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회장은 긴장감으로 능률 올리는 호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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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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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태 前부사장이 본 ‘용인술’

전화벨이 울리자 현장 직원은 잔뜩 긴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주영 명예회장이었다. 그는 질문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토사운반 덤프트럭을 몇 대나 가동하고 있나?”

“15t 트럭 10대입니다.”

“무슨 트럭이야?”

“현대차 5대, 대우차 5대입니다.”

“적재함 뒤에 문짝 없는 차는 몇 대야?”

“거기까지는….”

“이런 죽도 못 얻어먹을 놈 같으니!”

어김없이 호령이 날아왔다. 정 명예회장의 다그침에 직원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지만 단순히 괴롭히기 위해 뒤 문짝을 확인하라고 한 건 아니었다는 걸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뒤 문짝이 없으면 운반 중 흙을 흘려 손실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얘기가 널리 퍼져 현대건설 직원들은 꼼꼼하게 현장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을 25년간 보필했던 권기태 전 현대건설 부사장(79·사진)의 기억 속에 정 명예회장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장을 챙겼다. ‘호랑이 선생님’ 같았다. 그것이 현대건설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권 전 부사장은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도 명예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선 언제나 ‘희생양’이 나왔다”며 “호되게 당하는 사람은 하나였지만 누구나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정 명예회장은 ‘조직의 긴장’이 곧 능률을 올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충성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었다. 좋은 성과를 내면 파격적 인사로 보상했다. 권 전 부사장은 1959년에 입사해 6년 만인 1965년에 이사가 됐다. 물론 도태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선후배 관계를 뛰어넘는 인사에 적응하지 못하면 냉정하게 퇴출됐다. 능력이 엿보이면 확실하게 끌어주되 사람을 내보낼 때도 냉정했다. ‘능력 우선’과 ‘현장 제일’은 정 명예회장의 철학이었다.

명예회장은 소학교(현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기억력이 비상하고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다. 어느 자리든 전문가가 설명하면 정 명예회장은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이해될 때까지 계속 질문을 던졌다.

권 전 부사장은 명예회장과 함께 노르웨이에 출장 갔던 일화를 소개했다. 저녁식사 후 술 한잔 하러 갔는데 하필 왈츠를 추는 자리였다. 춤을 배울 새가 없었던 정 명예회장 일행은 1시간가량 술만 마시다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권 전 부사장은 혼자 스텝을 밟으며 왈츠를 연습하고 있는 명예회장을 보고 말았다. 권 전 부사장은 “회장님은 그렇게 모든 것에 열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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