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 찾는다는 심부름센터’ 알고보니 택배사 정보 훔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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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불법조회 2명 집유

A 씨는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 힘으로는 남편의 불륜 현장을 잡을 수 없자 A 씨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한 심부름센터를 찾았다. 정상적으로 사업자등록까지 마친 곳인 데다 검찰 조사관이나 경찰 출신의 직원들이 전문적인 노하우로 일을 한다는 말에 신뢰가 갔다.

사무실에서 상담을 마친 A 씨는 “2주 동안 남편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240만 원을 송금했다. 심부름센터 본부장 김모 씨(30)와 박모 씨(29)는 ‘A 씨 남편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까지 만들어 남편의 행적을 A 씨에게 낱낱이 보고했다.

이 심부름센터의 주특기는 사실 ‘사람 찾기’였다.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만 대면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이런 능력의 배경에는 택배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정보가 악용되고 있었다.

본부장 김 씨는 2010년 6월경 다른 심부름센터에서 일할 당시 자신의 친누나를 찾던 한 택배회사 직원을 만났다. 이 직원은 누나의 주소를 찾기 위해 심부름센터 사무실 컴퓨터에 택배 배송 명세 조회 시스템을 설치했다. 이 시스템으로 검색하자 물품 배송지 주소를 순식간에 찾아냈다. 어깨 너머로 이 직원의 ID와 비밀번호를 보고 외워 둔 김 씨는 2010년 11월 박 씨와 함께 심부름센터를 차려 택배회사 내부 정보통신망에 접속해 의뢰인이 찾아달라는 사람의 주소를 쉽게 알아냈다.

이 택배사는 국내 순위 5위 이내의 대형 업체다. 협력업체를 포함해 수천 명에 이르는 직원이 이 회사를 통해 물품을 보내고 받은 모든 고객의 주소를 알 수 있게끔 개인정보를 관리해온 것이다. 이 택배회사 관계자는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둘 다 알아야 주소를 알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결국 김 씨 등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이완형 판사는 지난달 25일 이들에게 정보통신망 침해 등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생활을 추적하는 심부름센터가 택배회사 내부 시스템에 접속해 개인정보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택배회사의 정보관리 실태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형 택배회사들은 자체 보안시스템을 운영하거나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정보 보호 관리체계를 관리 감독받지만, 소형 택배회사들은 보안에 취약한 편이다.

한 대형 택배회사 관계자는 “대형 택배사들은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자체적으로 강력한 보안망을 갖고 있고, 정보취급 인가를 받은 직원만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소형 택배회사는 비용 문제로 보안 시스템을 쓰지 않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비록 개인정보가 도용될 경우 사업자도 책임지는 법 규정이 있지만 사전에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당국이 관리 감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택배사 외에도 개인정보를 다루는 금융기관이나 통신회사 직원이 조직적으로 고객 정보를 빼돌리다 수사기관에 적발된 사례가 적지 않다.

방통위는 올해부터 기업의 정보 보호 조치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정보 보호 관리체계 인증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소규모 업체에는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시스템적인 보안도 중요하지만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직원이 보안을 지킬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택배사#심부름센터#개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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