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利己 ‘민원폭력’…원자력사장 숙소 침임-협박

  • 입력 2003년 4월 27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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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상식과 법 규정을 벗어나, 민원을 폭력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민원인들이 공직자들을 대낮에 9시간 이상 감금하거나, 한밤중 숙소에 무단으로 침입해 흉기로 협박하는 등 ‘무법’적인 행태마저 나타나고 있다.

담당기관들이 민원인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고 일처리를 미숙하게 한 점도 큰 원인이지만 민원인들이 갈수록 적법한 절차보다 힘과 폭력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분향소 갈등=대구지하철 방화참사 희생자 유족 일부는 26일 낮 김기옥(金基玉·59) 대구시 행정부시장을 대구시민회관 별관 희생자대책위 사무실로 끌고 가 9시간가량 억류했다.

유족 40여명은 이날 낮 12시경 대구시민회관 별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대강당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이어 대구시측이 “장례 일정을 합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가능하다”며 분향소 이전을 거절하자 주차장에 자체 분향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유족들이 주차장을 관리하는 대구시시설관리공단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합동분향소 설치를 강행하자 김 부시장은 대구시 직원 200여명과 함께 합동분향소 철거에 나섰다.

유족들은 “분향소 없이 어떻게 문상객을 맞느냐” “대강당이 안 된다면 다른 대책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과 대구시 직원들은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현장에 있던 유족 80여명이 대구시 직원과 몸싸움을 벌이던 중 일부 유족들이 김 부시장에게 “당신이 철거를 지시했느냐”며 옷을 붙잡고 20분가량 몸싸움을 벌였고 김 부시장은 현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경찰 지프에 탔다.

그러나 뒤따라온 일부 유족들이 김 부시장을 끌어내 시민회관 1층 대책위 사무실로 데려갔다. 이날 낮 12시20분경 유족들에 의해 대책위 사무실로 끌려간 김 부시장은 오후 9시반경 경찰의 중재로 풀려났다. 김 부시장은 탈진증세를 보여 경북대병원에 입원 중이다.

유족들은 “대구시 직원 200여명이 마치 ‘철거반’처럼 몰려들어 분향소를 뜯어내려 해 유족들의 감정이 폭발했다”며 “김 부시장은 대책위 사무실에 있는 동안 폭행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숙소 한밤 침입=26일 새벽에는 경북 울진군 울진핵폐기장반대투쟁위원회 소속 간부 2명이 한국수력원자력 최양우(崔洋祐·60) 사장의 숙소를 찾아가 감금 폭행해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이들은 이날 오전 3시경 핵폐기장 후보지 문제와 관련해 울진에 머물던 최 사장의 숙소(울진군 북면 D호텔)를 무단으로 침입해 잠자던 최씨를 깨운 뒤 “울진에 핵폐기장을 설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이를 정부에 건의하라”고 요구했다.

최 사장은 이들이 자신을 감금한 채 뾰족한 도구로 옆구리를 찌르면서 40여분 동안 협박을 하자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각서를 써주고 풀려난 뒤 곧바로 상경했다. 경찰은 27일 서울에서 최 사장을 상대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울진경찰서 관계자는 “투쟁위원회 간부들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최 사장을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며 “최 사장이 경찰에 신고를 한 만큼 진상을 조사해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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