기를 가장 먼저 깨주는 뉴스레터입니다. 초심을 잊은 당신, 관성에 매몰된 당신을 위해 다양한 업계에서 ‘처음’을 만들어낸 이들을 만납니다.매주 월요일 아침 발송되는 ‘BreakFirst: 관성을 깬 사람들’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권태와 졸음을 영감과 혁신으로 채워 보세요. 뉴스레터에서는 인터뷰 영상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뉴스레터 구독▶다른 영상도 보기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총 12년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취직을 하는 것. 한국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인생 코스입니다. 그렇게 마치 인생이 정해진 듯 살다가, 문득 혼란스러웠던 적도 있을 겁니다. 길 위에서 중간 중간 한 번씩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시기가 오기 때문입니다.유튜버로 활동 중인 ‘전진소녀’ 이아진 씨(22)는 이런 한국 사회의 관성을 깨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박차고 나와 빌더(목수) 일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고등학교 자퇴 후 빌더(목수)로 활동하다 건축학도가 된 청년’ 아진 씨의 성장 이야기를 〈브렉퍼스트〉 팀이 들어봤습니다.따돌림 속 시작된 용기책상 앞에 앉아 끈기있게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딸. 어머니는 딸이 한국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걸 걱정했습니다. 수업보다는 방과 후 활동, 체육을 더 열심히 하면서 중학교 1학년까지 참 재밌게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좀 더 자유로운 학교생활을 하길 바랐던 아진 씨는 14살이던 2016년 1월, 호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호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부딪히면서 배우는 영어가 더 나답다’라고 생각해 별 준비 없이 오른 유학길이었습니다. 적응이 늦어지면서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영어 한마디 할 줄 모르니 급우들이 놀려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고요. 결국 밥도 혼자서 먹고 수업을 들으러 갈 때도 혼자서 이동해야 했습니다.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종이를 구겨 아진 씨를 맞추는 ‘놀이’를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괴롭혀도 되는 애가 나였구나’라는 생각에 아진 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충격은 이내 ‘용기’로 바뀝니다. 자신을 괴롭힌 남학생의 멱살을 잡아버린 겁니다. 이어 구겨진 종이를 집어 들고 남학생 셔츠 안에 욱여넣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용기가 마음속에서 반짝인 순간이었던 것일까요.“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이후로 영어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어요. 성적도 오르고 자신감이 생기니까 같이 다니는 친구도 생겼어요.”관성에 회의 느낀 고교생, 자퇴하다유학 생활이 좀 순탄해졌다 싶은 어느 날, 아진 씨는 문득 회의를 느꼈습니다. ‘건축가’를 꿈 꾸며 대학 진학을 향해 가고 있던 때였습니다.“어느 정도 이름있는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한 뒤에는 이름 있는 회사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멋있는 건축가가 돼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문득 ‘그러면 좋은 건축가가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 다니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더라고요.”아진 씨는 자신을 잘 알았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대학에 입학하더라도 시간만 낭비하고 자퇴할 것이 뻔했습니다.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는 뭔지, 나는 뭘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방황은 1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부모님과 의논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직접 찾아봐야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부모님께서 ‘그렇게 하루하루 의미 없이 학교에 다니고 시간을 보낼 바엔 차라리 사회로 나가 원하는 걸 직접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해 주시더라고요. 그 조언에 공감해서 자퇴를 택했어요.”정글에서 살아남기한국으로 돌아오며 아진 씨는 ‘직접 두 발로 뛰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사실 막연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며 시간을 보낼 순 없었던 그는, 마침 목공을 배우며 목조 주택 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아버지를 따라 현장을 찾았습니다.“처음부터 ‘목공이 내 길’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죠. 그런데 직접 톱으로 나무도 잘라보고, 자그마한 선반도 직접 만들어보니 자연스럽게 목공이랑 친해졌어요. 건축에 관한 관심도 여전했으니, 두 손 두 발로 직접 집을 지어보면 깨닫는 게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죠.”사회생활은 정글이라고 하던가요. 울타리로 보호받던 학교와 달리 현장에서는 일일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귀동냥으로, 어깨너머로 배워야 했습니다. 뻔뻔함을 발동시켜 아버지뻘 되는 현장 ‘선배’들과도 친해져야 했고요.‘하루빨리 어엿한 빌더(목수)가 돼 1인분을 꼭 해내겠다’는 생각에 일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한 뒤에도 다시 현장을 찾았습니다. 자신이 연습해 본 것이 ‘선배’들이 한 것과 같은지 비교해 가며 일을 익히기 위해서였죠.어느 날엔 몸집보다 더 큰, 20㎏가량 되는 합판을 지붕에 올리려다 되려 그 합판에 몸이 깔린 적도 있고요. 그래서 일을 더 잘 해내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힘도 길렀다고 합니다. 지금은 합판은 물론, 시멘트 한 포대(약 40㎏)도 거뜬히 들고 계단을 오를 정도로 요령도 생기고 힘도 세졌습니다. 그렇게 약 6년간 지은 집이 스무 채가 넘습니다.아진 씨를 ‘10대 소녀’로만 바라보는 현장 분위기는 또 다른 난관이었습니다.‘어떻게 어린 여자애가 현장에서 일을 하냐, 여자가 무거운 것을 들 수 있겠냐, 얼마 못 가 그만둘 것 아니냐….’목조 주택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10대 소녀 목수라는 생소한 모습의 아진 씨에게 편견 섞인 날카로운 말들이 많이 날아왔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사고 치고 이런 현장에서 막일하는 것 아니냐’고 근거 없는 추측으로 비아냥 대는 사람도 있었답니다. 아진 씨가 자신의 성장기를 남기는 유튜브 채널에도 그런 종류의 악플이 달리곤 합니다.처음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아진 씨는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느라 바빴다고 합니다.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편견 섞인 말들을 계속 듣다 보니 스스로 제 정체성이 의심되기 시작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목공을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성장을 위해서 계속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래서 일일이 해명하기보다는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믿고 가는 법에 대해서도 배웠고요.”직업은 꿈이 아닌 ‘수단’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그는 ‘사람의 이야기가 채워져야만 콘크리트 덩어리였던 것이 비로소 집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고민하면서 ‘사람들을 웃게 해주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고요. 기본기를 쌓으면서 재밌게 일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는 생각이 들 무렵, 새로운 배움을 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동갑내기 친구들보다 2년 늦은 23학번으로 국내 한 대학 건축학부에 입학했습니다.“대학에 입학해서 설계 수업을 들었는데, 제 작품에 대해 교수님이 비평을 해주셨거든요. 흔히 ‘까인다’고 표현하는데, 저는 뭔가 배운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어요. 한 달 동안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건축학 공부가 힘들긴 한데, 더할 나위 없이 너무 재밌게 공부하고 있어요.”그렇다면 돌고 돌아 아진 씨의 꿈은 결국 건축가인 것일까요?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직업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 가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제 꿈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해주고, 사람들이랑 함께하는 것인데요. 그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 직업은 자주 바뀔 수도 있겠죠. 우리의 꿈을 직업을 갖는 걸로 단정지어 버리면 빨리 끝나버리잖아요. 직업이 갖는다는 게 끝이 되면 안 될 것 같아요.” 목수뿐 아니라 유튜버, 작가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아진 씨에게 마지막으로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물었습니다. 그는 “요즘 들어 더 간단해지는 것 같다”며 ‘행복’을 꼽았습니다. “꿈과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어쩌면 너무 멀리 쳐다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요. 오늘의 목표, 내일의 목표를 만들고 이를 성취하는 과정 속에서 제가 너무 힘들어하더라고요. 결국 행복해지려고 꿈을 좇는 것인데, 오늘 행복하지 않다면 20년 뒤에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싶어서 지금은 사소한 것에도 행복해하려고 합니다.”직업과 행복에 대한 철학을 말하는 그의 눈빛은 진지했지만, 20대 초반 청년 특유의 발랄함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보며 저 자신한테 ‘사랑해!♡(직접 양손으로 하트를 그려 보이며)’라고 외친단 말이에요. 이렇게 하니까 에너지가 솟더라고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아침 식사가 왜 영어로 Breakfast인지 아시나요? Fast는 ‘금식’이란 뜻입니다. Break Fast는 ‘금식을 깬다’는 의미죠. BreakFirst는 이른 아침 당신의 허기를 가장 먼저 깨주는 뉴스레터입니다. 초심을 잊은 당신, 관성에 매몰된 당신을 위해 다양한 업계에서 ‘처음’을 만들어낸 이들을 만납니다.매주 월요일 아침 발송되는 ‘BreakFirst: 관성을 깬 사람들’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권태와 졸음을 영감과 혁신으로 채워 보세요. 뉴스레터에서는 인터뷰 영상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뉴스레터 구독▶다른 영상도 보기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9월 BreakFirst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됐습니다. 상반기 진행된 시즌1에서는 관성을 깬 이들 11명을 인터뷰했었는데요. 시즌2에 합류한 제가 독자의 입장이 돼 되새겨볼만한 이야기들을 재발굴해 봤습니다. 추석 연휴를 맞아, 묵혀두기 아까운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며 새로운 인사이트를 떠올리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행운’이라는 이름의 ‘칠전팔기’조은우 ‘복을 만드는 사람들(복만사)’ 대표(43)는 냉동김밥 창시자입니다. ‘저렴하고 품질은 다소 떨어지는 냉동제품’이라는 고정관념은 기술 개발을 통해 ‘비건김밥’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냉동김밥을 만들기까지 조 대표는 수 차례 ‘불운’을 겪었습니다. 두 번의 고깃집, 죽, 이유식, 빵, 호떡, 치즈스틱까지 일곱 번이나 종목을 바꿔가며 창업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하게 됩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성공에 ‘여러 행운이 따랐다’고 했습니다. 사실 시즌1에 함께 한 인터뷰이 중 조 대표처럼 ‘운이 좋았다’고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성공 비결을 출중한 능력이나 운명에서 찾지 않은 겁니다. 겸손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제작진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들은 ‘행운’이 찾아올 때까지 끊임 없이 노력하고,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행운’이라고 표현한 순간들은 사실 ‘칠전팔기’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조 대표의 도전기를 들여다보면 그의 성공도 운보다 노력의 결과물에 더 가깝습니다. 사업 실패의 쓴맛을 보고, 1000만 원을 들고 하동으로 돌아왔을 때 포기해 버렸다면 지금의 성공은 없었을 겁니다. 운이 좋아 성공한 게 아니라, 성공할 때까지 도전한 것이 그의 성공 비결이었습니다.▶관련기사: ‘냉동김밥은 저렴한 냉동식품?’…편견을 깨자 길이 나타났다[BreakFirst]거창한 도전보다는 ‘실험’방송인, 작가, 영어 강사, 환경운동가, 에이전시 대표, 한글 과자 사업가….