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한세대前 우리들의 모습…

  • 입력 2005년 2월 18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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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판(事判)에 나와 포교한답시고 수행자답지 않은 삶을 사는 나에게 명절은 1년 중 가장 한가하면서 바쁜 날이기도 하다. 한가한 것은 절에 종사하는 종무원들이 모두 고향에 갔기 때문이고, 바쁜 것은 고향에 가지 못한 신자들이나 절에 납골을 모신 분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려야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조용히 나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해 보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니 어쩌겠는가. 그저 내 업보가 항상 사람들 가운데서 도를 찾으라고 하신 것을 인정하는 수밖에.

부천은 공단지역으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부천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집에는 버마와 네팔인 등의 공동체가 있다. 지난 섣달그믐에는 네팔 공동체에서 자국의 유명 연예인을 초청해 설맞이 행사를 했다. 1000여 명이 모여 하루만이라도 모든 어려움을 잊고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옛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노동자들도 보릿고개 시절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의 광부나 간호사로, 때로는 목숨을 걸고 월남의 전쟁터로, 혹독한 더위와 싸워야 하는 중동의 건설현장으로 떠났다. 그들이 힘들게 타국에서 고생할 때 우리 연예인들도 위문공연을 갔다. 이러한 일들은 아주 먼 옛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30여 년 전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옹호해야 할 위치에 있는 노동운동이 취직장사에 조직적으로 개입한다든지, 노동운동의 권력을 위해 정치판 뺨치는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미 그들도 기득권 세력이 돼버렸고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곧 바로 잡힐 것이라 믿는다.

예전에 석왕사 마당에선 우리 노동자들이 와서 놀았다. 지금 석왕사 마당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고통과 외로움을 달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저들도 본국에 돌아가 부자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금년도 이렇게 쓸쓸한 마음으로 시작되나보다.

부천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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