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부문 개혁]낙하산 경영자 공기업 '改惡'

  • 입력 2001년 2월 19일 18시 48분


《“왜 힘없는 우리만 손대나.” 지난해 7월과 12월, 금융노조가 두차례 파업을 벌였을 때 농성장에 있던 은행원들은 “정부가 애꿎은 은행원만 자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4대부문 수술에서 유독 금융 구조조정에만 메스를 들이댄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우차 부평공장에서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1750명의 노동자들이 강력히 저항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리해고’를 못 받아들이겠다고 주장하는 뒤편엔 부진한 공공개혁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

▽공공개혁 ‘외화내빈(外華內貧)’ 실적〓공공개혁은 공기업 민영화와 공공부문 경영혁신이 주요 골자다.

정부당국의 공공부문 성과평가 점수를 보면 양적으로는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 11개 공기업 중 6개에 대해 이미 민영화를 추진했고 98년 이후 올해 말까지 줄여야 할 인력 14만3000명 중 13만1000명을 정리했다. 어떤 정권에서도 손대지 못했던 ‘정부파트’를 과감하게 손댔다는 게 자체평가다. 이 같은 인력감축과 제도개선 등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평가점수는 그리 후하지 못하다.

▼글 싣는 순서▼

1. 4대부문 개혁의 성과와 한계
2. 기업개혁의 현주소
3. 금융개혁의 현주소
4. 공공(公共)개혁 및 노동개혁의 현주소
5. 전문가들은 이렇게 본다

▽‘낙하산’ 비전문 경영인 수두룩〓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보인 한국부동산신탁 사태는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가 빚은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신용을 등에 업고 방만하게 경영하다 살림이 거덜났다는 것.

13개 정부투자기관의 역대 사장 중 정치인과 관료출신이 95%를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는 공기업 구조조정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현직에는 6명이 정치인 출신이고 4명은 관료를 하다가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물먹은’ 사람들과 행정부 출신 퇴임관료들이 줄줄이 공기업으로 떨어지고 있다. 물론 낙하산 인물 가운데서도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춘 사람도 있다. 문제는 전문성이 거의 없는 문외한이 와서 조직을 휘저어놓아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노조와 타협할 수밖에 없는 경영진〓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 주요 금융기관엔 재경부 출신들이 모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앉아있다. 산업자원부나 농림부 등 다른 경제부처도 예외는 아니다. 낙하산으로 떨어지면 노조가 가만히 앉아 있을 리 없다. 노조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이면 계약’을 통해 후생복지 수준을 높여주곤 한다.

감사원의 국책은행 감사 지적사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공기업 부당내부거래 결과도 거의 노조의 저항을 이기지 못한 결과에서 비롯됐다.

▽노동개혁은 물건너갔나〓사실상 마지막 개혁과정이라 할 수 있는 노동부문 개혁은 핵심 노동관계법 개정을 5년 뒤로 미루는 합의로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 문제는 이달 9일 노사정위원회(위원장 장영철·張永喆)에서 두 사안을 모두 5년 동안 시행을 미루는 데 합의하기로 했다. 노동개혁의 심벌로 여겨진 이 문제를 노조에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카드로 무마하고 경영진에게는 ‘복수노조 허용 유보’라는 당근으로 봉합한 것이다.

▽‘한국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에드워드 켈러허 뱅크오브아메리카(BOA) 한국지점장은 연초 열린 전경련 국제경영원 주최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한국은 노동개혁이 이뤄지지 않아 인력을 감축하기 너무 어렵기 때문에 새로 투자하고 싶어도 노조문제가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BOA가 130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데 노조가 있는 지사는 한국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영호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환란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노동자들도 ‘나도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는 생각이 심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비정규 근로자가 이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지만 대책이 별로 없었다”고 설명했다. 삶의 질을 높이려는 성과는 없이 노동자들의 삶만 더욱 힘들어졌다는 지적이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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