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도청, 김정일답방 사전 기반닦기用이었을 것”

입력 2005-11-22 03:09수정 2009-09-3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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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언론사 사장단 방북
2000년 8월 남측 언론사 사장단이 평양 목란관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오찬장으로 가고 있다. 김 위원장의 손을 잡은 이들은 당시 KBS 박권상 사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최학래 한겨레신문 사장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2001년 2∼6월 전격적으로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전후해 중앙언론사 사주와 간부 등을 집중 도청한 것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위한 ‘기반 닦기’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DJ 정부가 언론사 세무조사 때 국가정보원의 언론사 도청도 병행했다는 사실이 최근 본보 보도를 통해 드러난 후 당시 관계자들은 “DJ가 언론에 대해 강공책을 쓴 이면에는 언론을 제어해 남한 사회에 김 위원장의 답방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 위원장의 답방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DJ의 최대 관심사였다. DJ는 평양에서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서울로 귀환하면서 “김 위원장은 우리하고 합의된 시일 중에 택해서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을 설득하는 데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DJ는 “김 위원장이 2001년 상반기에는 답방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등 답방 낙관론을 폈고, 수시로 답방 촉구 발언을 했다. 심지어 2001년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반드시 이행돼야 하고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해 사회적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일각에서 “6·25전쟁 전사자 등을 추모하는 현충일에 대통령이 꼭 그 얘기를 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던 것.

당시 청와대 측은 DJ의 이런 ‘집착’에 대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이뤄져야 DJ의 방북 성과가 완성된다. 답방이 이뤄지지 않으면 6·15공동선언은 미완에 그치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야권 등에서는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한 야당 중진 의원은 “당시 야권에는 김 위원장의 답방을 계기로 DJ가 내각제나 통일헌법 마련 등으로 정국 변화를 꾀하려 한다는 의심이 광범위하게 퍼졌었다”며 “노벨평화상에 대한 DJ의 집착도 상당부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는 현실적인 장애가 있었다. 우선 남한 내부에서 김 위원장을 맞을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는데 일부 보수층이 ‘6·25 남침에 대한 김 위원장의 선(先) 사과’를 주장하는 등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것. 청와대 관계자들은 “DJ가 평양에서 받은 환대만큼은 아니어도 김 위원장 반대 소리는 안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여권은 6·15공동선언의 후속조치로 2000년 8월 5∼12일의 남한 언론사 사장단 방북을 남한 내 분위기 조성의 전기로 판단하고 적극 지원했다. 남한 언론사 사장단 전원이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나면 답방과 관련한 보수층의 분위기도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정권 내에 있었던 것.

이에 따라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이 추진됐고 그 결과 48개 언론사 사장들이 방북했으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본보는 지면(7월 25일)을 통해 “본사는 그동안 민간 차원의 대북(對北) 교류협력방안을 모색해 왔고 북측의 초청으로 두 차례 방북 취재단을 보낸 바 있으며 앞으로도 민간교류는 계속할 것이다. 이에 따라 본사는 이번 언론사 사장단의 방북에 불참하며 타 언론사에 방북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본보의 불참이 DJ의 대북정책에 대한 반대 때문이 아니었는데도 DJ는 이를 ‘정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광옥(韓光玉) 대통령비서실장은 8월 초 동아일보 측에 “동아일보가 방북하지 않은 데 대해 DJ가 진노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언론사 세무조사는 정권의 구상과 기대대로 따라주지 않은 일부 언론에 대한 DJ의 분노가 반영된 것”이라며 “당시 정권은 일부 언론에 대한 강력대응을 통해 다른 언론도 순치시키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DJ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DJ는 동아일보 등이 방북에 불참하기로 한 그 즈음 언론사 세무조사 등을 결심한 것 같다”며 “다만 노벨평화상 수상 등의 ‘대사(大事)’를 앞두고 혹시 흠집이 잡힐까 우려해 그 실행시기를 미룬 것으로 봐야 한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DJ는 2000년 12월 노벨평화상을 받은 직후인 2001년 1월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이 필요하다”며 언론에 대해 공개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이를 신호탄으로 그해 2월 8일 국세청은 언론사 세무조사에 전격 착수했다.

또 국정원은 이때를 맞춰 언론사 간부 등에 대해 집중 도청을 벌였다는 사실이 최근 DJ 정부의 국정원 도청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결국 국정원이 언론사 동향 파악을 위해 사주와 간부 등을 집중 도청한 것은 ‘김 위원장 답방’ 분위기 조성을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와 도청은 당시 청와대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상식이다.

윤승모 기자 ysmo@donga.com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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