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동서남북]클래식 홀씨 뿌리고 떠나는 구자범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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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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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 기자
정승호 기자
18일 오후 광주 북구 운암동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 땀에 흠뻑 젖은 지휘자의 몸짓은 섬세하면서도 힘이 넘쳤다. 마지막 열정을 쏟아 붓는 듯 4악장에서 그의 지휘봉은 더욱 격정적이었다. 허공을 가르던 지휘봉이 멈추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관객들은 혼신의 힘을 다한 그의 마지막 연주에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광주시향 구자범 상임지휘자의 고별 연주회가 열린 이날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공연 티켓 1800장이 일찌감치 매진돼 입석표 100여 장을 급히 발매한 것이다. 광주 클래식 연주회에서 입석 티켓 판매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마저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극장 로비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연주회를 감상했다.

‘박쥐’ 서곡, 송영훈이 함께한 엘가의 ‘첼로협주곡’에 이어 구 지휘자가 시민에게 들려준 마지막 곡은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였다. 연주가 끝난 뒤 그는 감회가 남다른 듯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허리를 굽혔다. 4번의 커튼콜. 앙코르곡을 거의 연주하지 않던 그였지만 이날만은 예외였다. 마지막으로 단원들을 바라보며 포레의 ‘파반’을 지휘하던 그는 곡의 중간쯤 지휘대에서 내려와 무대 뒤로 사라졌다. “나는 없지만 음악은 흐를 것이고 내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새롭게 채울 것이다”란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듯했다. 2009년부터 광주시향을 이끌었던 구 지휘자는 항상 시민과 함께했다. ‘구자범 바이러스’라는 말이 생길 만큼 클래식 대중화에도 힘을 쏟았다. 교도소 등 문화 소외계층을 찾아가고 재야음악회, 5·18 공연 등으로 클래식 문턱을 낮췄다. 티켓 가격을 차별화하고 지정좌석제를 도입하는 한편 친절한 해설이 돋보이는 팸플릿을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때문에 그가 지휘한 6번의 정기 연주회가 모두 매진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는 다음 달부터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긴다.

구 지휘자는 ‘예향 광주’에 ‘클래식 문화’라는 민들레 홀씨를 뿌리고 떠났다. 이제 그 씨앗을 싹 틔워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서 우뚝 서는 광주를 만드는 것이 시민들의 몫이 아닐까.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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