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는 개헌론 불씨… MB가 당 지도부에 언급한 ‘4대 가이드라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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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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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3일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개헌에 대한 소신을 밝히면서 여권이 개헌 문제로 들썩이고 있다. 다음 달 예정된 ‘개헌 의총’을 준비하고 있는 김무성 원내대표(왼쪽)가 25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같은 당 원희목 의원(오른쪽)이 ‘국민연금기금 복지사업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연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개헌에 대한 소신을 밝히면서 여권이 개헌 문제로 들썩이고 있다. 다음 달 예정된 ‘개헌 의총’을 준비하고 있는 김무성 원내대표(왼쪽)가 25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같은 당 원희목 의원(오른쪽)이 ‘국민연금기금 복지사업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연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의 청와대 안가 회동(23일)을 계기로 힘없이 사그라지는 듯하던 여권발 개헌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본보 20일자 A1·4면 참조
“개헌, 어떻게 할 것인가” 한나라당 의원 171명 전수조사


이 대통령이 당청 회동에서 개헌 방향과 내용, 주체와 시기 등에 대한 일종의 ‘4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 MB, 개헌 4대 가이드라인

이 대통령은 당청 회동에서 개헌 방향과 내용, 주체와 시기 등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우선 “대선 전략이나 당리당략으로 개헌 논의가 이뤄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기억해 보니 이 대통령은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만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정략적으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시대정신’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땜질식 부분 개정은 의미가 없다. (권력구조만 달랑 바꾸는) 원 포인트 개헌은 적절치 않다”며 “기본권 조항, 기후변화, 여성, 남북관계, 사법부 문제 등 21세기 시대정신에 맞게 광범위하게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또 “아날로그 시대에서 스마트 시대로의 시대 변화에 맞게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대선 전략 차원이 아닌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개헌 논의가 이뤄져야 하며 단순히 권력구조 개편 차원을 넘어 1987년 개헌 이후 시대 변화상을 반영하는 개헌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이어 개헌 주체와 시기 문제에 대해서도 의중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정부와 청와대가 개헌을 주도하면 될 일도 안 된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는 것. 또 정치권의 특정 계파가 개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여야가 국회에서 순수성을 갖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국회 개헌 특위에서의 공론화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시기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개헌 논의는 금년에 끝내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고 여권 관계자들은 전했다. 개헌 논의가 잘 진행돼 정치권의 합의가 모아지면 내년 대선부터 적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친이계 주도의 개헌 드라이브엔 제동?

여야 정치권, 즉 국회가 개헌 논의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뜻으로 확인됨에 따라 ‘개헌 전도사’를 자임해 온 이재오 특임장관 주도의 여권발 개헌 논의는 새로운 흐름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여권 일각에선 “이 장관이 처음부터 ‘분권형’ 개헌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정략적으로 비쳐 공명을 얻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개헌을 하려면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만큼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지점을 잘 찾아내 신중히 접근했어야 했는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것이다.

반면 이 장관 측은 그동안 이끌어온 개헌 논의가 이 장관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됐다는 반응이다. 한 측근은 “그동안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들조차도 이 장관이 자신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개헌을 추진하는 게 아니냐며 진정성을 반신반의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런 의구심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말했다.

다만 사견임을 전제로 ‘권력 분산’을 설파해 온 이 장관은 자신의 권력구조 개편 주장이 개헌 논의에 걸림돌이 된다면 백지로 돌아갈 용의가 있다는 뜻을 측근들에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 개헌 불씨 살아날까

여권 내 개헌 논의의 불씨가 활활 타오를지 18대 국회에서의 개헌 논의는 폐기 수순을 밟을지 당장 예단하기는 어렵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설 연휴 이후 의원총회를 통해 공식절차를 거쳐 개헌 문제를 논의해 나가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친박(친박근혜)계는 여전히 개헌 논의의 순수성을 의심하고 있다.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움직임이라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부 친이계 의원들과 중립적 의원들도 “개헌이 가능하겠느냐”며 회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개헌은 세종시 수정안보다 10배는 힘들고 폭발력을 지닌 문제다. (안가에서) 몇 명이 만나 은밀하게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며 “분당(分黨)할 각오가 돼 있으면 개헌을 추진하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이 우여곡절 끝에 개헌에 대한 총의를 모은다 해도 야당의 호응이 없다면 물거품이 된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은 실기(失機)했다”며 “(개헌 의지가 있다면) 한나라당에서 통일된 개헌안을 먼저 제시해 보라”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의 측근인 차영 대변인은 “여당과 이 대통령의 개헌 발언은 이제 지겹다”고 반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개헌 자체에 대한 이목을 끄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는 게 여권 내 자평이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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