서로 연관성이 없는 직업들을 나열한 것 같은데, 한 사람이 가진 정체성이라고 하면 믿어지시나요? 주인공은 바로 한국살이 14년 차 방송인 타일러 라쉬(36)입니다. ‘비정상회담’에 나온 ‘대한미국인’, ‘뇌섹남’으로도 잘 알려져있고요. 끊임 없이 도전하는 그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타일러는 ‘도전’ 대신 ‘실험’이라는 독특한 표현을 꺼내들었습니다. 도전이라고 하면 거창한 목표를 설정해야할 것 같고, 그 규모에 압도돼 포기하기 쉬운 반면 최소 규모의 실험을 하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볼 수 있다는 겁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고, 안 되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해보니 어쩐지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입니다.“전 해보고 싶은게 있으면 ‘이걸 실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위 규모가 뭘까?’를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시작부터 거창한 목표를 잡으면 그 규모에 압도돼 포기하거나, 시간과 비용이 많이 투입돼서 비효율적이잖아요.”그렇다면 그 ‘최소한의 행위’로 이끄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타일러 ‘이 아이디어가 실현되면 어떨까’라는 궁금증을 꼽았습니다. 그는 “‘이게 가능할까?’라는 부정적 감정에 압도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감정을 이겨내고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요. ‘궁금한 곳으로, 일단 작은 한 걸음부터’라는 겁니다.▶관련기사: “레드 오션, 과감히 버리세요. 그리고 실험하세요. 나만의 블루오션에서”[BreakFirst]다른 사람들의 ‘관성’에 맞서기‘H는 묵음이야’라는 광고 카피라이트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외국 브랜드인가’라고 생각했던 분들도 계셨을텐데, 사실 길림양행이라는 아몬드 수입 유통업체가 만든 브랜드입니다. 이곳을 이끄는 윤문현 대표(46)는 200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위태로웠던 회사를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는 20대 후반이었습니다.이렇게만 하면 아버지의 후광과 젊은 감각으로 신규 사업을 성공시킨 2세 사업가 정도로 생각되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꺼리고 어려워하는 조직의 관성과 맞서야 했습니다. ‘사장님 아들’이 시키면 하는 거지, 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생각의 관성이란 그렇게 쉽게 깨지는 게 아니니깐요.“처음엔 회사 사람들 모두 저를 싫어했습니다. 어느 날 사장님이 쓰러지시고, 새파랗게 어린 아들이 와서 회사를 헤집고 있었으니까요.”직접 ‘선수’로 뛰어가며 ‘사장이 또 이상한 소리하네’라는 표정을 짓는 직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그의 이야기에는 곱씹어볼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관련기사: ‘사장이 또 이상한 소리하네’…직접 선수로 뛰며 개발하자 세계가 알아줬다[BreakFirst]‘무지’가 불러오는 자유로움국민 아기띠로 불리는 코니바이에린의 160g 초경량 아기띠는 임이랑 코니바이에린 대표(39)가 육아 과정에서 몸소 느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탄생했습니다. 첫째 아이를 낳은 지 40일쯤 지났을 무렵, 모유수유를 하던 임 대표에게 목 디스크(추간판탈출증)가 재발했다는데요. 급한대로 장비의 도움을 받자는 생각에 몸에 맞는 아기띠를 찾아 나섰는데, 만족스러운 제품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창업가 출신인 임 대표의 남편은 임 대표에게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요.임 대표는 마케터 출신으로, 업계 사람이 아니어서 ‘무지의 상태’였기에 오히려 업계의 관성을 깨고 제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시중에 마음에 드는 원단이 없어서 아기띠 전용 원단을 자체 생산했고, 공장 사장님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비싼 실을 썼습니다. “저는 업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관행에서 자유로웠던 것 같다”고요.관성이란 건 신기합니다. 멈춰 있을 때는 멈춰 있는 것이 관성이 되지만, 일단 굴러가기 시작하면 움직이는 것이 관성이 됩니다. 시즌1에 만난 모든 이들은 멈춰 있는 돌을 굴려 새로운 궤도를 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돌을 굴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단 해보자’는 정신이었습니다. “공부할 때 제일 중요한 건 모든 걸 완벽하게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훑고 그 후 복습하는 것입니다. 공부와 마찬가지로 창업의 전체 과정을 훑어보고 싶었어요. 가볍게 시작해보고, 될 것 같으면 좀 더 보강해서 다시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일단 해보자’는 마인드가 제 관성이기도 해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보는 거죠.”▶관련기사: 서울대 출신 마케터가 아기띠 개발에 뛰어든 이유[BreakFirst]이번 스페셜 편에서는 시즌1이 인터뷰한 이들 중 3분의 1밖에 다루지 못했는데요. 더 많은, 관성을 깬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에서 자세히 읽어보세요! BreakFirst는 앞으로도 ‘관성을 깬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발굴하겠습니다. 또 만나요!▶동아일보 ‘BreakFirst’▶유튜브로 보기아침 식사가 왜 영어로 Breakfast인지 아시나요? Fast는 ‘금식’이란 뜻입니다. Break Fast는 ‘금식을 깬다’는 의미죠. BreakFirst는 이른 아침 당신의 허기를 가장 먼저 깨주는 뉴스레터입니다. 초심을 잊은 당신, 관성에 매몰된 당신을 위해 다양한 업계에서 ‘처음’을 만들어낸 이들을 만납니다.매주 월요일 아침 발송되는 ‘BreakFirst: 관성을 깬 사람들’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권태와 졸음을 영감과 혁신으로 채워 보세요. 뉴스레터에서는 인터뷰 영상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공부에는 관심 없고 그저 놀기 좋아하는 10대 소년이 있었습니다. 대학 진학에 관심이 없었기에 대학에 떨어져도 충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20대 초반 우연히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고, 미국 유학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비자 발급을 거부당합니다. 유학원을 통해 준비한 서류가 알고 보니 여자 기숙학교 입학 허가서였거든요. 허술했습니다. 미국으로 유학간다며 수많은 지인들과 송별회까지 가졌는데, 처지가 우스워졌습니다. ‘미국 비자를 다시 준비하려면 6개월 이상 걸리는데….’ 급한 마음에 다른 행선지를 찾아 나섰고, 영국 비자는 상대적으로 받기 쉽다는 이야기에 영국행을 결정합니다.흔하디흔한 도피성 유학 아니냐고요? 그런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가 김명중 씨(MJ KIM·52)라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할 법한 청년이 어떤 관성을 깨고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됐을까요. 〈브렉퍼스트〉 팀이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살아남기 위한 도구: 사진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좌충우돌 끝에 영국의 한 대학 미디어학과에 입학했지만 김 씨 앞에 놓인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고난은 언어였습니다.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끼리 토론도 하고 함께 조별 과제도 해야 하는데, 그는 정말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영국에 도착했다고 갑자기 영어가 될 리가 없잖아요.” 자연스럽게 외톨이가 됐고, 학점도 좋지 않다 보니 제적당할 위기에 처했죠.그러던 중 그의 눈에 사진이 들어왔습니다. 사진은 고통받는 유학생에게 생존 수단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사진은 영어가 필요 없고, 혼자 다니면서 촬영하고 암실에서 현상하면 되잖아요. 학교에서 카메라를 빌려 한 번 촬영해 봤는데 그게 저한테 너무 재밌고 편안하고 주눅도 안 들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사진을 시작했습니다.”사진으로 숨을 한 번 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엔 두 번째 고난이 다가옵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1995년 그가 처음 영국에 갔을 때는 환율이 1파운드당 1350원 수준이었는데,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3000원을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었던 어머니는 김 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아들아, 지금 외환위기 때문에 모든 게 힘들어진 건 알지? 네가 한국에 와도 할 건 아무것도 없으니 거기(영국)서 알아서 살아남아라.”집안의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라’는 어머니의 특명까지 받은 김 씨는 학업을 중단하고 아르바이트에 나섭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노스(North·북한)에서 왔냐, 사우스(South·남한)에서 왔냐’고 묻던 그 시절, 20대 한국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전공과 관련 있는 프로덕션 회사 수백 곳에 지원했지만 다 떨어졌고요. 결국 밤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습니다.웃음을 개발하다그러던 어느 날, 김 씨는 영국의 한 조그마한 통신사에서 수습 사진 기자를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보게 됩니다. 그곳에서 일할 기회는 잡았지만, 새로운 고난이 시작됐습니다. 규모가 작은 언론사라 하더라도 런던에서 일어난 웬만한 사건 사고 소식은 다 다루는 곳이었고, 그래서 대법원 등에서 다루는 굵직한 사건들도 취재해야 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련 인물들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물 먹지 않고’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데, 외국인이었던 김 씨에게는 쉽지 않은 일들이었죠.살아남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웃음’이었습니다. 사건 사고와 현장 상황을 잘 파악하려면 결국 현지인인 영국 기자들에게 계속 물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인상을 팍 쓰면서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청소년기를 돌아보면 제가 원래 잘 웃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때부터 많이 웃으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던 것 같아요. 일이 끝나면 커피나 맥주 한 잔씩 사주면서 이야기도 나누고요. 좀 더 사람에 프렌들리하게 변하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어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던가요. 웃으며 졸졸 쫓아다니는 외국인 인턴 사진 기자를 수많은 영국 기자는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도와줬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국 기자들과 친해지기도 했고요. 그렇게 3, 4년가량 지났을 무렵 김 씨는 영국 주요 통신사인 프레스 어소시에이션(PA)으로부터 정식직원 채용 제안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좋은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쁜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영국 내무부에서 김 씨의 취업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인데요. 당시 영국은 EU 밖 국가의 국민을 고용하는 데 깐깐한 편이었습니다. 영국이나 EU 국가 내에서도 충분히 사진 기자를 고용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외국인을 채용하냐는 것이었습니다.추방될 위기에 처한 김 씨. 이런 김 씨의 안타까운 상황에 김 씨와 알고 지내던 영국 기자들이 나섭니다. ‘영국 언론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취업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내용으로 내무부에 항의하는 편지를 쓴 것인데요. 그렇게 모인 편지가 무려 50여 통이었습니다. 영국 내무부는 결국 취업을 허가했고, 김 씨는 PA에서 연예 담당 사진 기자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관성 깨는 원동력, ‘재미’PA를 거쳐 게티이미지로 자리를 옮긴 김 씨. 전 세계 영화제를 누비며 취재도 했고, 결혼도 했고, 첫 아이도 얻었습니다. 능력도 인정받고 남부러운 것 없는 안정적인 삶이었죠. 한 번의 경사가 더 생겼습니다. 둘째 아이 출산도 앞두게 된 겁니다. 그때 김 씨의 아내는 육아를 위해 퇴사를 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별안간 김 씨도 퇴사를 감행합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새로운 분야에서 재미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김 씨는 사진 취재에 대한 재미를 잃고 초상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데요. 