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관심병… ‘악플엔 악플’ 욕설 공방땐 상호 모욕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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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에 멍드는 대한민국]<中>법적으로 문제되는 ‘충동 악플’

정해진 시간에 몇 건이나 찾을 수 있는지 세어 볼 필요도 없었다. 10일 정보기술(IT) 분야 전문 법무법인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와 함께 둘러본 인터넷 커뮤니티 DC인사이드. 커뮤니티의 여러 갤러리에 이른바 ‘천재소년’으로 알려진 송유근 씨(19)에 대한 악플(악성 댓글)과 악성 게시물이 수백 건 올라와 있었다. 송 씨의 논문 표절 사실이 알려지면서 빚어진 일이다. 김 변호사는 올라온 악플을 조목조목 짚으며 상당수가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병신××’와 같은 욕설은 물론이고 송 씨 부모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정신이 나갔다고 비난하는 글 등이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

본보 취재진과 함께 이날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악플을 살펴본 김 변호사는 “실제 고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지만 뜯어보면 어렵지 않게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악플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 악플 주고받으며 ‘악플 폭주’


국내에서는 공개된 사이버 공간에서 욕설 등으로 상대를 비난하거나(모욕) 구체적인 사실을 통해 상대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명예훼손) 모두가 처벌 대상이다. 명예훼손의 경우 악플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다. 송 씨에 대한 비난 글 상당수가 범죄에 해당하는 이유다.

이날 누리꾼들은 악플과 게시물로 송 씨에게 비속어로 된 욕을 퍼부었다. ‘병신’이나 ‘씹○○’ 등의 욕설에 더해서 성기 크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모두 모욕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 송 씨가 방송에 출연했던 자료를 모아 ‘이차방정식을 풀지 못했다’고 주장한 글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송 씨만을 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송 씨를 옹호하는 글에 악플을 달면서 글쓴이와 다툼을 벌이는 모습도 관찰됐다.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는 계기가 있을 때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 악플을 달며 공방전을 벌이는 행태도 흔하다.

표절 논란에도 불구하고 송 씨가 일반인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다는 글이 올라오자 이 글쓴이에게 ‘그냥 병신이구먼’, ‘×지잡 티나네’, ‘병신○○’ 등의 표현을 쓴 악플이 여러 차례에 걸쳐 달렸다. 글쓴이도 이 악플에 대응하면서 송 씨를 젖혀놓고 또 다른 다툼이 벌어진 상황. 김 변호사는 “악플에 악플을 달면서 싸우는 것은 온라인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쌍방이 서로를 모욕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허세와 오해, 그릇된 팬덤… 악플의 ‘뿌리’


이런 악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김 변호사는 상당수의 악플이 남에게 주목받고 싶은 이른바 ‘관심병’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씨에 대한 악플 역시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송 씨와 관련된 기사가 나오자마자 과거에 그를 비난했던 글이 다시 대량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양상을 볼 수 있다”며 “악플을 다는 누리꾼들이 송 씨에 대한 전문가가 아님에도 잘 아는 것처럼 행세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온라인은 해방구’라는 잘못된 인식이 아직도 널리 퍼져 있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국내 최초로 동성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 영화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 관련 기사에 악성 댓글을 단 혐의로 지난해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중학생 이모 군(16)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범죄라는 생각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댓글에서 ‘게이 ××’, ‘똥꼬충’, ‘벌레만도 못한 ××’ 같은 표현을 쓰면서도 범죄를 저지른다는 인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비뚤어진 정의감이나 그릇된 팬덤이 만들어 내는 악플도 적지 않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업을 무작정 비난하는 악플을 지속적으로 올리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라이벌을 계속 비방하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늘어나는 악플에 법원은 처벌 강화


생활에서 온라인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악플 등을 더 강하게 처벌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지난해 10월 서울고법은 블로그 게시 글로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파워블로거 이모 씨(53·여)에게 2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통상 명예훼손 배상액이 1000만 원을 넘는 경우가 드문 점을 감안할 때 인터넷 공간에서의 명예훼손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취지로 풀이되는 판단이다. 당시 재판부는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은 현실과는 달리 일회적이거나 휘발적이지 않고 피해가 광범위하다”며 배상액을 1심(500만 원)의 4배로 늘렸다. 이 씨의 블로그는 당시 하루 평균 방문자가 3만∼4만 명에 이르렀다.

개인을 공격하는 악플뿐만 아니라 단체나 기관에 대해 악의적인 글을 쓰는 것 역시 처벌 대상이다. 최근 부산지법은 유명 포털의 공개 게시판에 부산의 한 대학을 비방하는 글을 수십 차례 올린 40대 누리꾼에게 명예훼손과 모욕죄 모두 유죄를 인정하고 1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에서도 1심 재판부는 해당 대학의 입학 성적이 하락했다거나 로스쿨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최하위라는 취지의 글이 허위 사실로까지는 보기 힘들다고 판시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허위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이라고 인정했다. 자신이 쓰는 글이 사실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비방한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처벌한 것이다.

이런 흐름과 관련해 대법원 관계자는 “인터넷은 물론이고 모바일 기기 활용까지 크게 늘어나면서 악플 등으로 인한 명예훼손의 파급효과가 상당히 클 수 있다는 점을 전국 법원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관심병#상호모욕죄#악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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