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왜 서두르나]신문 재갈 '또다른 수순' 예고

  • 입력 2001년 4월 6일 18시 49분


“자금여유가 있는 회사들이 광고를 많이 하는 바람에 다른 회사가 ‘장사 못하겠다’고 투덜대자 정부가 광고비 한도를 법으로 정해놓고 ‘안 지키면 처벌한다’고 겁주는 것과 똑같은 논리입니다.”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 A씨의 말이다. 두 차례에 걸친 규개위 회의진행 과정을 보고 느낀 소감을 이렇게 털어놨다.

▼규제내용 '코에 걸면 코걸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외압’이 없다고 애써 부인하는 데도 ‘언론탄압용’이란 의혹을 받고 있는 신문고시(告示)는 이 위원의 지적처럼 적잖은 독소조항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공정위가 신문고시를 통해 간여할 수 있는 부분이 신문사 경영전반으로 넓어지기 때문이다. 처벌할 수 있는 규제의 폭도 넓어진다. 신문고시가 ‘언론 장악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된다는 의혹도 이 같은 대목 때문이다.

▽규개위 동의 얻기 위한 무리한 추진〓신문고시를 부활하기 위해서는 규개위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공정위는 1, 2차 규개위 분과회의에서 동의를 얻지 못하자 3차 회의(11일 예정)까지 소집하는 등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규개위는 이견이 있을 경우 토론 끝에 만장일치로 의결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 상당수 민간위원들이 공정위 안을 전면수용하지 않음에 따라 정부측 위원들과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 정부측은 민간위원들에게 개인 의견을 발설하지 말라고 종용하고 있다.

신문고시 쟁점별 독소 조항

구분공정위 고시안예상되는 문제점
총론―판매 광고뿐만 아니라 경영활동에도 간여할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규정―이전 고시가 주로 무가지와 경품 제한에 주력한 데 비해 이번엔 공정위 간여범위 이상으로 제한
무가지(無價紙) 범위 ―유가부수의 10%이내 허용―신문판촉비를 정부가 규제함으로써 신문사 경영활동 위축 우려

―10% 범위의 적정성에 대한 검증작업이 없음

신문거절후 투입기간―구독자 원치 않더라도 사흘간 투입 가능 ―기간을 강제로 정하는 것은 신문판촉 활동에 지나친 간여행위
지국에 판매 목표량 및 공급부수 배정―본사가 지국에 목표량 설정 및 지국에 공급하는 부수와 단가 결정을 금지―판매목표와 공급부수 조절은 지국와 본사의 협의사항

―기업 경영활동에 법적 간여는 곤란

지국 차별취급 ―신문공급과 관련해 본사는 지국을 차별할 수 없음―신문상품과 배달업무 특성상 수익규모가 지국별로 다른 상황을 감안해야 함

―양자간 협의로 결정할 사안이므로 법 규제 바람직하지 못함

공동판매 허용―지국에 경쟁회사 신문을 못 팔도록 구속하는 것은 불가―배달사고 방지와 효율적 지국관리를 위해 공동판매시 독자관리 차질 우려
신문광고 규제―부당 고객유인 및 거래강제 불공정행위 금지 ―광고주는 신문부수공사(ABC)제도 도입 희망

―신문사도 기업처럼 취급하고 특별히 규제할 필요 없음(광고주협회 의견)

―부실 신문사 시장 퇴출이 우선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독과점지위(빅3) 신문사의 판매가 광고료 지국공급가 제한 ―시장원리에 따라 해결 가능

―빅3의 시장점유율 인위적 낮추기 촉진 의혹

―현재도 공정거래법으로 제한 가능

▽97년 고시보다 광범위하게 규제〓97년에 만들어져 99년에 없어진 신문고시는 ‘무가지 20% 제한’과 ‘경품금지’가 뼈대를 이룬다. 판촉활동의 무질서를 정리한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또 대부분의 신고사항을 자율규제기관인 신문협회에 넘겨 처리하도록 했다.

새 고시는 내용이 광범위하다. 판매 광고부문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도 규제대상으로 삼았다. 문제는 이런 부분들이 자의적으로 왜곡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데 있다.

▼"원가산정에까지 간섭"▼

▽규개위원도 이해 못한 ‘무가지 10%’〓논란을 빚고 있는 무가지 10% 제한은 규개위원들이 가장 많이 문제삼는 대목. 김일섭(金一燮)한국회계연구원장은 “무가지제한 방침은 정부가 기업의 원가(原價)산정 작업에 간여하겠다는 규제 일변도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자유시장경제 원리에도 어긋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무가지 적정비율을 10%로 산정한 기준이 모호한 데다 실효성 분석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규개위의 다른 민간위원은 “무가지가 10%면 공정거래이고 15%면 불공정거래라는 잣대를 누가 만들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공정거래법으로 처리가능한 사항도 또 규제〓공정거래법으로 충분히 규제할 수 있는 부분까지 고시에 일일이 집어넣어 이중규제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시장지배적 사업자들의 신문값 및 광고료 결정행위와 경쟁사업자 배제문제, 사업활동방해행위 등은 기존 공정거래법과 독과점방지법으로도 모두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공정위 실무자는 “이미 나와 있는 사안을 명시적으로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광고주협회, 부실 신문사부터 ‘정리해 달라’〓신문사들의 부당광고 활동에 대해서는 사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광고주협회는 규개위 회의에서 “신문사도 하나의 기업이므로 특혜를 주거나 특별히 규제할 필요도 없다”며 “신문부수공사(ABC)제도가 정착되면 광고문제는 자동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광고주협회는 “신문사도 경쟁력이 없으면 일반기업들처럼 퇴출되도록 원칙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며 “신문사 퇴출과 고시제정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독과점기준 공정위 맘대로▼

▽시장지배지위 기준은 공정위 ‘맘대로’〓공정거래법의 ‘시장점유율 1사 50%, 3사 합계 75%’란 기준이 아니더라도 공정위가 독과점지위 신문사를 규정할 수 있도록 했다.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빅3’ 신문 탄압용이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3사 합계의 시장점유율이 75%를 넘지 않더라도 이를 독과점으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한 것. ‘빅3’의 판매, 광고, 지국사업까지도 광범위하게 공정위가 통제하겠다는 발상으로 풀이된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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