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5주년]서울대 ‘글쓰기 교실’에선…“생각을 담으세요”

  • 입력 2005년 3월 31일 15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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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잘 쓴 글이라고 하면 문학적으로 멋있거나 감성이 풍부한 글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러나 좋은 글은 자신만의 독창적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 글이지 멋들어진 글이 아닙니다.”

‘서울대 글쓰기 교실’의 김태환 김준성 선임연구원은 이번 학기까지 5학기째 서울대생들의 글쓰기 상담을 해 왔다. 서울대 글쓰기 교실은 2003년 1학기부터 학생들이 글쓰기 과제물을 제출하기 전에 인터넷이나 1 대 1로 상담 서비스를 해 왔다.

김태환 연구원은 독일에서 독문학박사 논문 지도를 받았고, 김준성 연구원은 미국에서 철학박사 논문 지도를 받았다. 두 사람의 눈에 비친 서울대생들의 글쓰기 문제점은 무엇일까.

“요즘 학생들은 네이버 같은 인터넷 정보검색 사이트를 지식의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있어요. 인터넷에 없으면 검색활동을 멈추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더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김태환)

“입시교육의 문제점인지 누가 봐도 다 맞는 이야기만 쓰다보니 자신만의 독창적 생각이 담겨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미국 대학에서는 그런 글에 대해선 ‘남의 생각 정리하느라 수고했다’며 바로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리지요.”(김준성)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한 이유는 글쓰기 훈련이야말로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는데도 이를 체계적으로 교육시키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미국 대학들은 설립 초창기부터 글쓰기 훈련 과정을 운영해 왔고 더 유서 깊은 유럽의 대학들도 이를 도입하고 있다. 서울대 글쓰기 교실에서 운영중인 글쓰기 특강과 1 대 1 상담 제도도 미국 대학의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전형준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소장은 “인터넷문화 보급과 함께 학생들의 글쓰기도 인터넷적 특징인 생략과 압축, 논리적 비약이 심해졌다”면서 “주관적 생각을 선정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익숙해도 이를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는 나타내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이런 인터넷 문화가 특히 논리를 중시하는 학술적 글쓰기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리포트에 그림말(이모티콘)이 출몰하거나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주관적 감상만 나열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을 짜깁기하는 행태가 그것이다.

김태환 연구원은 글쓰기를 과제물의 완성이라는 결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사유를 넓히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논술고사의 악영향으로 학생들은 어떤 주제를 접하면 고민하는 시간은 생략한 채 바로 서론 본론 결론을 구성하고 글쓰기에 들어가죠. 또 분량만 채워지면 퇴고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장 제출합니다. 퇴고 과정이 없는 글쓰기는 진정한 글쓰기가 아니지요.”

김준성 연구원은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개념을 자신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지를 계속 점검하라고 충고한다.

“글쓰기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사유의 수단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익숙하다고 생각한 개념의 의미를 되새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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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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