퇴사하고 프리랜서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초상 사진을 촬영하는 연습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정말 무식했다’고 표현했습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만 가지고 퇴사를 했는데, 6개월 동안 아무런 일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굶어 죽는 줄 알았다고요.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은 많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습니다.“결국 선택인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준비되고 이직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또 이직했다고 행복하리란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그저 사진기자에서 사진작가로 넘어가고 싶었어요. ‘옳은 시기’라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해야겠다는 열정이 생기면, 그 열정에 맞는 행동이 뒤따르니까요. 퇴사는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월드 스타가 ‘MJ KIM’을 찾는 이유굶어 죽을 줄만 알았던 김 씨는 당시 전세계 유명 팝 걸그룹 스파이스걸스로부터 연락을 받게되면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스파이스걸스 멤버들의 까다로운 요구들을 잘 맞춰가며 작업하면서 업계에서 일 잘한다는 입소문도 났고요. 그렇게 업계 관계자의 소개로 폴 매카트니와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처음에는 매카트니의 전용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그의 공연 모습을 찍는 일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은 간사하다는 말이 있죠. 김 씨의 마음 한 켠에는 ‘똑같은 것이 반복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일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은 열정적으로 수천 장을 찍어서 몇 장을 골라내야 하는 작업인데, 처음에는 너무 재밌어서 공연 한 번 할 때마다 몇만 장씩 찍어서 골라냈었거든요. 그런데 점점 매너리즘에 빠졌고, 즐거움과 고마움을 잊게 되니까 사진에 대한 열정도 식더라고요. 그리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영화 포스터나 패션지 표지 같은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매카트니의 전속 사진작가로 3년가량 일하고 있던 어느 날, 매카트니는 김 씨를 앉혀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MJ, 너의 사진이 요즘은 나를 흥분시키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니?”매카트니의 강렬한 한마디에, 김 씨는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실 제 사진이 마음에 안 들면, 저를 바로 해고하고 다른 작가를 찾을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분이 매니저에게 ‘괜찮은 작가 좀 찾아와’라고 말하면 전 세계 수많은 사진작가가 앞다퉈 올 테고요. 그런데 그분은 제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 거잖아요. 무언가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것이 내 앞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배우게 된 기회였어요.”김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매카트니는 왜 오랜 시간 계속해서 김 씨에게 작업을 맡기는 걸까요. 김 씨에게 물으니 ‘저도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 실력이 월등해서 자꾸 저를 찾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제 사진이 다른 프로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같은 작업이라도 재밌게 하면 좋잖아요. 아마도 ‘MJ는 태도도 괜찮은 것 같고, 만나면 만날수록 편하네’라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실제로 김 씨는 스튜디오 촬영을 할 경우에도 즐거움과 편안한 분위기를 추구한다고 합니다. 촬영장 분위기도 마찬가집니다. 항상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샴페인부터 맥주, 와인까지 구비해 파티 분위기를 낸다고요. 클라이언트가 흡연자일 경우엔 스튜디오에 종류별로 담배까지 가져다두고요.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면 배우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역할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서로 다 같이 어울리면 (어색하지 않게) 즐거운 분위기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어요.” ‘프로’의 조건: 괴로움즐거운 분위기에서 촬영하면, 사진작가도 일하는 매 순간이 즐겁지 않을까요? 그런데 정작 김 씨는 사진을 촬영할 때 ‘괴롭다’고 했습니다. “일단 의뢰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괴로워요. 저는 프로 사진가고, 결과물이 좋아야 한다는 단서가 달린 것이잖아요. 겉으로는 촬영장에 음악도 틀어놓고 파티를 하듯 작업을 하는데, 제 안에서는 만 가지 생각이 교차해요. 내가 잘 하는 게 맞나, 사진은 잘 나오고 있나, 저 사람은 좋아할까 하는 생각들이요. 클라이언트가 제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좋아할 때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고 행복해져요.” 그렇다면 월드 스타의 전속 사진작가는 자신의 업(業)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작가답게 자부심과 예술적 철학을 갖고 있을 것 같았는데, 김 씨는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을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직업이란, 하루하루 살아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인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 행위를 통해서 주어지는 경제적 보상으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거잖아요. 제가 사진을 찍고 돈을 받아서 삶을 살 수 있는 매 순간이 감사해요.”사진작가는 자기 자신보다는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는 직업이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김 씨의 이름 석자 만큼이나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 작가’라는 수식어가 알려져 있으니까요.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삶이 때로는 허무하게 느껴지진 않을까요.“자기가 원하는 곳이 어디인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카메라 뒤에 있고 싶은 사람은 자괴감이 느껴질 일이 없어요. 카메라 앞에 서고 싶은 사람이 뒤에 있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자괴감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원하는 일을 하고 있나’라고 항상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인터뷰 시종일관 겸손함과 담백함을 유지하는 김 씨에게 간단한 질문을 하나 던져봤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사진작가 김명중을 할 건가요, 아니면 폴 매카트니를 할 건가요?”“당연히 폴 매카트니죠!”김 씨 역시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삶이 조금은 부러웠던 것인가 싶어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의 대답은 예상과는 사뭇 달랐지만 역시나 담백했습니다. “사진작가 김명중은 한 번 해봤잖아요.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어요!”아침 식사가 왜 영어로 Breakfast인지 아시나요? Fast는 ‘금식’이란 뜻입니다. Break Fast는 ‘금식을 깬다’는 의미죠. BreakFirst는 이른 아침 당신의 허기를 가장 먼저 깨주는 뉴스레터입니다. 초심을 잊은 당신, 관성에 매몰된 당신을 위해 다양한 업계에서 ‘처음’을 만들어낸 이들을 만납니다.매주 월요일 아침 발송되는 ‘BreakFirst: 관성을 깬 사람들’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권태와 졸음을 영감과 혁신으로 채워 보세요. 뉴스레터에서는 인터뷰 영상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뉴스레터 구독▶유튜브 링크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제목: 귀하의 고용에 관한 공지안녕하세요. 유감스러운 말씀을 전합니다.당사는 일부 직원을 감원하기로 했습니다. 유감스럽게 귀하도 정리해고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더 이상 직무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꽤 오랜 시간 재직하던 회사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받으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심지어 아무런 언질 없이요. 일단 당혹스러움, 배신감, 허무함과 같은 감정이 들 것 같고요. 그다음 누군가는 자기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새 직장을 찾아 나설 것이고, 아니면 재충전의 시간을 갖거나, 당분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 선택을 할 겁니다. 그런데 지난해 1월, 16년간 몸담았던 글로벌 기업 구글에서 디렉터(임원)까지 지내다 정리해고를 당한 정김경숙 씨(56·로이스 김)는 남들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걷습니다. 정리해고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마트 시급제 직원, 카페 바리스타, 택시 운전, 펫 시터 등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겁니다.부지런하게 사는 게 관성이어서 ‘오늘은 500보 이하로 걷기’ 같은 특이한 목표를 정해야만 집에서 쉴 수 있다고 하는데요. 남들이 보기에는 관성을 깨고 있지만 정작 스스로는 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그는 〈브렉퍼스트 시즌2〉의 첫 인터뷰이로 제격이었습니다.‘지천명’의 나이에 미국 본사로그가 미국으로 향한 건 2019년, 51살 때였습니다. 구글코리아의 커뮤니케이션팀 리드(총괄 임원)였던 그는 ‘구글 본사에 인터내셔널 미디어를 담당하는 사람을 두면 좋겠다’는 제안을 부사장에게 합니다. 미국 본사에 있는 커뮤니케이션팀과 각 국가에 있는 구글 지사의 커뮤니케이션팀이 유기적으로 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였습니다. 본사는 정 씨의 아이디어에 착안해 인터내셔널 미디어 담당직을 신설했습니다. 정 씨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자리는 아니었지만, 지원자 중 한 명이었던 정 씨에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미국행이 이뤄진 겁니다.“영어를 써야 하고, 게다가 말 잘하는 친구들이 모인 곳이 커뮤니케이션팀이거든요. 출국을 앞두고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거에요. 그래도 한 번 가보자, 가서 망하고 다시 돌아오더라도 일단 해보자고 생각하면서 본사로 갔어요.”팀이라고는 했지만, 처음에는 1명뿐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니 나라별 시차 때문에 새벽부터 저녁까지 업무를 해야 했죠. 하나씩 일을 풀어가며 성취감은 커졌고, 팀 규모도 점차 성장했습니다.16년간 믿은 도끼에 발등 찍히다 내로라하는 회사들까지 직원을 해고하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구글은 정리해고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풍파로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회사들이 구조조정을 할 때도, 구글은 안전한 곳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구글코리아부터 시작하면 16년간 구글에 몸담아왔기에 더 확신했습니다. “회사 후배들이 불안하다고 말하면, 제가 괜찮을 거라며 안심시켜 줬거든요. 저조차도 심리적으로 정리해고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였던 것이죠.”지난해 1월, 업무 이메일을 확인하려고 스마트폰을 켰습니다. 그런데 접속이 되질 않았습니다. ‘오류가 났나’ 생각하며 개인 메일함을 열었습니다. 거기에는 ‘당신 고용에 관한 공지’라는 제목의 이메일이 있었습니다. ‘생뚱맞은 제목이네’라는 생각을 하며 열어본 메일에는 ‘당신은 정리해고 대상’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처음에는 스팸 메일, 장난 메일이라 생각해 사실 다 읽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좀 이따가 저를 미국으로 이끌어주셨던 부사장님이 전화를 하셔서 ‘괜찮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때 실감하게 됐어요.”당시 구글은 전 직원의 6%에 해당하는 1만2000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벌입니다. 알고 보니 정 씨와 정 씨의 팀도 그 대상에 포함이 됐고요. 슬픔에는 다섯 단계(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가 있다고 하죠. 처음에는 구글이 대량 메일을 발송하면서 실수한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내일 ‘어제 보낸 건 실수였어. 너는 거기에 해당이 안 돼’라고 말하는 이메일이 다시 오진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런 메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더라고요. 난 열심히 일했고, 계속 인사 고과도 좋았고, 팀도 커졌고 인정도 받았는데. Why me?(왜 나야?) 하면서요. 제가 구글을 매우 좋아했거든요. 사람들도 저에게 ‘뼛속까지 구글러’라고 얘기하기도 했고요.”