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서 약혼 南에서 결혼…귀순자 뒤늦게 약혼녀와 웨딩마치

  • 입력 2000년 3월 1일 23시 11분


북한에서 약혼했던 두 남녀가 따로 탈북한 뒤 2년여만에 서울에서 만나 극적으로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이 ‘남녘에서 이룬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은 정용씨(31·연세대 노문과 휴학중)와 최은실씨(28).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은 한 편의 영화처럼 감동적이다.

정씨는 북한에서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만 다니는 만경대 혁명학원을 졸업하고 비행공단학교에서 조종사 수업을 받았다. 북한에서 알아주는 엘리트 계층인 정씨의 집안이 몰락한 것은 90년12월 러시아에 유학 중이던 큰 형 현씨(35)가 한국에 귀순하면서부터. 정씨 가족은 그 뒤 평양에서 함북 온성으로 이주당해 강제노동을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한때 자살을 기도하는 등 실의에 빠져 세월을 보내던 정씨에게 삶의 희망을 되찾아준 사람이 바로 최씨. 96년 정씨 어머니의 소개로 만난 이들은 97년2월 약혼까지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 뒤 큰 형 현씨가 남한에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정씨 가족은 97년8월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했고 두달 뒤 최씨도 가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탈북 후 정씨 가족은 큰 형의 도움으로 남한으로 올 수 있었지만 최씨 가족은 중국에 남아 온갖 고생을 겪었다.

북한 탈출 뒤 1년 동안 서로의 생사도 모르던 두 사람은 98년8월 우여곡절 끝에 전화 통화를 하게 됐고 그로부터 한달 후 최씨는 정씨가 보낸 초청장을 들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할 수 있었다.

“귀순 후 재회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주변사람들이 포기하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제가 불행할 때 그녀가 힘이 돼 줬던 것처럼 저도 그녀에게 힘이 되어 주렵니다.”

이들은 7일 오후 6시 서울 송파구 가락동 새벽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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