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천무효/의미-파장]낙하산-밀실 공천 수술대에

  • 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전북 군산의 민주당 공천자인 강현욱(姜賢旭)의원에 대한 공천 무효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파문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법원이 일차적으로 문제삼은 대목은 공천신청기간 내에 공천을 신청한 당원 중에서 공천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점. 민주당의 경우 2월1일부터 7일까지 공천 신청을 받았기 때문에 무소속으로 있다가 2월22일 입당한 강의원을 이틀 뒤인 24일 공천한 것은 무효라는 논리다.

민주당 당규는 ‘공직후보자의 추천 신청 기간은 공고한 날로부터 7일 이내로 한다’고만 돼 있을 뿐, 신청 기간을 연장한다든가 하는 유보 규정이 전혀 없다. 따라서 강의원의 공천은 명백한 당규 위반이다.

문제는 법원의 지적대로 ‘스스로 정한 절차도 완전히 무시한 채’ 공천자를 결정한 케이스가 강의원 한 명뿐이 아니라는 점. 민주당의 경우 외국에 체류하다 3월 이후 귀국해 뒤늦게 공천을 받은 사람, 공직사퇴 시한(2월13일)에 맞춰 사표를 제출하자마자 공천을 받은 사람 등이 이에 해당될 수 있는 케이스다. 영남 등 아예 공천신청자가 한 명도 없었던 지역에 ‘영입’ 케이스로 뒤늦게 공천을 받은 상당수 인사들이 이번 판결의 영향권 안에 있다.

한나라당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 당규에도 ‘공천 신청 기간은 공고한 날로부터 5일 이내로 한다’고만 돼 있을 뿐 신청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대목이 없다. 당규대로라면 한나라당은 1월6일부터 10일까지 공천 신청 접수를 끝냈어야 한다. 엄격히 따지면 추가 신청자들은 당규상의 신청 기간 규정을 지키지 않은 셈이다.

또 한 가지는 공천자 교체 문제. 한나라당은 유인태(柳寅泰·서울 도봉을) 이상열(李相烈·부산 서) 이만기(李萬基·경남 마산합포)씨 등을 1차 공천자 발표 때 공천자로 확정 발표했다가 2차 발표 때 다른 사람으로 바꿨다. 따라서 공천자로 결정됐다 낙천한 사람들이 법적 문제를 제기할 경우 논란의 소지가 있다.

타당의 낙천자에 대한 ‘이삭줍기 공천’이 적지 않았던 자민련이나 민국당의 경우는 사정이 더 복잡하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지역의 낙천자들이 공천무효소송을 잇따라 제기하는 상황을 상정할 수 있다. 이 경우 그 주장이 법원에 의해 실제로 받아들여질지 여부와 별개로 이번 선거전에서 “○○○후보는 공천이 무효될 것”, 또는 “○○○후보는 당선돼 봐야 소용없다”는 등 흑색선전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선거전에 예측하기 힘든 혼란이 초래될 것은 물론, 기존의 선거 판세에도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각 당 모두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는 분위기다.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진 민주당은 이날 오후 긴급 선대위 확대 간부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 일단 군산지역에 대해 공천 신청을 재접수하기로 결정했다. 법원이 공천 절차를 문제삼은 만큼 절차를 보정하면 문제될 것이 없지 않느냐는 식의 대처다.

그러나 이같은 대응 전략이 일단 군산지역의 공천 시비를 회피하는 방책은 될지 몰라도 향후 소송사태 등 문제에 대한 근본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 법원의 이번 결정이 ‘하향식’으로 운영되는 한국적 정당 운영 관행에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날 결정문을 통해 기성 정당의 이같은 하향식 운영 관행과 이를 보장하는 정당의 당헌 당규 자체가 민주적 정당 운영을 규정한 헌법 및 정당법 규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적시했다.

그러나 하부 당원 구조가 취약한 한국 정당들은 중앙당에서 조직책이란 이름으로 지구당의 ‘중심 인물’을 지정하고, 그 ‘중심 인물’이 ‘당원’들을 규합하는 하향식 구조를 기본으로 운영돼 왔다. 따라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특히 조직책과 공천자를 겸하는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공천의 경우는 예외 없이 중앙당에서 그 대상자를 일방적으로 지정해왔다.

일각에선 “조직책이 누구냐에 따라 구성이 달라지는 지구당의 ‘당원’들이 과연 그 당 지지자들 전체의 총의를 대변할 수 있느냐”며 “우리 현실에서는 중앙당이 공천자를 지정하는 것이 민의에 더 근접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이번 결정이 ‘밀실 공천’이란 한국 정당의 비민주성이 재고될 수 밖에 없는 계기가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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