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수양딸인데…" 철저히 속은 기무사 간부

  • 입력 2003년 12월 2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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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미국 갔다 돌아오면 자네가 할 일이 더 많을 걸세.’

2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권모씨(39·여·보험설계사)는 5월 8일 국군기무사령부 A중령 앞으로 이런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발신자 명의는 P그룹 C회장이었다. 당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방문 중인 시기였다.

권씨는 2001년 9월 충북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만난 A중령에게 자신이 ‘노 대통령의 절친한 후원자인 P그룹 C회장의 수양딸’이라고 속였다.

권씨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무료 e메일 계정을 C회장 이름으로 등록한 뒤 이를 이용해 마치 C회장이 직접 쓴 것처럼 꾸며 노 대통령과 친한 사이인 듯한 내용을 담은 e메일과 문자메시지를 10여 차례 A중령에게 보냈다.

또 청와대 하사품이라며 북악산과 태극기 문양을 새긴 한 냥짜리 순금 열쇠를 주기도 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권씨가 이런 과정을 통해 A중령을 철저히 속인 뒤 지난해 초부터 올 7월까지 “청와대에 힘을 써 승진시켜 주겠다”면서 30여 차례에 걸쳐 3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씨는 이 밖에도 모 여성 대통령비서관 행세를 하면서 송영근(宋泳勤·중장) 기무사령관에게 3차례 전화해 “A중령을 잘 봐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다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중령은 권씨에게 철저히 속아 군 내부 여론 등을 문서로 작성해 건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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