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고 간 ‘키다리 아저씨’

  • 입력 2007년 2월 1일 02시 59분


최재연 씨(왼쪽)가 초등학생일 때 한국을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닉 라산드로 씨(가운데). 그는 생전에 한국 어린이의 ‘키다리 아저씨’인 것을 자랑스럽고도 행복하게 여겼다. 사진 제공 세이브 더 칠드런
최재연 씨(왼쪽)가 초등학생일 때 한국을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닉 라산드로 씨(가운데). 그는 생전에 한국 어린이의 ‘키다리 아저씨’인 것을 자랑스럽고도 행복하게 여겼다. 사진 제공 세이브 더 칠드런
《“닉 아저씨가 이제 한국 어린이들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셨네요.”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거주하는 주부 최재연(30) 씨는 자신을 1986년부터 1996년까지 후원해 준 닉 라산드로 씨가 세상을 떠나며 전 재산을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 더 칠드런’에 기부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렇게 말했다. 충북 괴산군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최 씨에게 라산드로 씨는 말 그대로 ‘키다리 아저씨’였다. 》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일곱 자매 중 첫째로 태어난 최 씨는 어린 시절부터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일도 도와야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1986년부터 라산드로 씨는 세이브 더 칠드런을 통해 최 씨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라산드로 씨는 최 씨가 1996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달 10만 원 정도를 지원해 줬다.

최 씨는 “아저씨가 주신 돈으로 학용품을 샀고, 학비에 보태기도 했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닉 아저씨의 금전적 지원과 ‘항상 너를 지켜보고 성원하겠다’는 아저씨의 따뜻한 관심 덕분이었다”고 강조했다.

최 씨는 라산드로 씨를 초등학교 5학년 때와 중학교 3학년 때, 그리고 성인이 된 2001년에 각각 한 번 만났다.

라산드로 씨는 후원하는 아동이 18세를 넘으면 후원과 연락을 중단하는 세이브 더 칠드런의 원칙을 깨고 최 씨가 성인이 된 뒤에도 꾸준히 연락을 한 것.

최 씨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때 빼먹지 않고 편지나 카드를 보냈고, 아기를 낳은 뒤에는 아기의 생일에도 500달러씩 보냈다.

최 씨는 “아저씨는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나를 위해 한국인 동료에게 부탁해 편지와 카드를 한국어로 보낼 정도로 배려가 깊었다”고 회상했다.

닉 아저씨와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2001년 첫 아이의 백일잔치 때. 당시 한국을 찾았던 라산드로 씨는 최 씨의 남편과 시어머니도 만나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고 “할아버지가 돼 정말 기쁘다”며 행복해했다.

최 씨는 “그때 마지막으로 아저씨를 만났다”며 “당시 아저씨는 내가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는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했고 ‘세상을 떠날 때 남는 것을 한국 어린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세이브 더 칠드런은 지난달 25일 라산드로 씨의 미국인 변호사가 ‘라산드로 씨가 지난해 7월 사망했다는 소식과 모든 재산을 한국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는 그의 뜻을 전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마포구 창전동 사무실에 보냈다고 31일 밝혔다.

이 단체의 김인숙 부회장은 “라산드로 씨가 남긴 3만6300달러를 아동권리센터를 설립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키다리 아저씨

가난한 고아 소녀와 그를 남몰래 후원해 준 어느 평의원의 이야기를 다룬 진 웹스터의 소설에서 소녀가 그 평의원을 가리켜 쓴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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