하지만 분노의 감정은 곧 현실에 대한 타협과 수용으로 이어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25년 이상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병가 한 번 써본 적이 없었습니다. ‘좀 쉬어갈 때도 됐지’라며 생각을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갭 이어(gap year)를 갖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정리해고 통지를 받은 지 이틀 뒤, 일요일 밤. 그는 평소 해보고 싶었지만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적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금요일에 정리해고 통지를 받았고 이틀이 지나 일요일 밤이 됐는데, 월요일이 오는 게 너무 두려운 거예요. 매일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내일부터는 날 찾는 사람이 없고, 그 많던 미팅도 없으니 ‘내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두렵더라고요.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구글 임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그런데 ‘좀 쉬어갈 때도 됐지’라고 생각한 사람 치곤 목록에 적은 내용들이 이상했습니다. 트레이더조(미국 마트) 시급제 직원, 스타벅스 바리스타, 리프트(‘우버’와 비슷한 공유차량 서비스) 운전기사, 펫 시터…. 각종 취미생활, 가고 싶은 여행지 등을 적는 게 일반적일 텐데 그가 적은 내용은 휴식이 아닌 ‘일(노동)’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몸 쓰는 일이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제품과 서비스의 한가운데서 고객을 직접 마주하는 일이었다는 점입니다.“커뮤니케이터, 마케터로서 중요한 능력은 스토리텔링 능력인데요. 스토리텔링이란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발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회사에 있을 때는 임원이다 보니 일선에서 사람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지더라고요. 저는 직접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내 스스로가 제품과 서비스의 일부가 돼 고객의 반응을 직접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정 씨는 트레이더조 크루로 일하고 싶은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온라인 지원을 넘어 이력서를 직접 들고 매장에 방문하는 열정까지 보입니다. 두 시간에 걸쳐 면접도 봤고요. 그렇게 다소 까다로운 크루 선발 절차를 통과해 냈지만, 정작 첫 출근날에는 망설였다고 합니다. 30년 가까이 대기업 사무직으로 일해온 관성을 깨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제 육신이 이 육체노동을 견뎌줄지 겁이 나기도 했고, 전혀 다른 세상에 나가서 잘 동화될지 걱정도 되더라고요.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의 디렉터’에서 마음의 체면을 낮춰 한 명의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임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갭 이어 기간 ‘아르바이트생’ 정 씨의 하루는 이랬습니다. 오전 3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는 트레이더조에서 일하고요. 트레이더조 근무 중 부여된 1시간의 점심시간 동안에는 리프트 운전을 뜁니다. 트레이더조에서 퇴근한 뒤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퇴근 후 가끔 펫 시터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마케팅 및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업무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실수를 엄청 많이 했습니다. 트레이더조 출근 첫날엔 딸기 상자가 스무 개 넘게 실린 카트를 밀다가 다 쏟아서 그날 마트의 딸기 장사를 망치기도 했다고 합니다.“실수를 하면 ‘내가 왜 굳이 이걸 하겠다고 했지’라고 후회했죠. 그래도 인생을 살아보니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동료들만 견뎌준다면 실수라는 경험을 통해서 또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워킹맘에게: 주변의 말에 귀를 닫으세요모토로라코리아와 한국 릴리를 거쳐 구글까지 25년 넘게 쉼 없이 달리다 ‘갭 이어’까지도 아르바이트로 빼곡한 일정으로 소화했던 정 씨. 그 사이 정 씨의 아들은 성인이 됐습니다. 문득 워킹맘으로서 정 씨는 어떻게 살아왔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나갔지만, 고민을 안 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그가 선택한 방법은 ‘선택과 집중’입니다. 평소에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적다면, 1박 2일 여행을 자주 떠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 그 기억을 각인시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알파맘’이 되려는 순간, 모든 스트레스와 죄책감을 자신이 다 안게 되거든요. 저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라고 생각했어요. ‘누구는 학원을 몇 개 보낸대’, ‘누구네 아들은 뭘 한대’라는 말을 들으면 불안해지니까 아예 귀를 막았어요. 저도 아이를 잘 키웠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키우는 과정에서 저도 행복했고 아이도 행복했다고 하니, 그걸로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해고당한 직장인에게: 자책하지 말고, 사람을 많이 만나세요인터뷰 말미, 정 씨에게 ‘직장을 잃게 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 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사실 누구도,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될 거예요. 정리해고라는 게 본인 잘못 때문이 아닌 경우가 많거든요. 본인을 자책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자존감을 스스로 높여줘야 하는 게 되게 중요하고요. 또 권고사직이나 정리해고를 당하면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는 경우가 많은데요, 오히려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위로를 받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또 다른 도움을 얻기도 하거든요.”하루에 3, 4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고, 여러 인터뷰에 응하며 여전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정 씨. 정리해고의 아픔을 빠르게 극복한 듯 보이는 모습에 기자는 그에게 짓궂은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다시 구글이 불러주면 간다? 안 간다?”질문을 들은 정 씨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글에) 가서 제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나오고 싶어요.”좌절을 극복한 것과는 별개로 애착을 가졌던 존재에 대해 미련이 남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사람 마음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정 씨는 ‘이 부분은 꼭 넣어달라’고 당부하며 아래와 같이 한 가지 단서를 달았습니다. “구글! (정리해고한 것) 나한테 사과해. 사과 안 하면 안 갈 거야!”아침 식사가 왜 영어로 Breakfast인지 아시나요? Fast는 ‘금식’이란 뜻입니다. Break Fast는 ‘금식을 깬다’는 의미죠. BreakFirst는 이른 아침 당신의 허기를 가장 먼저 깨주는 뉴스레터입니다. 초심을 잊은 당신, 관성에 매몰된 당신을 위해 다양한 업계에서 ‘처음’을 만들어낸 이들을 만납니다.매주 월요일 아침 발송되는 ‘관성을 깨는 1분, BreakFirst’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권태와 졸음을 영감과 혁신으로 채워 보세요. 뉴스레터에서는 인터뷰 영상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뉴스레터 구독▶동영상 링크유튜브: 네이버TV: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동아일보 ‘동행’ 캠페인…도움의 손길 필요한 이들을 찾다지난달 25일 인천 연수구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가장 눈에 띈 건 한산한 복도였습니다. 이곳에는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 72명이 거주하고 계시는데요, 거주자들의 평균 연령은 85세로 고령입니다. 그렇다 보니 거동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고, 방에 머물고 계셨던 것이죠. 특히 22명은 치매 환자, 30여 명은 와상 환자였습니다. 거주자 절반 이상은 돌봄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상황입니다.세월이 흐르면서 요양이 필요한 사할린 동포분들이 점점 늘고 있지만 복지회관의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보통 장기요양기관에서는 어르신 2.1명당 요양보호사 1명을 채용하도록 돼 있는데요, 이곳은 양로 수준의 어르신과 요양 수준의 어르신들이 함께 거주해 장기요양기관으로 분류돼 있지 않다 보니 요양보호사는 14명뿐입니다. 인천시는 이곳 복지회관 전체 직원 수(간호사, 물리치료사, 사무직 직원, 요양보호사 등을 합친 인원)를 30명으로 규정했지만, 현재 직원 수는 25명 수준입니다.복지회관 관계자는 “지난해 국고보조금이 10%가량 삭감되면서 운영비와 인건비가 모자라 직원 추가 채용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돌봐야 하는 어르신은 점점 더 늘고 있어 요양보호사뿐 아니라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모든 직원이 나서 어르신을 케어하고 있다 보니 업무에 차질이 생기며 다들 소진되기 시작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빠듯한 예산에 거주자들의 식사도 걱정입니다. 복지회관에서 거주자들에게 제공하는 식사는 한 끼에 4200원이라고 하는데요. 기초생활수급자인 이곳 거주자들이 받는 생계급여만으로는 충당할 수 없어 매년 약 6000만 원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합니다.인천 복지회관 부족 식비 중 상당액 캠페인 후원 통해 지원동아일보는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과 수탈로 인해 고향 땅을 떠났다가 가까스로 돌아온 동포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다뤘습니다. 재한 원폭 피해자,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 중앙아시아 고려인이 바로 그분들입니다.1부. 재한 원폭 피해자2부. 사할린 강제징용자와 그 후손3부. 중앙아시아 고려인이번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고국에 어렵사리 돌아오신 분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으실 수 있도록, 대한적십자사 공동 기획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사 취지에 공감해 주셨고, 십시일반 후원해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이중 사할린 캠페인 모금 금액 일부를 먼저 인천 연수구 사할린동포복지회관의 식비 해결에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 복지회관은 연간 6000만 원 정도 식비가 부족한데요. 이번 모금액 등을 포함해 약 2400만 원을 이분들에 대한 식비 지원에 먼저 쓸 방침이라고 합니다. 이후 모금되는 금액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할린 동포 분들의 일시·영주 고국 방문 등을 위한 기금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모금액은 기부금품법에 의해 관리되며 사용 내역은 대한적십자사 기부금품 모집 및 지출 명세를 통해 공개합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일제강점기 많은 분이 강제징용과 수탈로 인한 궁핍 등의 이유로 고향 땅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광복 후 어렵사리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아픈 몸으로 어렵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내 나라가 없을 때, 보호받지 못했던 분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8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동아일보와 대한적십자사는 고국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시는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재한 원폭 피해자, 강제징용 사할린 동포, 고려인과 3회차에 걸쳐 ‘동행’하며 상처를 딛고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되짚어 봅니다.▶영상 먼저 보기1. 지키다 : 아버지 유언, ‘귀환’“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으로 가는 길이 꼭 트일 거거든. 그땐 많은 생각 말고, 내가 죽고 없어도 너는 꼭 한국으로 가라.”사할린 동포 김영길 씨(80) 가슴 속엔 40여 년 전 죽은 아버지의 유언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사할린 출생인 그가 70년간 일군 사할린에서의 삶을 놔두고 2013년 한국으로 영주 귀국한 이유이기도 합니다.경남 합천군 출신 아버지는 생전 늘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탄광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할 때면, 눈시울 붉어진 채 반주 한잔 걸치며 아리랑을 부르던 아버지….1916년생인 김 씨의 아버지는 20대 중반에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왔습니다. 