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학 사건직후 실종신고 3건 더 있었지만… “출동” 말만 하고 모두 묵살한 경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여성 1명은 투신 시신으로 발견… 감사실, 서장 전보-8명 징계 착수
이영학 씨 계부, 유서 쓰고 숨진채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피해자 김모 양(14)의 실종 신고를 접수한 서울 중랑경찰서는 당시 ‘출동하겠다’고 상부에 보고는 했지만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긴급성을 요하는 ‘코드1’으로 분류된 사건인데도 신고한 김 양 어머니에게 김 양의 최종 행적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그때 김 양은 이영학 자택 안방에서 수면제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은 25일 이영학 사건 부실 수사 책임을 물어 조희련 중랑서장을 문책성 전보 조치하고 최민호 중랑서 여성청소년과장 등 8명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중랑서 여성청소년수사팀은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20분경 김 양 어머니가 112 신고를 해 출동 지시가 내려졌지만 무전으로 ‘알겠다’고만 답하고 사무실에 계속 앉아 있었다. 중랑서 망우지구대 순찰팀장 등 3명은 김 양 어머니가 딸의 최종 행적을 말했는데도 사실상 무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종수사팀은 사건 접수 당시 5명이 근무했고 다른 긴급 현안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팀은 이날 4건의 실종 신고를 받았지만 단 한 번도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다. 김 양 어머니가 신고한 지 2시간 반 뒤 김모 씨(54·여) 가족이 실종신고를 했지만 역시 수수방관했다. 김 씨는 약 11시간 뒤 강동구 천호대교 남단에서 투신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서울의 실종 수사 담당 경찰 A 씨는 “실종신고 10건 중 7건은 현장에 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종 신고자의 90%가 24시간 안에 귀가하는 모습을 수년간 반복적으로 봤기 때문에 ‘실종=단순 가출’이라는 사고가 굳어졌다는 얘기다. 다른 경찰 B 씨는 “미성년자나 여성이 실종됐다는 신고는 상황 판단을 하지 않고 일제히 ‘코드1’으로 분류하다 보니 ‘출동하겠다’고 답하고는 잘 나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실종 사건이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전담하는 여청수사팀 업무로 분류된 시스템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 관내 31개 경찰서 중 실종수사전담팀을 둔 곳은 8개 서뿐이다. 일선 여청수사팀 경찰 C 씨는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기도 빠듯한데 언제 귀가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일일이 수색하는 게 우선순위는 아닐 수밖에 없다”며 “실종신고는 24시간 동안 기다려 보고 그때도 귀가하지 않으면 수사를 시작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영학 모친의 사실혼 관계인 배모 씨(59)는 이날 강원 영월군 자택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배 씨는 이날 며느리이자 이영학 아내 최모 씨(32)를 수년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배 씨 옷 주머니에서는 A4 용지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형사들께 부탁드리는데 누명을 벗겨 달라. 지금까지 도와주신 분들께 죄송하고 형님한테 미안하다’고 적은 자필 유서가 발견됐다. 이영학을 도와 김 양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딸 이모 양(14)은 이날 사체 유기 혐의 등으로 서울북부지검에 의해 구속영장이 재청구됐다.

김예윤 yeah@donga.com·이지훈 / 영월=이인모 기자
#이영학#실종신고#경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