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외국인新婦들]<上>30,40代 6쌍중 절반이 국제결혼

  • 입력 2005년 7월 1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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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깨치는 중이에요”농촌의 동남아 신부에게는 한글을 배우는 일이 절실하다. 7일 전북 장수읍내에서 매주 두 차례 열리는 ‘한글교실’에 나오는 외국인 주부들이 아이들과 함께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매운 김치를 먹는 것만큼 한글 배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장수=임우선 인턴기자
“한글 깨치는 중이에요”
농촌의 동남아 신부에게는 한글을 배우는 일이 절실하다. 7일 전북 장수읍내에서 매주 두 차례 열리는 ‘한글교실’에 나오는 외국인 주부들이 아이들과 함께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매운 김치를 먹는 것만큼 한글 배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장수=임우선 인턴기자
《농사를 짓는 양우현(37·전북 장수군) 씨는 지난해 결혼했다. 맞선에서 다섯 차례나 퇴짜를 맞은 끝에 필리핀에 가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한국 여성들은 ‘수입이 얼마인가’에만 특히 관심이 많아요. 나중에는 아예 선을 안 봤어요. 필리핀으로 떠나기 전날 밤에는 잠이 안 오더라고요. 내가 못나서 이러는가 싶고, 창피하기도 하고….” 양 씨가 사는 장수읍 식천리에는 40여 가구가 산다.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약 130가구로 이뤄진 큰 마을이었다. 다들 도시로 떠나고 지금은 대부분 노인만 남았다. 30, 40대 부부는 모두 여섯 쌍. 절반이 동남아 출신 신부를 맞아들였다. 이 마을의 취학 전 아동 6명 가운데 4명이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코시안(코리안+아시안)’이다. 》

장수군청 주선으로 양 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몽가스 로살린(25) 씨는 두 달 전에 딸 혜린이를 낳았다.

필리핀에서 이들 부부의 결혼은 이틀 만에 결정됐다. 로살린 씨는 “친정이 끼니도 제대로 못 이을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라 한국 남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며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진 않지만 고향이 그리워 눈물이 날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말이 서툰 아내와 영어를 못하는 남편의 대화는 “알아요” “몰라요”를 주고받는 정도. 로살린 씨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장수군 여성자원활동센터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에 다닌다.

한글교실의 학생은 30여 명. 센터의 이진주(26) 간사는 “국제결혼으로 장수군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부의 절반가량이 등록했다”며 “한글도 배우고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도 만나 교류한다”고 말했다.

로살린 씨는 한글교실에서 필리핀 출신의 로세마리(37) 레지나(25) 씨를 비롯해 인도네시아에서 온 리사(33) 씨 등을 만나 수다를 떤다. 로세마리 씨와 레지나 씨는 각각 딸 하나를 뒀고, 리사 씨는 딸 둘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레지나 씨와 결혼한 홍성수(36) 씨는 “부부가 말이 제대로 안 통해 답답한 적이 많았는데 아내가 한글을 배우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며 “돈 문제나 음식 등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황수열(40) 씨는 “장수군에서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의 대부분은 외국인 여성”이라며 “한글을 배우러 오는 외국인 여성이 매달 2명꼴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식천리에 사는 최영식(70) 씨는 “한국 아가씨들은 농촌에 발도 안 들여놓으려고 하는데 외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살아주니까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명수(63) 씨는 “20∼30년 후에는 농촌에 혼혈아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국제결혼은 이제 농촌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어두운 일도 많이 생긴다.

장수군에서 만난 한 동남아 출신 여성은 기자에게 “남편에게 속아서 결혼했다”며 눈물지었다.

남편의 성격이 좋아 보이고 경제력이 괜찮다고 해 결혼을 결심했는데, 정작 한국에 와보니 변변한 직업도 없고 오히려 “데리고 오느라 수천만 원을 썼으니 돈 벌어 오라”며 때린다는 것.

광주 여성발전센터 관계자는 “상담전화를 걸어오는 외국인 주부의 80∼90%는 가정폭력 때문”이라고 전했다.

4, 5년 전 장수군으로 시집 온 중국동포 여성들이 이내 도망가 버린 사건은 아직도 회자된다. 박경식(49) 씨는 “5명이 몽땅 가출해 인근 지역에서는 지금껏 중국동포라고 하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어렵사리 결혼해 가정을 이루나 했던 남자들의 상심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혀를 찼다.

이주여성쉼터 ‘위홈’에서 일하는 김민정 씨는 “국제결혼을 해서 한국에 오는 동남아 여성에 대해서는 ‘위장결혼’이라는 차가운 시선과 ‘매 맞는 아내’라는 동정 어린 눈길이 뒤섞여 있다”고 말했다.

장수=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 국제결혼 외국인여성 실태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이주한 외국 여성은 10명 중 1명꼴로 남편과 한 번도 만나지 않고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5명 중 1명이 ‘남편에 대한 사전 정보가 사실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올해 6월에 한국 남성과 결혼한 뒤 이민 온 외국 여성 9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활실태조사 결과를 13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외국 여성의 34%가 나이가 열 살 이상 많은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남편과 한 번도 만나지 않고 결혼한 경우는 전체의 9.4%였다.

‘남편에 대한 사전 정보가 사실과 다르다’고 응답한 여성(20.8%)에게 사실과 다른 항목을 복수로 고르게 했더니 ‘성격’(57.1%)이 가장 많았다. 다음은 ‘소득’(47.7%) ‘재산’(34.2%) ‘직업’(33.3%) ‘가족 관계’(29.7%)의 순.

이들 중 25.7%는 농촌에 살고 있었는데 농촌에 사는 여성의 국적은 필리핀 태국 베트남이 많았다.

절반이 넘는 여성 이민자(58%)는 한국어 의사소통,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차이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부부 불화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로 상담하는 사람으로는 모국의 친구(30%)가 가장 많았다. 상담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응답도 15%였다.

또 여성 이민자의 절반 이상(52.9%)은 가구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절대빈곤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른 적이 있다는 사람도 전체의 15.5%였다.

자녀를 둔 여성 이민자 중 17.6%는 자녀가 또래 아이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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