친구를 만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레 군인들에게 연행됐다고 합니다.1945년 8월, 조국이 광복을 맞이했다는 소식에 아버지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반색합니다. 하지만 패전국 일본은 한국인 귀환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었고 사할린 재건 노동력이 필요했던 소련은 그의 귀환길을 가로막았습니다. 미군정도 우리 동포 귀환에 적극적이진 않았고요.소련 국적은 얻기 힘들었던데다, 북한 국적을 받을 경우에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김 씨의 아버지는 무국적 상태로 살아갔습니다. 국적이 없다 보니 러시아 안에서조차 자유롭게 이동하기 어려웠고, 한평생 사할린에 발이 묶인 삶을 살다 폐암으로 눈을 감았습니다.“아버지가 폐암에 걸리신 게 탄광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 고향 땅 한번 못 밟아보시고 돌아가셨으니 통탄할 노릇이죠. 아버지의 영향인지, 뿌리를 찾으려는 본능인지…. 러시아 국적을 받은 뒤에도 ‘한국에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았어요. 한국은 내 아버지의 고향이 아니라 내 조국입니다.”2. 짚어 보다 : 얼어붙은 땅으로 끌려간 한인한국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지명. 사할린은 러시아 동부, 일본 동북쪽 오호츠크해에 있는 면적 7만8000㎢(남한 면적의 약 4분의 3)의 제법 큰 섬입니다. 이곳의 겨울은 6개월이나 될 정도로 긴 데다가 평균 기온이 영하 24도까지 내려갈 정도여서,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다소 척박한 환경입니다. 1800년대 말까지 사할린은 “석탄 위에 앉아서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인구도 적고 개발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죄수들의 유형지가 됐을 정도였죠. 그런데 이런 땅에 한인들이 어느 순간부터 급속도로 늘어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강제징용.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사할린의 북위 50도 이남을 점유한 뒤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때문에 일본인들은 사할린 이주를 기피했고, 이에 일본이 강제 또는 반강제적으로 한인 유입에 나선 것입니다.1939~1943년 사할린 강제징용 한인 노동자 (단위: 명)연도19391940194119421943광산노동자2578131180039861835건설노동자53312946511960976총인원330126051451595428111939년부터 1943년까지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된 한인만 1만6000여 명에 달합니다. 일본은 모집 방식으로 한인들을 이주시키다 점차 관 알선 형태로, 나아가 전쟁 막바지인 1944년부터는 강제징용으로 한인들을 동원했습니다. 사할린 한인 이주 동기(부모 세대)이주 동기비율(%)강제징용31.1모집31.1관 알선4.7가족 따라서2.0남편, 부모 찾아서1.4모름29.7강제 이주한 한인들은 탄광, 벌목장, 비행장, 도로 공사 현장 등에 배치됐습니다. 일본인보다 더 위험한 곳에서, 더 오랜 시간 고강도로 일을 했는데 임금은 턱없이 적었고 식량 배급은 부족했습니다.한인들은 그 적은 임금마저도 온전히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일제는 한인 노동자들이 작업장에 들어갈 때부터 교통비와 식비, 숙박비를 빚으로 짊어지도록 했습니다. 랜턴이나 곡괭이 같은 장비부터 각종 보험 및 연금, 주민세까지 노동자의 부채로 책정했습니다.임금을 받으면 도주할 것을 우려해 용돈 수준의 금액만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강제로 저금하게 하는 ‘우편 저금’도 시행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체불된 노동자들의 우편저금 액수는 1억8007만 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4조4506억 원 규모입니다.지금은 상상도 못 할 혹독한 환경 속에서 노동착취까지 당하며 일을 해야 했던 사할린 동포들. 이들은 ‘언젠가 고향에 꼭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하루하루 버텼을 것입니다.3. 방치되다 : 광복에도 돌아오지 못한 이유1945년 8월 15일 한국의 광복 소식에, 사할린 한인들에게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치는 듯했습니다. 이듬해 12월 ‘소련 지구 인양에 관한 미·소 협정’이 체결되면서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이 순차적으로 귀환한 것입니다. 사할린 한인도 고국의 땅을 밟을 날이 머지않은 듯했습니다.하지만 사할린 한인들이 놓인 상황은 전범국인 일본의 국민보다도 못했습니다. 일본은 ‘한국이 독립한 만큼 한국인은 일본 국적이 아니므로 한인 귀환에 대한 의무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소련은 일본인의 송환으로 사할린 재건에 필요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한인의 귀환을 막았습니다. 미군정도 남한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해 귀환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각 나라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수많은 사할린 한인들의 귀환길은 가로막힌 채 방치된 것이죠.문제 해결의 물꼬가 터진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부터입니다. 한국이 소련을 비롯해 구 동구권 국가들과 본격적인 관계를 맺었고, 1989년 9월 소련 정부가 한국을 방문지로 한 출국을 허가하면서 사할린 동포 40명의 일시 모국 방문이 허용된 것입니다.나아가 1990년에는 한국과 소련 간 첫 정상회담이 열리고 왕래가 더욱 자유로워지면서 영주귀국이 중요한 과제로 다뤄지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에는 한국 정부가 사할린 한인 문제 해결을 일본에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러시아 연방에는 한국 국적 취득을 위해 협조를 구했고요. 그 결과 1992년 무연고 사할린 동포 77명이 처음으로 영주귀국 해 강원 춘천 사랑의집에 입소하게 됐습니다.이듬해 11월부터는 3차에 걸친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사할린 한인 문제 조기 해결 추진을 위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그 결과 영주귀국자를 위한 주택과 요양시설 건립을 위해 한국 정부가 부지를 제공하고 일본 정부가 건설비용과 정착지원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영주귀국이 점차 확대됐습니다.최근 15년간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자 입국 현황 (단위: 명)연도인원수연도인원수200983720179201012720183201110220199201210820200 (코로나19 영향)2013742021334201410320220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2015832023344201611누적50864. 또다시 그리워하다 : ‘이산가족’사할린으로 끌려간 지 50여 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사할린 동포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영주귀국을 할 수 있는 조건,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 이주 또는 사할린 출생자’(사할린 동포 1세) 때문이었습니다. 즉 사할린에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은 이들 상당수가 영주귀국 시 사할린에 자식을 두고 올 수밖에 없는 ‘이산의 아픔’을 감내해야 했던 것입니다. 2008년 영주귀국 대상이 ‘동포 1세와 그 배우자, 장애인 자녀 1명’으로 확대됐지만 여전히 자녀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그나마 2020년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마련되면서 영주귀국 대상이 ‘사할린 동포(1세)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 1인과 그 배우자’로 넓혀졌습니다. 하지만 이 조건 역시 여전히 아쉬움이 많습니다. 예컨대 같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자녀라 하더라도 1944년생 형은 영주귀국을 할 수 있지만, 1946년생 동생은 사할린 한인 1세로 분류되지 않아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또 사할린 한인 1세가 이미 사망한 경우 그 가족은 영주귀국 대상에서 제외되는 상황입니다.5. 되찾다 : 고국에서의 평범한 삶무사히 영주귀국을 하더라도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의 경제적인 문제와 건강 문제는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정착 실태에 대한 조사는 2009년 이뤄진 연구가 유일무이합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영주 귀국한 사할린 한인 100명을 대상으로 현재 생활에서 불편한 점 세 가지를 꼽도록 한 결과 ‘경제적 어려움’(24.4%)이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습니다.현재 생활에서 불편한 점 (단위: 건, %)항목응답 수(건)비율(%)사할린을 자주 방문하지 못한다84632.1경제적으로 어렵다64224.4외롭다50119.0한국에서 사할린의 가족과 자주 연락할 수 없다2067.8몸이 아픈데 의료혜택을 제대로 못 받는다1415.4기타30111.3한국 정부는 영주 귀국한 사할린 한인의 정착을 위해 국민임대주택과 복지급여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고령이고, 자녀들과 떨어져 영주 귀국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족의 보살핌이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정착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나마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고령 노인과 치매 및 뇌졸중 등 중증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데요. 사할린 동포가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요양과 돌봄의 지원도 점점 더 절실해집니다.동아일보는 7월 24, 25일 사할린 동포가 거주하는 안산 고향마을과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을 찾아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분들을 만났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고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삶에 대한 아쉬움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박공길 씨(81)“2008년에 아내와 함께 영주 귀국했는데, 올해 아내가 죽었어요.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는 아들 내외는 영주귀국을 원하고 있어요. 내 욕심에는 아들 내외와 대학생 손자가 모두 한국에 와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이영익 씨(95)“사할린 동포 2세인 제 여동생은 사할린 동포 1세였던 남편을 따라 영주 귀국했는데,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홀로 살고 있어요. 자식들이 사할린에 있는데도 사망한 1세의 자식은 영주귀국 대상에 포함되지 않다 보니 자식 도움도 못 받고 홀로 병원 생활을 하고 있어요.”많은 이들이 한국에서 평범하게 누리는 삶,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인 사할린 동포들도 마땅히 누릴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동아일보와 대한적십자사는 광복절을 맞아 일제강점기 무렵 사할린에 강제징용된 피해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기부 캠페인(아래 링크)을 펼칩니다. 모금액은 기부금품법에 의해 관리되며 사용 내역은 대한적십자사 기부금품 모집 및 지출 명세를 통해 공개됩니다.안산·인천=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일제강점기 많은 분이 강제 징용과 수탈로 인한 궁핍 등의 이유로 고향 땅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광복 후 어렵사리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아픈 몸으로 어렵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내 나라가 없을 때, 보호받지 못했던 분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8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동아일보와 대한적십자사는 고국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시는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재한 원폭 피해자, 강제징용 사할린 동포, 고려인과 3회차에 걸쳐 ‘동행’하며 상처를 딛고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되짚어 봅니다. 1. 만나다 : 히로시마, 한순간의 섬광과 긴 암흑경남 합천군에 사는 이수용 할머니는 1928년생. 올해로 아흔여섯입니다. 이젠 몸이 약해져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방금 무슨 질문이었냐고 되물으며 기자 쪽을 향했습니다.“아, 그날을 기억하느냐고요?”그날.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녹아내린 도로와 건물. 불에 탄 채로 길에 늘어선 시신들. 다른 기억이라면 가물가물하다던 할머니의 눈빛은 또렷해졌습니다.먹고 살기 위해 일본에서 함바집(간이 식당)을 하던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 왔던 한국인 소녀. 주산에 밝았던 열일곱 이수용은 학교를 마치자마자 히로시마 저금국에서 사무를 봤습니다. 그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여느 때처럼 거기 있었죠.그리고 소녀의 삶을 뒤바꾼 건 그날 단 한 번의 섬광이었습니다.