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숙객 구하고 숨진 권오남씨‘의사자’ 인정

  • 입력 2004년 12월 11일 00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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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역 앞 마도장 여관 화재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2002년 5월 1일 오전 3시경 경남 마산시 석전2동 마도장 건물 2층 레스토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유독가스가 3, 4층에 위치한 여관으로 올라가면서 투숙객 25명가량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었다. 여관 관리인조차 불길을 피해 도피했다.

그때 유일하게 방문을 두드리며 투숙객들을 깨운 것은 이 여관에서 야간에 청소를 하던 권오남 씨(당시 54세·여)였다. 그러나 권 씨는 자신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8명의 사망자가 나오긴 했지만 권 씨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당시 지역 언론은 앞 다퉈 ‘의로운 희생’ ‘살신성인’ 등이라 표현하며 권 씨의 죽음을 애도했다.

갓 서른을 넘기며 청상(靑裳)이 된 권 씨. 25년간 홀로 3남매를 키우고 맏며느리로 시부모를 봉양한 공적으로 경남도지사가 주는 ‘장한 어머니상’도 받았다. 유족들은 보건복지부에 권 씨를 ‘의사자(義死者)’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권 씨의 행동은 ‘여관 종업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직무상 행위’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들은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을 제기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권 씨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당시 투숙객들도 유족들의 증언 요청을 대부분 외면했다.

유족들은 수용하기 힘들었다. 유족들은 항소했고 2년여의 법정 투쟁 끝에 9일 권 씨는 마침내 ‘의사자’로 인정받게 됐다. 서울고법 특별7부(부장판사 오세빈·吳世彬)는 이날 권 씨의 아들이 낸 ‘의사자불인정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한 것.

권 씨의 시동생 이록상 씨는 “남을 위해 희생해도 사회적 약자는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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