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한 몸인 군사법체계…지휘관 권한 분리 못하면 은폐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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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6월 9일 16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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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추행 피해를 당하고도 아무런 조력을 받지 못한 공군 이모 중사 사건의 핵심은 범죄가 발생하고도 이를 철저히 수사해야 할 군 사법체계가 이를 무시하고 은폐, 축소시킨데 있다.

군이 아무리 내부에 인권센터를 만들고 성범죄 교육을 하더라도 이에 대한 처벌과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다면 재발을 방지할 수 없다. 비슷한 사건이 5년 전, 10년 전에도 발생했음에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이 중사 사건이 또 발생한데는 제식구 감싸기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9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위원들은 한목소리로 이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군사경찰·군검찰 권한 모두 지휘관에 위임…은폐할 수밖에 없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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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사 사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애초에 부실 대응을 한 것이 아니라 군의 사건 처리의 축소·은폐가 만연화돼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중사는 지난 3월 2일 장모 중사로부터 강제 추행 피해를 당한 뒤 이튿날 곧바로 사건을 대대장에 보고했다. 그러나 사건을 접수한 공군경찰은 3월17일이 돼서야 가해자를 조사했고 무려 한 달이 지나서야 기소의견으로 장 중사를 송치했다.

그 사이 이 중사는 장 중사와 노모 준위 등으로부터 끊임없는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 강제 추행 당시 녹음된 차량 블랙박스로 공군경찰이 아닌 이 중사가 직접 확보했으며, 그 와중에 해당 차량 운전했던 하사는 강제 추행 여부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사건을 뭉개기는 공군검찰도 마찬가지였다. 사건을 넘겨받고도 소환 조사는커녕 장 중사의 휴대전화도 압수수색하지 않았다. 만약 이 사건이 공론화되지 않았다면 아직도 사법처리가 이뤄졌을지 의문이다. 이 중사가 사망하고 나서야 공군검찰은 장 중사를 첫 조사했고 지난 2일이 돼서야 장 중사를 구속했다.

이같은 사건 은폐와 축소는 군경찰과 군검찰, 지휘관이 모두 한 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군검사는 부대 지휘관에 소속돼 감독을 지휘관의 감독을 받는 구조로 인사권 마저 가지고 있는 지휘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부대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경우 인사고과에 불리한 평가를 받는 지휘관은 사건을 최대한 숨기려고 한다. 하물며 이 중사의 피해자국선변호사를 맡았던 인물도 외부인이 아닌 공군본부 법무실 소속 군법무관이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가해자와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군 사법체계 전체와 싸워야 하는 구조다.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김민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휘관의 능력 평가 중 하나가 부대관리에 있어서 사건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부대 지휘관은 사건을 은폐하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은폐하게 되면 부대 지휘관에게 가장 유리하다”며 “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부대 지휘 및 인사권과 사법체계 지휘권을 부대 지휘관이 동시에 가지는 사법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날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 중사 사건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군사법체계를 인정하는 발언을 내놨다. 서 장관은 자신이 뒤늦게 강제 추행 사건을 보고받은데 대해 “그런 사건들은 밑에서 군사경찰이나 군검찰의 권한을 갖고 있는 지휘관들한테 처리권한이 위임돼 있어 보고가 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군사법원은 다를까…검사와 판사가 같이 근무하는 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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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군사경찰과 군검찰의 장벽을 뚫고 군사법원까지 가더라도 난관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회에서는 엄격히 분리되는 검사와 판사는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것이 보통이고 관할관(고등군사법원의 관할관은 국방부 장관, 보통군사법원은 통상 군단장)이란 제도 때문에 지휘관이 재판관을 지정한다. 지휘관은 일반장교를 심판관이란 이름으로 판사석에 앉힐 수 있다. 지휘관이 재판 전반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권한도 막강하다. 관할관은 재판부가 결정한 형량을 3분의 1 미만의 범위 내에서 재량으로 감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1심과 2심까지는 모두 군에서 관할하기 때문에 통상 증거를 놓고 다투는 재판은 군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 제도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폐지에 대한 공론화가 있었으나 군의 기득권 지키기를 포함해 군 출신 의원들을 상대로한 광범위한 로비 덕에 입법화되지 못했다. 해당 법안은 정부안으로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이 제도의 부작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난 2014년에는 여군 대위에게 지속적인 가혹행위와 성추행을 가해 극단적 선택까지 이르게 한 육군 노모 소령에게 1심 군사법원은 징역2년에 집행유에 4년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내놓은 양형의 이유는 “강제추행의 정도가 약했고 피고인은 아무런 전과가 없는 초범인 점 등을 참작됐다”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내놓기도 했다.

2017에는 이같은 사건도 있었다. 군 법원은 부사관인 피고인이 위관급 여성 장교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는 등 3차례에 걸쳐 추행한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피고인이 초범이고 취중에 우발적으로 범행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선고를 유예했다. 집행유예도 아닌 무려 선고유예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지난 2017년 조사에서 군사법원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의 선고유예 비율은 일반법원 보다 무려 10배 가량 낮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날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국방부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헌법 정신에 따라서 군사기밀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건은 일반 법원으로 옮겨져야 하고 그래야만 지휘관의 회유, 협박이 없어진다”며 “수사 역시, 일반 검찰, 일반 경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이어 “지휘관의 신상과 인사 불이익 때문에 전 군을 동원해 은폐, 회유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죽는 것 말고는 해명할 길이 없다”며 “이 기회에 군의 수사와 법원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군검찰이나 군법원이 지금 상태로는 존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 장관은 “검토해 봐야 한다” “검찰 관할권은 참모총장에게 주고 1심 군사법원과 군검찰은 유지돼야 한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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