주저앉는 듯한 굉음. 놀라서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불이 번쩍했답니다. 건물이 흔들리고 소녀는 쓰러졌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사무실은 엉망진창에 온통 피범벅이었습니다. 여길 벗어나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어났을 땐, 창문에서 쏟아져 내린 유리가 왼쪽 발등에 박혀 있었고요. 피가 흐르는 불편한 발을 끌고 소녀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건물은 무너지고, 시신들이 즐비한 전찻길을 따라 걸었던 기억을 기자에게 술회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잃은 채였습니다. 믿고 따르던 큰 오빠도 자신처럼 무너진 건물 때문에 크게 다쳐 누워 있었습니다.제때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이제 곧 일본에 미국 군인들이 들어오고, 여자들을 다 끌고 간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미 그런 위협을 겪어본 할머니 가족은 화들짝 놀라 딸을 지키기 위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부산으로 돌아갔습니다.그래서 일본 정부가 원폭 피해자들에게 치료를 지원할 때 이들 가족은 그런 지원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갔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계신 이곳 경남 합천군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내 다른 한국인 피해자분들도 같은 얘기이더군요.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몰랐죠.” 한국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부산 남포시장에서 구제 옷을 팔고, 과일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때 다친 왼쪽 발을 끌면서요. 30여 년 전엔 암으로 인해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방사능 때문은 아닐까.’ 그런 피해를 개인이 스스로 입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할머니는 일본 나가사키현에서 파견한 일본 의사를 만나서도 기자에게 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몸이 불편하다고, 일본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한다고.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말입니다.2. 다시 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원폭 피해자가 많은 나라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원폭 피해자가 많은 나라입니다.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6일)와 나가사키(9일)에 원폭이 떨어지고, 이틀 동안 69만 명(23만 명 사망)이 피폭되죠. 그중 무려 7만여 명이 조선에서 건너온 한국인이라는 점은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구분피폭 인원사망자전체69만 명23만 명한국인7만 명4만 명7만 명. 경기 과천시(8만5000명), 강원 속초시 인구(8만 명)와 비슷한 규모입니다. 피해자 중에는 강제징용이나 학도병처럼 ‘직접적’으로 끌려오신 분들도, 가난 때문에 내몰리듯 건너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원폭 투하 당일부터 그해 말까지 한국인 피폭자 7만 명 중 4만 명이 숨집니다. 전체 피폭자 사망률이 33.7%인데 한국인 사망률은 57.1%에 달합니다. 왜 유독 한국인 희생자 비율이 높을까요? 당시 두 도시는 미국의 공습을 예상하고, 도심지역 내 시설물을 분산시키는 작업을 펼쳤는데요. 이때 한국인이 많이 동원됐다는 증언이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두 도시 피폭 이후, 피해지역 구호와 복구 작업도 한국인이 많이 투입됐다는 피해자 증언도 남아 있습니다. 원폭에 직접 피해를 입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잔류 방사능 수치가 높은 곳으로 내몰렸다는 겁니다. 1945년 해방 이후 일본 내 강제 징용 한국인에 대한 징용 해제가 이뤄집니다. 그해 9, 10월에 한국인들은 피폭자라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배에 오릅니다. 피폭 생존자 3만 명 중 2만3000명이 한국에 돌아왔고, 차츰 줄어 현재 생존자는 1876명. 평균 나이는 82.4세입니다.한국인 피폭자 다수는 아픈 몸을 이끌고 돌아왔지만, 살 곳도 농사지을 땅도 없었습니다. 질병에 시달리더라도 치료받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피폭 직후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합병증에 시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은 원폭 방사선 피폭에 의한, 이른바 ‘원폭증’을 앓으면서도, 자신들이 도대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됩니다. 켈로이드화된 피부 때문에 한센병(나병) 환자로 의심받아 일할 기회조차 못 얻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후유증 중 하나였던 극도의 무기력증(일본에서는 ‘부라부라 병’으로 불린다)으로 따돌림을 당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3. 그리고, 다시 듣다 : 관심이 필요한 이유 국내 원폭 피해자들에 대해 한일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960, 70년대 한국 정부는 하더라도 일본 측에 원폭 피해자에 대한 배상만 따로 떼어놓고 요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고요. 이후 한일협정에서 원폭 피해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일본 정부를 압박했지만, 본질적으로 일본 정부의 입장을 본 후 대응한다는 기조로 대응해 왔습니다. 국내 피해자 지원 근거는 2016년 들어서야 마련됐죠. 일본은 자국 이슈가 아니라는 입장을 지속해서 밝혀왔고요. 이런 모습을 보면 양국 정부가 모두 껄끄러운 문제에 손대지 않을 명분만 찾았다는 비판도 가능하죠. 누군가는 가난으로 인한 일본행은 자발적인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해요. 하지만 이 역시도 크게 보면 피식민지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는 제국주의의 구조적 폭력과 분명 무관할 수 없을 겁니다.이런 상황에선 한일 양국 정부 차원의 대응도 물론 중요합니다. 일본 측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한국 정부도 실태 조사에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죠.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가운데, 피해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이 이뤄지기까지 민간 차원의 모금 등의 관심도 필요해 보입니다. 직접 피해자는 고령으로서 그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날들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동아일보는 7월 15, 16일 대한적십자사와 일본 나가사키현이 공동으로 경남 합천군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등에서 진행한 국내 건강 상담에 동행 취재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다가 6년 만에 재개된 행사였죠. 이날 건강 상담 대상이었던 합천, 거창 일대에 거주하는 피해자들은 아래와 같은 증언을 하셨습니다. 이들의 눈물을 닦아드리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합니다.동아일보와 대한적십자사는 광복절을 맞아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된 후 귀국한 한국인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부 캠페인(아래 링크)을 펼칩니다. 모금액은 기부금품법에 의해 관리되며 사용 내역은 대한적십자사 기부금품 모집 및 지출명세를 통해 공개됩니다. 합천=임현석 기자 lhs@donga.com거창=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네이버는 숏폼(쇼트폼·짧은 동영상)을 강화하면서 창작자들과 함께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숏폼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 맞춰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선 것이다. 네이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숏폼 클립 일간 재생 수는 올해 1월 대비 4배, 인당 재생 수는 두 배 증가하며 이용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네이버는 숏폼 클립 강화에 나섰다. 우선 다음 달 9일까지 올해 하반기에 활동할 ‘클립 크리에이터’ 2500명을 모집할 예정이다. 매달 10개 이상의 숏폼 콘텐츠를 업로드한 크리에이터에게는 네이버페이 포인트로 활동비 10만 원을 지급한다. 네이버는 활동 성과에 따라 상을 수여하고 인센티브 프로그램 등 총 25억 원에 해당하는 혜택도 제공하기로 했다. 클립 인센티브 프로그램은 클립 크리에이터가 안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창작자 수익 모델이다.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클립 크리에이터는 브랜드와 협업해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제휴 프로그램 ‘브랜드 커넥트’와 스토리텔링 및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클립 크리에이터 스쿨’에도 참여할 수 있다. 네이버는 누구나 쉽게 숏폼을 제작할 수 있도록 클립 에디터를 정식 출시하는 등 대규모 업데이트도 진행했다. 이용자는 클립 에디터의 주요 기능인 ‘정보 스티커’를 통해 숏폼을 시청하면서 스마트스토어나 플레이스의 정보를 확인하고 상품을 구매하거나 장소를 예약할 수 있다. 또 클립 에디터를 통해 영상 길이 자르기, 순서 변경 등 편집과 음원 추가 기능을 통해 숏폼을 더욱 편리하게 제작할 수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앞으로도 숏폼 제작부터 채널 성장, 수익 창출, 브랜드 제휴까지 창작자에게 필요한 지원과 혜택을 다각도로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만나 소버린 인공지능(AI)에 대해 논의했다. 정보 주권을 강조하는 ‘소버린’은 국가나 기업이 자체적 인프라와 데이터를 활용해 독립적인 AI 역량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27일 네이버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이 GIO와 최수연 대표,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 등 팀네이버 주요 경영진은 25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엔비디아 본사에서 황 CEO를 만났다. 이들은 각 지역의 문화와 가치를 반영한 소버린 AI의 중요성과 AI 모델 구축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네이버에 따르면 이번 만남은 엔비디아와 네이버가 시너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엔비디아는 국가별 AI 모델 구축을 위한 하드웨어 인프라를 제공하고, 네이버는 초거대 AI 모델을 토대부터 개발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영어나 중국어가 아닌 언어를 기반으로 초거대 AI 모델 구축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클라우드 기반의 AI 산업 생태계를 구축한 경험을 갖춘 기업은 전세계적으로 네이버가 유일하다. 소버린 AI 구축은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보유한 데이터센터와 이를 구동할 수 있는 전력망, 데이터 수급을 위한 파이프라인과 생태계,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는 서빙 과정까지 갖춰야 한다. 이때문에 주요 기업들 간의 긴밀한 파트너십이 필요한 상황이다.네이버는 이해진 GIO가 소버린 AI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며 소버린 AI 확산을 위해 관련 역량을 보유한 기업들 간의 긴밀한 협업에 공감 양사 모두 공감했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양사는 일찍부터 소버린 AI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대표적인 기업으로, 앞으로 긴밀한 협업을 통해 각 지역의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는 다양한 AI 모델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23명이 숨진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사고와 같은 리튬전지 화재 때 효과가 있는 금속화재용 소화기가 1년 넘게 정부 내 심사 절차에 머물면서 현장 도입이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소방청은 지난해 3월 금속화재용 소화기의 성능 기준을 담은 기술 기준을 행정 예고했다. 현재 제조공장 등에 비치된 일반 소화기는 화성 사고처럼 리튬이나 칼륨, 세슘 등 가연성 금속에서 발생한 금속화재에 효과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신설한 것이다. 금속화재는 물로 끄려 하면 수소가 생성돼 폭발한다. 금속화재 소화기를 정식으로 승인하고 검사하려면 이 기준이 확정돼야 한다. 그런데 26일 현재 이 기준은 심사 단계에 계류 중이다. 같은 기준에 일반 소화기 부품의 원산지 표시법 등 다른 개정 내용도 30건 넘게 포함돼 있어 심사가 덩달아 늦어졌다. 금속화재용 소화기는 리튬전지 화재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만큼, 더 일찍 도입됐다면 23명이 숨진 24일 아리셀 리튬전지 제조공장 화재 때도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됐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 발화 당시 작업자들은 29초 만에 일반 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고 오히려 불길은 더 거세졌다. 