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사이트 30여곳 활개…자살방법·장소 등 소개

  • 입력 2000년 12월 17일 18시 36분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해 알게된 사람들이 함께 자살하는가 하면 돈을 받고 촉탁살인한 사건까지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촉탁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윤모군(19)은 경찰조사에서 “혼자 죽기는 힘들어 함께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자살 사이트에 접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대체 자살 사이트는 어떤 곳이며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자살 사이트 실태〓국내 인터넷 자살관련 사이트는 30여개(검찰추산). 대형 포털사이트 동호회까지 합치면 100개가 넘는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방침이 알려진 17일 이들은 대부분 홈페이지를 폐지하거나 자유게시판의 문제가 되는 내용을 삭제했으나 일부 포털사이트 자살관련 동호회는 그대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들 사이트는 겉으로는 ‘자살방지’를 명분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자살하려는 이유, 자살의 구체적인 방법 등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가감없이 실어 자살을 방조하거나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6일 국내 자살관련 한 사이트 게시판에는 ‘아름답게 죽는 방법’ ‘고통없이 죽으려면’ ‘저랑 같이 동반자살 하실 분’ ‘이왕이면 같이 자살합시다’와 같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대형 포털사이트에는 ‘자살클럽’ ‘자살마니아’ ‘한번도 죽어보지 못했다’ 등의 동호회가 활동중이다.

이중에는 회원이 300명을 넘는다는 곳도 5개나 있으며 ‘사이버 유언장’,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 등의 게시물이나 코너가 마련돼 있다. 한 포털사이트 동호회는 자살하는 방법, 자살하기 좋은 장소 등을 구체적으로 올렸다가 이번에 문제가 되자 내용을 모두 삭제하기도 했다.

▽문제점과 전문가 진단〓이들을 단속하려 해도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가 모호한 상태라고 수사기관은 말하고 있다.

검경은 17일 수사확대 방침을 밝히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법률을 적용하고 어떤 방식으로 제재를 해야 할지 좋은 방안을 마련하지 못해 고심중이다. 자살사이트를 통한 범죄행위가 처음 발생한데다 자칫 사이트 개설 운영에 대한 제재가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기 때문.

또 사이트 운영자가 실제로 회원들의 자살을 미리 알고도 막지 않고 부추기거나 도왔다는 증거가 없이는 처벌이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사당국은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캠페인을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중앙병원 정신과 홍진표(38)교수는 “경기침체와 급격한 사회변화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집단최면이 가능한 자살 사이트는 자살충동을 부추기는 기폭제가 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홍교수는 “특히 가정해체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요즘, 자살충동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볼 수 있다는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 나약한 현대 젊은이들을 자살로 몰아가는 원인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문명·최호원기자>angelhuh@donga.com

▼검찰 '자살사이트' 본격 수사▼

검찰과 경찰은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인터넷 자살 사이트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경의 이같은 움직임과 관련, 몇몇 자살 사이트 운영자들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자살 사이트는 자살방지가 목적이므로 검경의 자진폐쇄 유도에 따르지 않겠다”고 밝혀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검찰수사〓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정진섭·鄭陳燮부장검사)는 17일 우선 자살을 유도하거나 촉탁살인에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자살 사이트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국내 자살관련 사이트 30여개 가운데 ‘자살 기도 경험’ ‘자살 방법’ 등을 주제로 씌어진 글이 다수 게재된 6, 7개 사이트를 집중 조사중이다.

또 자살 행위에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촉탁살인 등에 중개역할을 한 사이트를 개설하거나 운영한 사실만으로 관련자에게 자살방조 등의 혐의를 적용, 사법처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법률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일단 사이트 운영자가 실제로 회원들의 자살계획을 미리 알고도 이를 막지 않고 부추기거나 도왔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확보돼야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우선 자살을 유도한 것으로 판단되는 사이트의 폐쇄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요청하고 촉탁살인에 관여하는 등 위법 사실이 발견되면 관련자를 사법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수사〓서울 노원경찰서는 자신을 죽여달라는 김모씨를 돈을 받고 살해한 혐의로 15일 구속된 윤모씨(19)가 김씨 외에도 휴대전화와 E메일을 통해 10여명과 접촉한 사실을 알아내고 이들 중 윤씨에게 숨진 김씨를 소개해준 것으로 드러난 같은 자살 사이트 회원 김모씨(23·여)의 관련여부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도 인터넷 자살 사이트의 실태 파악을 위한 내사에 착수해 자살 사이트에 자살을 유도하는 글을 올린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중이며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 사이트의 경우 모임의 목적과 활동 등을 알아보기 위해 사이트 운영자를 소환할 방침이다.

<이명건·최호원기자>gun4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