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방화]1080호 기관사의 '잠적 11시간'

  • 입력 2003년 2월 23일 19시 00분


‘비극을 부른 1080호 전동차’의 기관사 최상열씨(39). 그는 왜 전동차를 탈출한 뒤 11시간 동안이나 잠적해 있었을까. 불안감에 허둥댔던 것일까, 사고의 책임을 축소 또는 은폐하기 위한 시간을 번 것일까.

최씨가 종합사령실과 무전교신을 끊고 전동차를 탈출한 것은 사고 당일 오전 10시2분경. 중앙로역에 도착(오전 9시56분45초)한 지 5분여가 지난 뒤였다. 최씨는 사령실과 갑론을박하다 전동차를 빠져 나왔다. 그가 마스터키를 빼내들고 사라지는 바람에 전동차의 모든 조명마저 꺼졌고, 암흑 속에서 승객 70여명은 문을 열지 못해 질식해 숨져가고 있었다.

최씨는 탈출 당시 “문이 몇 개나 열려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중앙로역을 빠져나온 최씨는 근처 햄버거집에 들어가 물을 얻어 마시고 그을음이 묻은 얼굴을 씻어냈다. 이어 휴대전화로 운전사령실과 안심기지창으로 전화해 사고 사실을 뒤늦게 알렸다. 기관실을 벗어난 지 10여분 뒤였다.

오전 11시반경. 최씨는 대구 중앙로 부근에서 상급자인 안심기지창 최석문 승무팀장과 김선일 지도과장 등 직원 5명과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최씨는 “입고 있던 근무복을 이들 중 한 명에게 건네주고 사복(반코트)으로 갈아입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마스터키를 넣어둔 최씨의 근무복은 중앙로에서 16㎞가량 떨어진 안심기지창에서 발견됐다.

최 팀장과 김 과장은 이때 최씨로부터 사고경위서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경위서에는 사고를 더 키운 마스터키에 대한 부분은 언급되지 않았다. 최씨가 경황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고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그는 다시 700여m 떨어진 대구역 부근으로 옮겨 차량운영팀 정모 과장 등 2, 3명의 직원과 만났다. 경찰이 사고조사에 필수적인 기관사를 찾고 있는 상황에서 최씨는 자신의 상급자들과 잇따라 만나고 있었던 것.

오후 2시경. 최씨는 기지창 상급자들과 또다시 만나 국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그 이후 최씨의 행적은 묘연하다.

오후 7시경.무려 5시간이 지난 뒤 저녁식사를 하고 있던 그에게 안심기지창 직원은 “경찰이 찾고 있다”고 연락했다.

오후 9시반경. 최씨는 탈출 11시간만에 사복 차림으로 대구 중부경찰서에 출두했다. 잠적한 11시간 동안 대구지하철공사 직원 7, 8명을 만나 그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또 사이사이 확인되지 않은 시간 동안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구=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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