소방청 관계자는 “7, 8월경에는 심사를 마치고 허가하겠다”고 말했다. 화재공장 인근 리튬전지 공장 5곳중 3곳 금속화재 소화기 없어[화성 리튬전지 공장 참사]금속화재 관련 대처 규정 없어… 전용소화기 있어도 검증 안된 제품카카오-NHN 리튬화재 맞춤 대응… 전문가 “전용소화기 도입 시급”26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업단지의 A리튬전지 제조공장. 이틀 전 화재로 23명이 숨진 아리셀 공장과 차로 5분 거리인 이곳에서는 이날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작업으로 분주했다. 이 공장은 연간 수십만 개의 리튬전지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품 창고 옆에는 불에 잘 타는 각종 목재와 폐품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공장 안에선 리튬전지 화재 진화에 효과가 있는 금속화재용 소화기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통상 가정용으로 쓰는 것과 같은, 리튬전지 화재 진화에 소용이 없는 일반 소화기만 곳곳에 놓여 있었다. 이 공장 관계자는 “금속화재용 소화기는 없지만 우리 공장은 구조가 달라 (불이 나도 탈출하기 쉽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인근 공장 5곳 중 3곳, 금속화재 소화기 없어 동아일보 취재팀이 25일과 26일 아리셀 인근 리튬전지 공장 5곳을 방문해 보니 금속화재용 소화기를 비치한 곳은 2곳뿐이었다. B공장의 관계자는 “일반 소화기만 몇 대 갖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니었냐”고 되물었다. C공장 측은 “(작업 공간) 25m 안에 소화기를 갖춰야 한다는 의무 사항은 지키고 있다. 뭐가 문제냐”고 했다. B와 C공장은 화재 시 경보를 울리는 자동화재탐지설비조차 갖추지 않고 있었다. D공장은 금속화재용 소화기는 있었지만 화재 대피 안내도가 없었다. 공장 측은 “리모델링하느라 떼어놨다”고 했다. 대피 안내도는 유사시 탈출로를 숙지하기 위해 항상 게시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일부 공장이 갖춘 금속화재용 소화기도 소방당국 검증을 거친 정식 제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방청이 금속화재용 소화기 개발과 도입을 위해 지난해 3월 관련 기준을 행정예고하고도 1년 넘게 심사 중이기 때문이다. 2020년 감사원이 금속화재 대처 규정이 없는 문제를 지적한 지 4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현행 소화기 기준에 따르면 화재는 일반화재(A급)와 유류화재(B급), 전기화재(C급), 주방화재(K급) 등 총 4가지로 분류된다. 금속화재는 별도 분류가 없어 전용 소화기도 없다. 시중에 유통되는 금속화재용(D급) 소화기는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수입 제품이다. 효과를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남기훈 창신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등에는 금속화재 전용 소화약제가 제작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관련 법적 정의조차 없어 (소화기 자체를) 시험할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리튬전지 화재 대응 자구책 리튬전지 화재 소화기 도입이 늦어지면서 산업계에선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2022년 10월 판교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리튬전지가 순식간에 수백 도까지 온도가 오르는 ‘열 폭주’ 현상으로 서비스 먹통까지 겪은 카카오는 새 데이터센터를 만들면서 관련 대책부터 마련했다. 이달 11일 공개한 ‘카카오 데이터센터 안산’에 화재가 발생한 배터리의 전원을 초기에 차단하는 등의 특허 출원 기술을 적용한 것. 새 시스템에는 배터리만 비추는 열화상카메라와 연기감지기가 설치돼, 불꽃이 일거나 연기가 나면 관제센터에 자동으로 경고를 보낸다. 불이 붙은 리튬전지에는 방염천이 내려와 둘러싸고, 물 대신 전용 소화 약제를 뿌린다. 인근 소방서에도 즉시 신고가 접수된다. 소방당국이 도착할 때까지 진압이 안 될 경우 지속적으로 물을 뿌려 온도를 낮춤으로써 불의 확산을 막는다. 카카오처럼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NHN 클라우드도 발화 전 미세한 연기를 감지하는 특수 설비를 설치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른 시일 내 금속화재용 소화기뿐 아니라 리튬전지 화재에 특화된 전용 소화기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금속화재용 소화기를 도입하고 나면 내용물을 나트륨 등으로 대체해 리튬전지 화재 진화에 더 효과적으로 개조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화성=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송유근 기자 big@donga.com화성=임재혁 기자 heok@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메타(옛 페이스북)가 당분간 유럽에서 인공지능(AI) 비서인 ‘메타 AI’를 출시하지 않기로 했다. 유럽의 규제 기관들이 개인의 공개된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AI 훈련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 데 따른 조치다. 14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메타가 유럽에서 메타 AI를 출시하지 않기로 한 것은 아일랜드 규제 당국의 지시 때문이다. 아일랜드 데이터보호위원회(DPC)는 성인 이용자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에 공개적으로 게시한 콘텐츠를 대형언어모델(LLM) 훈련에 이용하는 것을 연기하도록 메타에 요청했다. 메타는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당국(DPAs)을 대신한 DPC의 요청에 실망했다”며 “아일랜드 당국의 요청은 유럽을 혁신과 AI 개발 경쟁에서 한 걸음 후퇴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메타는 “LLM 훈련에 현지 정보를 넣지 않으면 이용자들에게 일류가 아닌 이류 경험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현재 유럽에서 메타 AI를 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앞서 메타는 개인 게시물과 이미지, 온라인 추적 데이터 등을 수집해 메타의 AI 기술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 보호정책을 변경했다. 이에 대해 비영리 단체인 유럽디지털권리센터(NOYB)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등의 데이터 보호 당국에 메타가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 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어 이들 국가를 대표해 아일랜드 당국이 공개 콘텐츠를 이용한 LLM 훈련을 연기해줄 것을 메타 측에 요청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글로벌 소프트웨어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은 상대적으로 성장이 더딘 것으로 조사됐다. 16일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에 따르면 올해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지난해 대비 11.4% 증가한 2조5621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디지털 전환 투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이 2조9028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소프트웨어 시장 성장세가 가장 가파른 곳은 중국(16.7%)으로 예상됐다. 스위스는 15.8%, 인도는 15.7% 성장할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은 전년 대비 9.8% 증가하는 데 그쳐 글로벌 성장률 평균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국가별 시장 점유율은 미국이 46%로 1위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등의 기업이 AI 산업을 선도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어 영국(6.8%) 일본(6.0%) 중국(5.9%) 순이었다. 반면 한국의 점유율은 1.2%로 인도(1.7%) 네덜란드(1.5%) 이탈리아(1.4%) 스페인(1.4%)보다 뒤처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AI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AI 반도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TV 시청이 모바일을 활용한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KT에 따르면 올해 1월 자사 인터넷TV(IPTV)인 지니 TV와 모바일을 동시에 이용하는 가구 가운데 300만 가구를 선정해 분석한 결과 1인 가구의 절반 이상이 TV 시청 중 모바일을 활용해 영상·스트리밍 시청, 쇼핑, 게임, 음악감상 등을 하고 있었다. TV로부터 받은 자극이 모바일로 이어져 다양한 정보를 탐색하게 되는 것이다.특히 올해 1월에 열린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축구 경기 시청 이용 행태를 분석해 보니 이용자 3명 중 1명은 지니 TV로 축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쿠팡으로 쇼핑했다. 40대 미만의 경우 축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네이버 중계 앱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기도 했다.KT 관계자는 “조사 대상자의 절반 이상은 귀가 후 30분 이내에 TV를 켜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TV가 여전히 가정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카카오가 처음으로 직접 만든 데이터센터인 ‘카카오 데이터센터 안산’(사진)을 공개했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 ‘국민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재해·재난 상황에서도 끊기지 않도록 데이터센터를 구축했다고 강조했다. 11일 오전 카카오가 공개한 데이터센터 안산은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내에 조성됐다. 연면적 4만7378㎡의 하이퍼스케일(10만 대 이상의 서버를 운영할 수 있는 초대형 데이터센터) 규모로, 12만 대의 서버를 보관할 수 있고 미국 의회도서관 정보량의 31만 배인 6EB(엑사바이트·10억 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이날 행사에서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두고, 어떠한 재해와 재난에도 멈추지 않는 안전한 데이터센터를 목표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이번 데이터센터에 자체 개발해 특허 출원한 화재대응 시스템을 적용했다. 화재를 자동으로 감지해 초기에 진압하는 것이 핵심이다. 카카오는 2022년 10월 SK C&C 판교데이터센터 화재로 서비스 먹통 사태를 겪은 바 있다. 카카오는 전기, 통신, 냉수 공급망 등 운영설비를 이중화하고 데이터와 운영 도구도 다중화했다. 이를 통해 일부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복구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킬 수 있도록 했다. 전력 공급 중단에 대비하기 위해 예비 전력망도 마련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유튜브에서 음악을 제공하는 ‘유튜브뮤직’은 음원플랫폼일까 아니면 동영상플랫폼일까. 서비스 이름에 ‘뮤직’이라는 단어까지 포함됐지만 유튜브뮤직은 음원플랫폼이 아니라는 것이 지금까지 한국 저작권 단체들의 판단이다. 멜론·지니뮤직·플로 등 유튜브뮤직과 경쟁하는 한국 업체들은 모두 음원플랫폼으로 구분되고 있다. 하지만 유튜브뮤직은 동영상 등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라는 이유로 다른 기준을 적용받으면서 국내 업체들보다 유리한 상황에서 경쟁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이 커지고 있다. 11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음악 분야 애플리케이션(앱)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 1위는 유튜브뮤직(724만5574명)이다. 3년 전인 2021년 5월(357만6794명)에서 두 배로 늘어난 수준이다. 반면 3년 전 1위였던 멜론의 MAU는 872만3354명이었으나 지난달 710만5739명을 기록하며 2위로 떨어졌다. 지니뮤직과 플로의 MAU도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업체들에서 빠져나간 이용자들이 대부분 유튜브뮤직으로 옮겨간 셈이다. 유튜브뮤직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은 유튜브다. 구글은 유튜브뮤직 구독료를 1만1990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유튜브를 광고 없이 시청할 수 있는 상품인 ‘프리미엄’(1만4900원)을 구독할 경우 유튜브뮤직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유튜브 구독권에 유튜브뮤직을 ‘끼워 팔기’한 셈이다. 유튜브 유료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유튜브뮤직 이용자도 늘어나는 구조다. 특히 유튜브를 많이 사용하는 젊은 층이 유튜브 프리미엄을 선택하면서 음원 앱도 유튜브뮤직으로 갈아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음원 업계에서는 유튜브뮤직과 국내 음원 플랫폼 간 음원 사용료(저작권료 등) 정산 방식도 차이가 크다고 지적한다. 국내 음원 플랫폼은 이용자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월정액 스트리밍 상품’의 경우 마케팅 비용 등을 모두 포함한 총매출액의 65%를 창작자 몫으로 배분해야 한다. 마케팅비를 많이 쓰면 쓸수록 업체가 창작자에게 지급해야 할 저작권료가 늘어나고 수익은 줄어드는 것이다. 반면 유튜브뮤직은 총매출액이 아닌 순매출액(총매출액에서 마케팅 비용 등을 뺀 금액)의 일정 비율을 저작권료로 지급한다. 