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부총리 사퇴]장남 부정입학 의혹 드러나자 ‘白旗’

  • 입력 2005년 1월 7일 23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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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李基俊)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7일 전격 사임함에 따라 ‘교육 수장(首長)’은 어떤 장관보다도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취임 초부터 도덕성 시비에 휘말렸지만 “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버티던 이 부총리는 이날 오후 본보가 장남의 대학 특례입학 부정의혹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구한 직후 전격 사퇴했다.

그는 4일 임명 발표가 있자마자 사외이사 겸직, 판공비 과다 지출, 장남 병역기피 의혹 등 서울대 총장 조기 퇴임의 원인이 됐던 사건들이 재론되면서 도덕성 시비의 도마에 올랐다.

한국교총 등은 “도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인사를 임명한 것은 도덕성을 내세우는 참여정부의 인사로는 실망스럽다”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참여연대도 5일 “참여정부의 도덕불감증이 위험수위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퇴진운동 불사 방침을 밝혔다. 6일에는 34개 교육시민단체가 청와대 앞에서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갖는 등 파상적으로 공세수위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이 부총리의 장남이 2001년 9월 한국 국적을 포기한 데 이어 한 달 뒤 경기 수원시의 이 부총리 소유 노른자위 땅에 신축된 건물 소유주로 등록된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하지만 청와대는 “서울대 총장 사퇴로 충분한 대가를 치렀고 병역과 국적 문제는 넓게 봐야 한다”며 이 부총리를 옹호했고, 본인도 “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업무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사태는 7일 오후 본보가 이 부총리 장남의 연세대 특례입학 부정의혹을 기사화하기 위해 이 부총리에게 사실 확인을 요구하면서 급반전됐다. 장남이 특례입학 지원 자격이 없는데도 연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

본보는 오후 4시경 이 부총리의 부인에게 전화상으로 두 차례 아들의 부정입학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이 부총리의 부인은 첫 통화에서 “잘 모르겠다. 아들이 자주 옮겨 다녔다”며 확인을 거부했다. 그러나 10여 분 뒤 두 번째 통화에서는 “중국 상하이(上海)는 미래를 향해 나가는데 몇십 년 전 과거를 파서 무엇 하느냐”며 울먹였다.

그는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교육과 경제 두 개(가 잘 돼야 하는 것) 아니냐. 일 하는 거 보고 보도하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후 본보는 오후 4시 반경 이 부총리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했으며, 이 부총리는 별다른 답변 없이 전격 사퇴했다. 이 부총리는 교육부 간부들과 숙의 끝에 오후 5시 반경 사퇴를 결심하고 청와대에 이를 알린 뒤 오후 6시 반 사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견 직전 본보 확인요구에 대해서도 “답변하지 않겠다”고 교육부 공보관을 통해 밝혔다.

이 부총리의 장남은 2001년 8월 LG전자에 입사해 같은 해 9월 한국 국적을 포기한 이후에도 줄곧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교육부 장관이 다른 사안도 아닌 대학 부정입학 의혹이 제기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부총리 임명과 사흘만의 사퇴 전말은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의 문제점을 노출시켰을 뿐만 아니라 교육에 대한 국민 불신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뼈아픈 ‘실정(失政)’으로 기록하게 됐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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