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은 우리만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과거라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겠지만, 요즘처럼 글로벌한 시대에는 장담하기가 어려워진다. 가까이 있어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당연히 잘할 거라는 장담이 예술적 성취를 가리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는 바로 이 외부인과 내부인의 경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야쿠자 가문에서 태어나 눈앞에서 아버지를 잃고 가부키 명문가인 하나이 한지로 가문에 들어가 배우로 성장하는 기쿠오와, 그 가문의 후계자로 자라난 슌스케가 그 예인들이다. 둘도 없는 친구지만 이들은 예술 앞에선 경쟁자다. 하지만 출중한 재능을 갖고 있어도 가문의 후계자가 선대의 이름을 물려받는 가부키의 세계에서 기쿠오는 한계를 느낀다. 핏줄로 이어진 내부인들의 공고한 장벽 앞에서 그는 절규한다. “내겐 나를 지켜 줄 피가 없어. 할 수만 있다면, 네 피를 컵에 담아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아마도 가부키라는 일본의 전통문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 안에 내부인과 외부인 사이에 선 경계인의 정서를 담아낸 건 재일교포라는 이 감독의 정체성 때문이었을 게다. 결국 이 영화는 일본에서 개봉 10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일본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 성취는 핏줄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부키 최고의 예인으로 박수받게 된 기쿠오의 모습과 겹쳐진다. ‘내겐 나를 지켜 줄 피가 없다’고 절규하며 손을 덜덜 떠는 기쿠오를 위해 슌스케가 대신 빨간색 눈화장을 해주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마치 오로지 예술을 위해 피를 나누는 듯한 그 장면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핏줄이나 민족, 국가로 그어놓았던 옛 장벽들이 이제 예술에 의해 허물어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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