마케팅비를 많이 써도 지급해야 할 저작권료는 늘어나지 않는다. 이마저도 몇 %를 지급하고 있는지 비율은 비공개다. 유튜브 측은 “저작권자, 실연자, 저작인접권자를 대변하는 신탁단체 등과 개별적인 계약을 맺고 저작권료를 정산하고 있다”며 “계약 내용을 대외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유튜브뮤직이 사실상 음원플랫폼이면서도 국내 업체들과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 것은 유튜브의 ‘결합서비스’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은 유튜브뮤직이 동영상, 음악, 엔터테인먼트 등이 결합돼 있어 음원플랫폼과 다르다고 봤다. 논란이 계속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4월부터 ‘음악저작권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 업계 관계자들이 참여토록 해 관련 사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위원회에서 결합서비스 규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 논의 중”이라면서도 “아직 뚜렷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2월 유튜브가 소비자들에게 유튜브뮤직 구매를 강제했다고 보고 구글코리아 본사에 대해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직장인 최수영(가명·32) 씨는 스스로를 ‘숏폼(쇼트폼·짧은 동영상)’ 중독자라고 일컬을 정도로 숏폼을 수시로 본다. 퇴근길부터 취침 전 2∼3시간을 어김 없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오가며 숏폼 시청에 쓴다. 최 씨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숏폼을 보는 것 같다”며 “일과를 마치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는 긴 호흡의 콘텐츠를 소비할 에너지가 없다. 숏폼은 흥미로운 내용만 편집해 콘텐츠를 제공해 주다 보니 부담 없이 계속 보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숏폼에 빠져들고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사용 시간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9일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한 앱 1∼5위 가운데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이 각각 1, 3, 5위를 차지했다. 모두 숏폼을 제공하는 글로벌 플랫폼이다. 숏폼을 앞세운 틱톡이 급부상하자 인스타그램이 이 숏폼 서비스인 ‘릴스(Reels)’를 내놨고, 유튜브도 ‘쇼츠’를 선보인 바 있다. 특히 인스타그램이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였다. 3월 인스타그램 사용시간은 네이버에 이어 4위를 기록했지만 4월에는 네이버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섰고, 이어 지난달에도 3위를 유지했다. 네이버와의 격차는 4월 1386만1509시간에서 지난달 4641만8705시간으로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숏폼이 인기를 얻는 가장 큰 이유는 편의성이다. 이용자들은 ‘최소 2억 오르는 부동산 추천지역 best5’, ‘품절 전에 사야 할 청소꿀템 톱5’, ‘날씬해지는 1분 운동’ 등 눈길이 가는 정보를 15∼60초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화면을 손가락으로 한 번 밀 때마다 새로운 영상이 이어지는데 관심 없는 영상이 나올 경우 빠르게 넘길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영상을 촬영할 수 있고 플랫폼들도 편집 툴을 제공해 큰 부담 없이 제작할 수 있다는 점도 숏폼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챌린지’ 열풍으로도 이어졌다. 이용자들이 특정 인기 음악에 맞춰 안무를 따라 추거나 드라마 대사의 음성에 맞춰 자신의 연기를 선보이는 등 각종 챌린지 영상을 만들며 트렌드를 재생산해 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짧은 텍스트였지만 이제는 짧은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면서 “숏폼이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숏폼의 강력한 자극이 도파민 중독 및 ‘팝콘 브레인’(두뇌가 자극에 반복 노출되면서 더 큰 자극만 추구하는 증상), 집중력 저하 등을 야기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숏폼을 시청하면서 쾌락을 느낄 때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빠르게 분출되는데 이를 중단하면 다시 더 큰 자극을 찾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플랫폼 기업들이 맞춤형 콘텐츠라는 명분 아래 자극적인 내용들을 보게 만들고 있고 이 같은 구조가 중독을 야기하고 있다”며 “중독 위험성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마련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질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직장인 최수영 씨(32·가명)는 스스로를 ‘숏폼(쇼트폼·짧은 동영상)’ 중독자라고 일컬을 정도로 숏폼을 수시로 본다. 퇴근길부터 취침 전 2~3시간을 어김 없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오가며 숏폼 시청에 쓴다. 최 씨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숏폼을 보는 것 같다”며 “일과를 마치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는 긴 호흡의 콘텐츠를 소비할 에너지가 없다. 숏폼은 흥미로운 내용만 편집해 콘텐츠를 제공해주다보니 부담 없이 계속 보게 된다”고 말했다.한국 사회가 숏폼에 빠져들고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사용 시간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9일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한 앱 1~5위 가운데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이 각각 1, 3, 5위를 차지했다. 모두 숏폼을 제공하는 글로벌 플랫폼이다. 숏폼을 앞세운 틱톡이 급부상하자 인스타그램이 이 숏폼 서비스인 ‘릴스(Reels)’를 내놨고, 유튜브도 ‘쇼츠’를 선보인 바 있다. 특히 인스타그램이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였다. 3월 인스타그램 사용시간은 네이버에 이어 4위를 기록했지만 4월에는 네이버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섰고, 이어 지난달에도 3위를 유지했다. 네이버와의 격차는 4월 1386만1509시간에서 지난달 4641만8705시간으로 3배 이상 늘었다.숏폼이 인기를 얻는 가장 큰 이유는 편의성이다. 이용자들은 ‘최소 2억 오르는 부동산 추천지역 best5’, ‘품절 전에 사야 할 청소꿀템 톱5’, ‘날씬해지는 1분 운동’ 등 눈길이 가는 정보를 15~60초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화면을 손가락으로 한 번 밀 때마다 새로운 영상이 이어지는데 관심 없는 영상이 나올 경우 빠르게 넘길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영상을 촬영할 수 있고 플랫폼들도 편집 툴을 제공해 큰 부담 없이 제작할 수 있다는 점도 숏폼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챌린지’ 열풍으로도 이어졌다. 이용자들이 특정 인기 음악에 맞춰 안무를 따라 추거나 드라마 대사의 음성에 맞춰 자신의 연기를 선보이는 등 각종 챌린지 영상을 만들며 트렌드를 재생산해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짧은 텍스트였지만 이제는 짧은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면서 “숏폼이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숏폼의 강력한 자극이 도파민 중독 및 ‘팝콘 브레인(두뇌가 자극에 반복 노출되면서 더 큰 자극만 추구하는 증상)’, 집중력 저하 등을 야기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숏폼을 시청하면서 쾌락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빠르게 분출되는데 이를 중단하면 다시 더 큰 자극을 찾게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교수는 “플랫폼 기업들이 맞춤형 콘텐츠라는 명분 아래 자극적인 내용들을 보게 만들고 있고 이같은 구조가 중독을 야기하고 있다”며 “중독 위험성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마련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질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인공지능(AI)을 통해 문서 작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서비스가 앞다퉈 출시되고 있다. 6일 구글은 제미나이 1.5프로를 적용한 AI 프로그램 ‘노트북LM’을 공개했다. 원문 자료를 자주 묻는 질문(FAQ)이나 요약 문서 등의 형식으로 변환해 이용자가 자료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본문 내 출처 표시’ 기능으로 AI의 답변을 팩트체크하거나 원본 텍스트를 더 자세히 살펴볼 수도 있다. 구글 문서와 PDF, 텍스트 파일뿐 아니라 구글 슬라이드와 웹URL도 인식한다. 어도비는 올해 2월 생성형 AI 구동 대화형 엔진 ‘AI 어시스턴트’ 베타 버전을 공개했다. 어도비의 프로그램인 리더와 애크로뱃에서 긴 문서를 요약해 준다. 또 e메일이나 보고서 등 용도에 맞춰 초안을 만들어 준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M365 코파일럿’에서 글을 작성하거나 편집, 요약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e메일의 답장 초안을 제안하는 기능도 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한미약품그룹의 오너 일가가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 일부를 처분해 상속세를 내기로 했다. 오너가 지분을 인수하는 투자자와 공동 경영을 계획하는 등 구체적인 투자 구상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사망한 이후 상속세를 둘러싸고 펼쳐졌던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 지분 일부 매각 위해 국내외 투자자와 접촉 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한미사이언스의 지분 일부를 팔아 상속세를 내기로 했다. 임 사내이사와 임 대표는 각각 12.40%, 8.42%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임씨 형제는 신규 투자자와 회사를 공동으로 경영하는 방안도 구상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원만한 지분 매각과 투자금 유치를 위해서 조만간 삼성증권과 모건스탠리를 자문사로 선정할 예정이다. 국내외 사모펀드(PEF) 등이 유력 투자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글로벌 PEF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나 베인캐피털 등이 유력 인수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PEF들은 현재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투자 기회가 있다고 보고 있다. 임씨 형제가 상속세를 납부할 경우 ‘오버행’(대량 매물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현상) 이슈도 사라지기 때문에 주가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한미사이언스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43% 오른 3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초 경영권 분쟁 등으로 인해 5만6200원까지 올랐지만, 주주총회 이후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면서 주가가 크게 빠졌다. IB 업계 관계자는 “인수자들의 관심은 지분 매각 가격과 공동 경영 등 매각 조건에 달려 있을 것”이라며 “PEF 외에 기업들도 투자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송 회장 모녀, 지분 매각 나설지 주목 임씨 형제와 경영권 분쟁을 벌인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12.85%)과 딸인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7.46%)이 이번 매각에 참여할지도 관심사다. 앞서 송 회장 모녀는 올해 초 상속세 납부와 회사 투자금 마련을 위해 OCI그룹과 공동 경영을 선언했다. 하지만 거래에서 제외된 임씨 형제가 OCI그룹과의 공동 경영에 반대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발발했다. 올해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양측이 표대결을 펼친 결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2.20%)과 친인척들을 우군으로 포섭한 임씨 형제가 승리해 경영권까지 확보하게 됐다. IB 업계에서는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이 지분 매각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송 회장 등도 상속세가 1000억 원 이상 남은 상황에서 지분 매각 외에는 재원 마련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오너가 외에도 임씨 형제 편에 섰던 신 회장이나 한미약품그룹 친인척들도 지분 매각에 함께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다만, 송 회장 측은 임씨 형제로부터 지분 매각과 관련해서 아직까지 제안받은 내용이 없다는 입장이다. 송 회장의 사정을 잘 아는 IB 관계자는 “PEF가 경영권 획득을 하지 않고 단순히 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은 적다”며 “최근까지 임씨 형제가 송 회장과 논의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