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침략사 외면하고 불법행위 수긍”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7일 0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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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사취소訴 日변호인단 방한…"야스쿠니 실체는 전쟁 수행기관"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지배, 특히 조선 침략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이번 판결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침략의 역사에서 야스쿠니 신사가 담당했던 역할을 빠뜨리고 있는 겁니다."

지난달 21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 살아 있는 자신의 이름, 혹은 가족의 이름을 야스쿠니(靖國) 신사 명부와 영새부에서 빼려고 수년간 소송을 벌여 온 한국인 10명에게 원고 패소라는 일본 법원의 답이 돌아왔다.

선고 결과에 분노한 것은 원고들을 대리해 온 일본인 변호인단도 마찬가지였다.

"변호인단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일본인으로서 원고들에게 이런 판결을 알려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괴로웠습니다."(아사노 후미오 변호사)

야스쿠니 합사 취소소송을 지원한 일본인 변호인단과 현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원고들에게 재판 결과를 보고하고 간담회를 갖기 위해 최근 한국을 찾았다.

7일 만난 이보리 아키라(42)ㆍ이와타 히토시(42)ㆍ아사노 후미오(39) 변호사와 일본 현지 단체 `노합사'(NO 合祀)의 야마모토 나오요시(45) 사무국장은 "용서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야스쿠니 신사 합사 문제가 일왕제와 관련이 있다며 일왕제나 식민지 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역사의식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소송은 한국인 합사자나 유족이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낸 첫 합사취소소송이다. 이전까지의 소송은 일본 정부를 피고로 이뤄졌다.

민간 종교법인인 야스쿠니 신사를 피고에 추가할지에 대해 변호인단 안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종교법인의 옷을 입었을 뿐 사실상 전쟁을 수행한 국가기관이라는 야스쿠니의 실체를 일본 사회에 폭로하고 싶었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이보리 변호사는 "일본 정부는 전후 야스쿠니 신사에 전몰자 명부를 건넸고, 야스쿠니는 `일본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다 죽은 사람들'이라는 기준을 갖고 합사 행위를 한다"며 "일본 정부가 야스쿠니 신사와 일체가 돼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번 판결이 일본의 우경화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야마모토 사무국장은 "일본은 근대화 이후 자원이 없다는 이유로 간단히 다른 나라를 침략, 지배하며 살아왔다"며 "지배층이 우경화 풍조에 자신들의 바람을 투영하는 흐름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변호인단에 참여하게 된 것도 과거사나 전후보상 분야에 대한 이런 공통된 문제의식 덕분이었다.

전직 공무원인 이와타씨는 "변호사 공부 중 다큐멘터리 '안녕 사요나라'를 보고 야스쿠니의 한국인 합사 문제를 알게 됐다"며 "'이걸 내버려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변호사가 되면 꼭 야스쿠니 소송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3일 항소장을 제출, 도쿄고등재판소에서 법정 투쟁을 재개하게 된 이들은 "원고들이 겪는 정신적인 피해를 알리고 재판부와 역사의식을 공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가 이번 소송 과정에서 아버지가 됐습니다. 유족인 원고 중에는 사실 (합사된) 아버지를 기억하고 계신 분이 별로 없어요. 한두 살 때 징집을 당해서 돌아가신 거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소송까지 하는 원고들을 보며 '이정도로 나를 생각해 주는 자식이 있다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보리 변호사)

"일본이 국가적 차원에서 전쟁 책임에 대한 사죄를 하지 않으면 한일 시민들의 진정한 교류는 시작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재판부뿐만 아니라 여론의 방향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한 걸음씩 싸워나갈 겁니다."(아사노 변호사)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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