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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23일 00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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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6명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어섰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에 연루돼 구속영장이 청구된 광주 S고 이모군(19) 등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자리였다.
어린 모습의 학생들 손목에는 어울리지 않게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긴장한 듯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이후 40여분간 진행된 실질심사에서 학생들은 모든 혐의사실을 시인했다.
이들은 실질심사에서 사건의 전말을 다 털어놨다.
올해 9월 말 J중학교 동창인 J고교 3학년생 10여명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수능시험에서 서로 답을 알려주자”고 모의했고, 이 소문은 다른 학교의 중학교 동창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
결국 광주시내 6개 학교 22명이 ‘원 멤버’로 모여 부정행위 각본을 짜고 각자의 역할을 분담했다. ‘원 멤버’들은 학교별로 성적이 좋은 ‘선수’와 돈을 댈 ‘후원자’, 답을 받아 전송해 줄 후배 ‘도우미’를 모집해 자금을 모으고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광주지법 이창한(李昌翰) 영장전담판사가 “원 멤버 22명 중 가담 정도가 덜한 학생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학생들은 “누가 더하고 덜하고 없이 비슷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학교별로 4명에서 33명까지 연루됐다고 진술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J고의 경우 ‘원 멤버’ 8명, ‘선수’ 15명, ‘후원자’ 10명 등 J고 전체 수험생의 10%에 해당하는 33명이 부정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들은 10, 11월 두 차례의 전국모의고사를 포함해 5차례에 걸쳐 휴대전화로 답을 전송하고 답을 취합해 재전송해 주는 ‘실전연습’을 했다.
‘후원자’ 40여명에게서 받은 돈의 사용명세에 대해서는 “휴대전화와 주변기기를 사고, 도와주는 후배들이 많아 식대 교통비 등으로 많이 썼다”며 “모의장소로 이용했던 고시원 숙박비 및 복사비로도 지출했다”고 말했다.
이 판사가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해 보라고 하자 학생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한 학생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시험을 볼 수 있도록 기회만 준다면 정정당당하게 공부해 대학에 가겠습니다”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광주=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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