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다시 만나”… 사흘의 만남, 다시 南으로 北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남북 이산가족 상봉]1차 상봉 종료… 24일부터 2차 상봉

휴전선을 두고 65년여 세월을 따로 살아온 남북 이산가족. 사흘간 12시간의 짧은 만남은 끝났다. 남북의 가족들은 22일 20차 이산가족 상봉 전반기 행사가 끝난 금강산에 또 다른 이산(離散)의 한탄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렸다.

○ “아버지, 이렇게 만나는 게 끝이래요…”

두 살 때 헤어진 북한의 아버지 이흥종 씨(88)를 66년 만에 만난 이정숙 씨(68)는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 마련된 작별상봉장에서 아버지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드릴 수 있어요….”

작별상봉 시간이 10분 남았다는 안내 방송. 마음이 급해졌다.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하세요. 시간이 없어요. 아버지…”라고 말을 이었다. 함께 온 사촌동생이 “작은아버지 모시고 우리 가족 큰절해, 언니”라고 하자 그제야 마지막임을 깨달았다.

“아버지, 이렇게 만나는 게 이게 끝이래요…, 아버지. 그래서 큰절 받으시래요….” 정숙 씨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곱게 화장한 볼에, 주홍색 립스틱을 바른 입술 아래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국에서 온 가족들의 절을 받는 흥종 씨의 주름진 눈꺼풀 아래로 눈물이 솟았다. 반백의 정숙 씨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정숙 씨 앞에 아버지의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흥종 씨는 딸의 손을 부여잡았다. “굳세게 살아야 해….”

2시간의 작별상봉 뒤 아버지를 태운 버스가 무심히 떠났다. 정숙 씨는 함께 온 사촌동생에게 안겨 흐느꼈다. “내가 60이 넘어 아버지를 처음 불러봤어. 아버지….”

그는 북한 이산가족 상봉단장인 이충복 적십자회 중앙위원장에게 “아버지를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해 달라”며 새끼손가락을 걸어 눈길을 끌었다. 이충복 위원장은 한국 상봉단장인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함께 잘해보자”는 덕담을 나눴다. 북한적십자회 소속인 김춘순 씨는 김 총재와 악수하며 “조선의 나이팅게일이 되십시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통일신보는 이날 ‘상봉의 기쁨을 관계 개선의 더 큰 길로’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이산가족 상봉의 성과를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가자며 8·25 남북합의 이행 의지를 나타냈다.

○ “지하에서 다시 만나…”

이순규 씨(85)는 결혼 반년 만에 헤어졌다가 65년이 지나 다시 만난 북한의 남편 오인세 씨(83)의 넥타이를 고쳐 매줬다. 주름진 손이 파르르 떨렸다.

“지하에서 다시 만나….” 검버섯이 가득해도 여전히 고운 백발의 아내를 꼭 안은 채 등을 쓰다듬었다. “오래 사슈….” 아내가 애써 감정을 감췄다. 오 씨는 아들과 며느리를 같이 끌어안았다. “이렇게 안는 것이 행복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이다….”

북한의 누나 박룡순 씨(82)를 만난 고웅 씨(76)는 누나를 업고 상봉장 테이블을 빙빙 돌았다. “65년 전의 이별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어. 그땐 이렇게 될지도 모르고 울지도 않았어. 그런데 이제 또 이별해야 하다니….” 고웅 씨가 울먹거렸다.

북한의 언니 남철순 씨(82)를 만난 순옥 씨(80)는 헤어지기 전 “오래 살자. 다시 봐야지”라고 말하는 언니에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세대는 끝났어….”

24∼26일 한국의 가족이 북한 가족을 만난다. 그 뒤엔 상봉행사가 언제 다시 열릴지, 열릴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남북 당국이 이산가족으로부터 받은 숙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금강산=공동취재단
#남북#이산가족#이산가족상봉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