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뺨맞은 경비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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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아파트에서 만취 50대 “왜 날 몰라보나”
맞은 70대 “처벌 원하지 않아”… 재물손괴혐의만 적용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70대 경비원의 뺨을 때렸다. 자신을 몰라본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의 폭언과 모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지만 경비원에 대한 ‘갑(甲)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서대문구 독립문로 A아파트 주민 조모 씨(59)를 재물 손괴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 씨는 14일 오후 11시 50분경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 경비실에서 경비원 정모 씨(73)의 멱살을 붙잡고 뺨을 때린 혐의다. 또 조 씨는 경비실에 들어가 난동을 피우며 집기를 집어 던진 혐의도 받고 있다.

이날 사건은 경비원 정 씨가 조 씨와 이웃 주민 간의 다툼을 말린 게 발단이 됐다. 일과를 마치고 취침 준비를 하던 정 씨는 경비실 근처에서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술을 마셔 만취 상태가 된 조 씨가 자신의 집을 찾지 못하고 엉뚱하게 이웃집 초인종을 계속 누르면서 이웃 주민과 말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정 씨는 겨우 조 씨를 진정시키고 그를 부축해 집에 데려다 줬다.

하지만 잠시 뒤 조 씨는 경비실을 찾아와 “너는 왜 여기서 근무하느냐, 왜 나를 몰라보느냐”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정 씨가 이를 말리자 조 씨는 “당신이 마음에 안 든다”며 욕설을 하고 폭행을 시작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옆에 있던 다른 경비원에게도 욕설을 했다.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 조 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폭행을 당한 정 씨는 “몸이 아픈 부모를 모시고 사는 조 씨가 감옥에라도 가면 누가 부모를 모시느냐”며 오히려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4년 동안 이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한 정 씨는 평소 거동이 불편한 조 씨의 부모를 부축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조 씨 가족과 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는 2년 전에도 술에 취한 조 씨에게 뺨을 맞았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조 씨에게 재물 손괴 혐의만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폭행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형사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경비원#경찰#甲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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