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 씨(33)는 올해 헬스장 연간 회원권 갱신을 포기했다. 이씨는 대신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인 ‘마운자로’를 선택했다. 지난주 병원에서 33만 원을 주고 한달 치 처방을 받았다. 이씨는 “헬스장 1년 이용료가 90만 원이고, 개인 트레이닝을 회당 7~8만 원에 주 2회 받다보면 한달에 들어가는 비용이 수십만 원”이라며 “마운자로와 함께 식단을 조절하는 쪽이 효율적인 다이어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헬스장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면서 전국 헬스장 폐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러닝 열풍과 위고비·마운자로 같은 비만 치료제 확산이 맞물리면서, 한 때 다이어트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몸짱·벌크업’ 중심 운동의 인기가 식고 있는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 올 1월에만 70곳 문 닫아
10일 서울 시내의 한 약국에 비만 주사치료제 마운자로가 놓여 있다. 2025.09.10 뉴시스1일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폐업한 체력단련장(헬스장)은 2022년 323곳에서 해마다 늘어나 2024년 570곳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도 2024년과 비슷한 수준인 562곳이 문을 닫았다. 올해 들어서는 1월 한 달에만 70곳의 헬스장이 폐업한 것으로 집계됐다. 통상 연초는 새해 다짐과 함께 헬스장 등록 수요가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로 꼽히는데 1월부터 많은 헬스장이 문을 닫은 것이다.
헬스장 폐업이 늘면서 소비자 분쟁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장기 회원권을 결제한 뒤 헬스장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아 환불을 받지 못하거나, 폐업 사실을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영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5년 상반기(1~6월)까지 헬스장과 필라테스, 요가 등 체육시설업 관련 소비자 피해구제 신청은 1만4857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 2292건이 접수되며 전년 동기(2169건) 대비 5.7%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 비만치료제-러닝에 밀린 인기
서울 강남구 한 약국에서 약사가 입고된 비만치료제 ‘위고비’를 정리하고 있다. 2024.10.16 뉴스1문을 닫는 헬스장이 늘고 있는 배경에는 운동과 다이어트를 대하는 트렌드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안팎에서는 체중감량을 위해서 운동을 대체할 수 있는 약물이 대중화되고 있는 것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24년 10월 비만 치료제인 ‘위고비’에 이어 2025년 8월 마운자로 출시 이후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러한 치료제를 통해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는 후기들이 많이 올라왔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주사형 비만치료제로 뇌에 포만감을 느끼게 해 음식 섭취를 줄이는 방식으로 체중 감량을 돕는다.
비만치료제 광고판. 뉴스1의료계에서는 부작용 우려 등을 이유로 신중하게 처방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지만 체중 감량 효과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실제로는 필요 여부와 관계없이 처방을 받으려는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다이어트에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탄 마운자로는 새해부터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운동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각이 달라진 점도 헬스장 위기와 맞물린다. 과거에는 운동이 체중 감량이나 ‘몸짱’을 만들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하는 과정으로 인식됐다면 최근에는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취미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별도의 실내 공간이나 월 회원권이 필요 없고, 야외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러닝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크로스핏, 실내클라이밍 등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 콘텐츠도 다양해지면서 헬스장을 선택할 이유가 줄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운동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바뀌고 있는데 헬스장은 운동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진화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동시에 일부 업체에서 과도한 개인 트레이닝 중심 영업을 하다보니 소비자 피로도가 커진 것도 헬스 인기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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