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과학카페]철새는 길을 잃지 않는다

  • 입력 2007년 2월 13일 03시 00분


최근 농림부가 철새의 분변에서 조류 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철새가 AI를 전파했을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철새 도래지나 철새가 서식하는 하천과 저수지 주변의 양계 농민들은 철새의 접근을 막기 위해 갖가지 궁리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농장 주변에 훈련이 잘된 개를 배치해 철새를 쫓아내거나 그물망을 설치해 철새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한강 밤섬의 청둥오리, 철원평야의 쇠기러기, 팔당대교의 큰고니, 임진각의 두루미, 천수만의 가창오리. 시베리아 등지에서 날아와 한반도에서 겨울을 나는 대표적인 철새들이다.

청둥오리와 쇠기러기는 흔한 겨울철새이지만 큰고니와 두루미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희귀하다. 특히 세계적인 희귀조인 가창오리는 전 세계의 95%가 한반도로 찾아온다. 30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해질 녘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펼치는 화려한 군무는 장관이 아닐 수 없다.

○ 매년 수천~수만 km 비행 정확히 귀환

철새들은 대륙과 해양을 횡단하면서 하늘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예컨대 북극의 제비갈매기는 해마다 유럽과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1만9000km 떨어진 남극으로 이동해 겨울을 지낸다. 매년 3만8000km를 비행하는 셈이다. 인도기러기는 9000m 높이에서 하늘을 날며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다. 미국 동부의 검은머리솔새는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나흘 동안 비행하여 남아메리카 해변에 당도한다.

아주 조그만 철새들이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먼 거리를 이동한 뒤 정확한 위치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까닭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기원전 4세기경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으로 철새의 이동에 관해 설명을 시도한 이후 여러 이론이 제시됐으나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

철새들은 항공기 못지않게 발달된 비행 메커니즘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먼저 새들의 몸 안에 사람과 똑같이 지구의 24시간 자전 주기에 맞춰진 시계가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정확한 체내 시계가 있기 때문에 철새들이 경로를 벗어나지 않고 정확한 위치로 이동할 수 있는지 모른다. 새들의 예리한 시력도 장거리 이동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새들이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와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철새들은 태양, 별, 각종 항로 표지, 지구의 자장 등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해서 현재의 위치와 나아갈 방향을 파악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철새에게 가장 중요한 나침반은 수많은 별이라는 게 학계의 오래된 정설이었다. 지구의 자장은 별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 간혹 활용되는 보조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 체내시계-예리한 시각-지구자장 등 이용

그런데 1996년 독일 과학자들이 종래의 이론을 뒤집는 새로운 사실을 발표했다. 이들은 실험을 통해 새에게 가장 중요한 나침반은 별이 아니라 지구의 자장임을 보여 주었다. 새들은 뇌 안에 작은 자석을 갖고 있다. 뇌 속의 자철광은 지구의 자장과 같은 방향을 취함으로써 나침반 노릇을 한다. 이는 새들이 5감에 이어 제6의 감각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 결과 역시 모든 철새의 이동 능력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철새의 이동에 대한 궁금증은 체내 시계, 예리한 시각, 태양이나 별과 같은 나침반, 지구의 자장을 이용하는 여섯 번째 감각 등 여러 각도에서 설명되고 있지만 과학자들이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며칠 뒤면 설날이다. 수백만 명이 객지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민족 대이동을 보면서 안식처를 찾아 귀환하는 철새 떼를 떠올리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는지.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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