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에서 99세노인까지 "소중한 한표 기권은 없다"

  • 입력 2002년 12월 18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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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16대 대통령 선거일. 이번 대선에서 처음 투표하는 최연소 여대생과 탈북자, 그리고 스스로 ‘마지막 투표’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최고령 부부는 꼭 선거권을 행사하겠다고 다짐했다. 나이와 환경은 다르지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은 같았다. 대통령 선거를 맞는 이들의 소회와 감격을 들어 본다.

#새내기 유권자

“투표요? 당연히 해야죠.”

이화여대 국제학부 2학년 이지원(李智媛·20)씨는 이번 대선에서 선거권을 갖는 유권자 중 최연소자다. 1982년 12월 20일 태어나 하루 차이로 선거권을 갖게 되는 2831명 중 한 명이다.

“선거권이 생겨 비로소 어른이 된 느낌”이라는 이씨는 지난주 기말고사 기간에도 신문과 TV토론을 꼼꼼히 챙겼다.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나름대로 ‘대통령 적임자 검증’을 해온 것.

중고교 생활 6년간을 건설회사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말레이시아에서 보낸 이씨는 이번 선거에 남다른 감회를 갖고 있다. 외국에 있을 때 느낀 ‘조국에 대한 사랑’을 이번에 투표에 참가함으로써 비로소 실천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탈북 유권자

“중국에서 신분증이 없어 숨어 다니다가 귀순해 이름 석자가 적힌 주민증을 받으니 기분이 날아갈 듯했지요. ‘자랑스러운 한국 국민’으로서 첫 투표에 나서는 기분도 마찬가집니다.”

탈북 후 7월에 주민등록증을 받은 지창수(池昌秀·39)씨는 투표 소감에 앞서 눈시울을 붉혔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 생각 때문이다.

지씨는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먹고 살겠다’는 일념으로 97년 탈북했다. 그러나 중국 공안에 잡혀 북한으로 송환됐다가 탈옥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몽골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올해 4월 한국에 도착했다.

휴대전화 부속품 공장에 다니는 지씨는 “북한에서는 당에서 지정하는 사람을 무조건 찍어야 했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질 수 있게 되니 투표권 행사의 의미와 존엄성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90대 유권자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빠지면 안되지.”

1904년에 태어나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100세가 되는 이달성(李達成·서울 서대문구 홍제1동) 할아버지는 이번 선거에 꼭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표소인 홍제1동 홍광교회까지는 집에서 700여m 정도. 나이가 들면서 걸음이 느려져 지팡이 짚고 가려면 20분은 걸리는 거리지만 운동하는 셈 치고 걸어갈 생각이다. 그는 “할멈과 손잡고 같이 가야지”라고 말했다.

28만여명의 서울 서대문구 유권자 중 최고령인 이 할아버지는 건국 이후 첫 선거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투표를 했다. 쉰이 넘은 나이에 처음 투표를 한 이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거를 치러왔지만 이번처럼 조용한 선거는 처음이라고 했다.

찍을 후보는 정했느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벌써 정했지”라고 말했고, 부인인 백효현(白孝鉉·94) 할머니는 말을 아꼈다.

할아버지가 “할멈도 나하고 같은 사람을 찍을 거야. 우린 지금까지 항상 같이 가서 같은 사람한테 찍고 왔어. 물어보나 마나야”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그때는 영감이 무서워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른 사람을 찍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노부부는 “누가 되든 우리 손자들 잘 살게 정치 좀 잘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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