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점 칼날’로 방송 재갈물리기… 밀어붙이는 방통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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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벌점 2배로 높이는 평가규칙 개정안 행정예고 결정

방송통신위원회가 정치권과 방송업계의 반발에도 ‘방송평가 규칙’ 개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방송이 ‘공정성’ ‘객관성’ 등의 항목에서 심의에 적발되면 벌점을 현재 수준보다 2배로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성, 객관성 기준이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권력의 입맛에 맞게 방송을 길들이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방통위는 23일 상임위원 전체회의를 열고 방송평가 규칙 개정안을 행정예고하기로 결정했다. 행정예고는 정책이나 제도가 수립되기 전에 이해 당사자나 일반인의 의견을 묻는 과정이다. 방통위는 20일 동안 행정예고를 거친 뒤 다음 달 중순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12월 중에 상임위원 전체회의에서 개정안을 최종 의결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 1월 방송부터 개정안이 적용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방송프로그램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방송심의에서 △객관성 △공정성 △재난방송 △선거방송 항목에서 적발되면 방통위로부터 현재보다 2배 높은 벌점을 받게 된다. 방송의 품위 유지 등 나머지 항목은 벌점이 1.5배로 높아진다.

방송사가 방통위로부터 벌점을 받으면 3년마다 받는 재승인 심사 때 불이익이 따른다. 자칫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만큼 방송사로서는 벌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방송이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헌법에 보장된 ‘언론 자유’ 가치가 훼손될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날 방통위 전체회의는 시작부터 고성이 오간 끝에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이 퇴장하는 등 파행으로 끝났다. 개정안 행정예고 결정도 2명이 퇴장한 후에야 이뤄졌다.

김 부위원장은 “오보, 막말 등에 대한 심의 강화는 동의하지만 공정성을 다수결 방식인 방송심의 결과로 하는 것은 반대한다”면서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조치”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고 상임위원은 “방송평가는 재승인이나 재허가 과정에서 방송사의 생존문제”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언론자유를 위축할 우려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전날 국회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간사인 박민식 의원은 최성준 방통위원장에게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헌법 가치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도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에서 상임위원 간 합의 없이 민감한 사안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질책했다.

이진로 영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방송사에 대해 벌점을 강화하는 것이 민감한 사안임에 틀림없다”면서 “막말 방송을 막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자율규제와 같은 다양한 방법을 우선 검토해 언론 탄압 등의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최 위원장은 “2014년 출범한 3기 방통위의 업무계획에 다 포함돼 있었던 내용으로 갑자기 추진된 것이 아니다”라면서 “우려되는 점은 행정예고 기간에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김기용 kky@donga.com·신무경 기자
#벌점#방통위#평가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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