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연예인-블로거 보며 “난 생활고 시달리는데…” 죄인 줄도 모르고 화풀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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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에 멍드는 대한민국]불황 타고 늘어나는 주부악플러

지난해 5월 주부 이모 씨(45)는 유명인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여성에게 악플을 달았다. ‘××년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등 원색적인 비난이 포함돼 있었다. 경찰에 출석한 이 씨는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를 아껴 가며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아가는데, 젊은 여성이 큰돈을 쉽게 벌려고 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주부 스트레스를 악플로 풀었다가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주부 악플러가 적지 않다. 서울 시내 한 경찰서 관계자는 “대부분 주부 악플러는 ‘충동적으로 달았다’ ‘악플이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고 진술한다”며 “가정이 걱정되는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주부 악플러는 커뮤니티와 블로그에서 활발히 활동한다. 김모 씨(44)는 유명 커뮤니티에 특정 여자 연예인을 겨냥한 악플을 반복해서 올리다가 고소당했다. 김 씨는 연예인 사진과 함께 ‘뇌가 청순해서 상황 파악 못하는 쓰레기×’ ‘너 같은 × 보면 사람은 배워야 한다고 뼈저리게 느낀다’ 등의 악플을 달았다. 지난해 5월 배우 설경구 씨는 자신과 아내 송윤아 씨를 비방하는 악플을 올린 주부 악플러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기도 했다.

유명 연예인뿐 아니라 화려한 일상을 뽐내는 파워 블로거 또한 주부 악플러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이모 씨(46)는 유명인과 친분을 과시하는 파워 블로거를 쓰레기에 비유하는 악플을 달았다가 고소당했다. 이 씨를 수사한 경찰은 “그가 욕을 하지 않아도 고소당할 수 있느냐고 따지다가 결국 악플을 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합의를 했다”고 전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악플을 다는 ‘열혈 주부’도 있다. 지난해 강모 씨(35)는 치과 치료를 받고 결과가 좋지 않다며 병원 블로그에 ‘원장 얼굴에 염산을 뿌리고 싶다’와 같은 악플을 20여 차례 달아 고소를 당했다. 강 씨는 “지불한 금액에 비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경찰에 주장했다. 박모 씨(35)는 강아지 분양 과정에서 상대방과 마찰이 생기자 ‘집에 무단 침입했다’는 허위 사실이 담긴 악플을 달기도 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계 운영의 주축인 주부들이 계속되는 경기 불황으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인터넷 악성 댓글로 불만을 표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생활고#주부#악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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