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재경]수능시험과 SAT

  • 입력 2004년 11월 28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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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는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미국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세 번에 걸쳐 SAT를 볼 수 있다. 연습 삼아 볼 수 있는 PSAT까지 합하면 기회는 네 차례로 늘어난다. 시험 보는 시기도 자신의 준비 상황을 고려해 조절할 수 있다. 시험이 1년 내내 예고된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학생은 자신의 계획대로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 SAT는 언어영역과 수리영역으로 나뉘는데 1차 시험에서 수학시험을 잘 본 학생은 다음부터는 언어영역에만 집중해도 된다. 대학에 보내는 학생의 최종 성적은 언제 봤는지에 관계없이 영역별로 가장 잘 본 점수를 반영해 주기 때문이다. 성취욕이 높고 명문대학을 지망하는 학생은 여러 과목을 추가로 선택해 SATⅡ를 봐야 한다. 여기에는 고급 수학과 화학, 생물학, 글쓰기, 세계사, 제2외국어, 고급 영어 등 다양한 과목이 포함된다. 과목 선택은 당연히 원하는 전공과 대학의 요구사항을 고려한다.

▷우리의 수능제도는 미국 SAT 같은 유연성이 없다. 이름은 미국식 개념을 반영해 시행하지만 지나치게 획일적이다. 아마도 행정 편의에 중점을 둔 결과로 보인다. 평생에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시험, 그리고 그 결과가 인생을 좌우하는 중압감이 결국 이번 같은 수능시험 부정행위 사태를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1년에 여섯 번쯤 시험을 실시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한번 실수하면 다시 1년 후에나 기회를 가져야 하는 것은 어떠한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인가. 더구나 앞으로 도입될 변화 내용은 수십만 학생을 한 차례 시험으로 7등급, 9등급으로 나누는 방향으로 예고돼 있다. 이러한 제도의 도입은 변별력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개인적 특성과 능력을 무시하겠다는 정책 의지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이번 수능시험 부정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한국 교육제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촉구한다. 교육부총리는 교육의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겠다고 다짐했다. 가장 시급한 일은 시험제도 자체를 인간적으로 고치는 일이다. 불합리한 제도와 부실한 관리능력이 시험을 한탕주의 도박장으로 만들고 학생들을 범죄 유혹으로 몰고 갔다.

이재경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언론학 jklee@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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