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로 달리는 심부름 대행업체

김재형기자 입력 2015-01-06 03:00수정 2015-01-0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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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안따지고 술-담배 배달, “이틀에 4만원” 수업 대리출석
자금세탁 후 돈뭉치 전달까지
서울 모대학교 4학년 A 씨(27)는 최근 ‘잔심부름 대행업체’를 통해 대리출석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다. 졸업 요건을 갖추기 위해선 방학 때 열리는 학과 수업에 참석해야 하지만 수업 시간이 취업 준비를 위해 등록한 사설학원 강좌와 겹친 탓이다. A 씨는 “이틀에 4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긴 하지만 취업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적발되면 학칙에 따라 징계를 받거나 수강 무효 처분을 받을 수도 있지만 대행업체가 쉽게 구해져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바쁜 현대인의 팔다리를 자처했던 잔심부름 대행업체들이 점점 음지의 길을 걷고 있다. 성인인증 절차 없이 술·담배 배달이 가능해 청소년들의 탈선창구로 활용되는가 하면 입금만 시키면 배달회사 현금을 원하는 사람에게 배달해줘 비자금 전달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4일 오후 성인이라 밝히지 않은 기자가 스마트폰으로 한 심부름 대행업체 관계자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음지로 가는 배달 서비스

“배달비용 2만8000원에 물건(술·담배)값이 포함된 돈만 통장으로 입금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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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취재진이 접촉한 서울 강남구의 한 잔심부름 대행업체는 술·담배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실제 거래에 이르기까지 성인인증 절차는 전혀 없었다. 그저 홈페이지에 떠 있는 배달 주문창에 배달 품목과 위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넣거나 상대방의 메신저 아이디(ID)를 등록해 주문 사항을 보내면 끝이었다. 업체 측이 불러준 계좌에 돈만 입금하면 어떤 장벽도 없이 ‘앉아서’ 술·담배를 받을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술·담배 배달 자체가 불법이라 볼 순 없지만 청소년이 우회적으로 이 같은 제품을 살 수 있는 불법의 통로가 될 수 있다”며 “청소년이 이런 방법으로 구매했을 때 배달업자는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액의 현금을 돌돌 말아 기다란 과자 형태로 만든 뒤 배달하는 것도 가능했다. 업체 담당자는 “금액에 상관없이 배달이 가능하고 계좌에 입금만 해주면 익명으로도 보낼 수 있다”며 “배달에 사용되는 돈은 우리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비자금 전달 및 자금 세탁의 통로로 악용될 위험성이 큰 대목이다. 이 밖에도 상대방을 속이기 위한 상견례 자리 부모 역할 대행 등도 제공하고 있었다.

○ 단속 사각지대에 놓인 배달업

잔심부름 대행업체는 2000년대 초 바쁜 회사 업무 속에 공과금 납부, 장보기 등을 처리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등장했다. 당시 부모와 떨어져 사는 대학생 자취생과 20, 30대 직장인 싱글족 등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배달 대행업체가 늘면서 잔심부름 대행업체는 위법성 논란이 있는 영역에까지 손대기 시작했다.

배달 대행업체의 한 관계자는 “최근 배달 대행업체와 배달 전용앱(애플리케이션) 등이 늘어 술·담배, 대리출석, 피임약 배달 등을 주로 담당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비행 청소년을 포함해 불법적인 목적으로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며 “하지만 심부름과 관련된 일들을 일일이 제재할 법률이 없어 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심부름 대행업체#대리출석#자금세탁#술 담배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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