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대신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대리수술…환자 뇌사 상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7일 16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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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대리수술을 시키고, 환자가 뇌사상태에 빠지자 진료기록을 조작한 의사 등 병원관계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부산 영도경찰서는 7일 의료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영도구의 한 정형외과 원장 이모 씨(46)를 구속하고, 이 씨 대신 수술을 한 의료기기 판매업체 영업사원 박모 씨(36)를 무면허 의료 혐의로 구속했다. 병원 원무부장과 간호사·간호조무사 등 5명도 진료기록 조작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영업사원 박 씨는 5월 10일 어깨뼈에 이상이 있는 환자 A 씨(44)에 대한 견봉성형술을 집도했다. 이 수술은 어깨의 볼록한 부분인 견봉 부위 뼈를 평평하게 다듬는 시술이다. 의료기기 업체에서는 갑의 위치에 있는 병원장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박 씨는 1시간에 걸쳐 마취, 어깨 절개, 시술을 했다. 이런 무면허 수술을 받은 A 씨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

경찰은 A 씨 가족으로부터 의료사고 진정서를 접수하고 수사에 나섰다. 병원 폐쇄회로(CC)TV 분석을 통해 수술 10여분 전쯤 박 씨가 수술복을 입고 수술실에 들어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원장 이 씨는 사복 차림으로 수술실에 20여분 간 머물다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또 수사 결과 이 병원 원무부장이 A 씨로부터 ‘수술 전 동의서’를 받지 않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동의서 서명을 위조했던 사실도 밝혀냈다. 이 병원 간호조무사는 대리수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진료기록을 허위로 기재했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원장 이 씨가 ‘외래 진료 때문에 바쁘다’면서 대리수술을 맡겼다. 병원과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대리수술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영업사원 박 씨가 이전에도 해당 수술실에 아홉 차례 출입한 영상을 확보해 대리수술 여부를 추가로 확인하고 있다.

경찰은 대리수술과 의료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해달라며 보건복지부에 제도개선을 건의했다. 경찰은 “박 씨가 내시경 의료기기 관련 소모품을 병원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어깨너머로 수술을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혐의를 부인하던 원장 이 씨는 CCTV 등 증거가 확보되자 “혼자 병원을 운영하다 보니 외래 진료를 보느라 바빴다.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기기를 잘 다루기 때문에 (수술을) 맡겼다”고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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