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는’ 巨與…한나라 연찬회, 쇄신안 이견

  • 입력 2009년 6월 5일 03시 00분


고민하는 朴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오른쪽부터)와 안상수 원내대표가 4일 경기 과천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당 연찬회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과천=김동주 기자
고민하는 朴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오른쪽부터)와 안상수 원내대표가 4일 경기 과천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당 연찬회에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과천=김동주 기자
사회 분열에도 중심 못잡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 소재 등을 놓고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의 한 축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이 내분에서 벗어나지 못해 집권 여당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4일 경기 과천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의원 연찬회를 열고 지도부 거취 문제 등 당 쇄신 방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지만 깊게 파인 갈등의 골만 확인한 채 큰 성과 없이 끝냈다. 연찬회에선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간 대립뿐 아니라 친이계 내부의 분열마저 표면화됐다.

의원들은 이날 박희태 대표 등 지도부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발언자 47명 중 20명은 박 대표 사퇴를 주장했고 21명은 반대했다. 6명은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박 대표 퇴진은 친이 소장파와 중도개혁 성향의 의원들이 먼저 제기했다. 정태근 의원은 “2004년 최병렬 전 대표를 (쇄신의) 제물로 바쳤듯이 박 대표 사퇴는 우리가 국민에게 다시 살려 달라고 할 명분”이라며 ‘박 대표 제물론’을 주장했다. 김용태 의원도 “앉아서 죽는 게 가장 비참하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전함으로 적에 맞섰다”면서 “우리는 이 정권에서 이제 노숙자가 됐는데 우리가 백의종군할 테니 청와대도 쇄신 방향에 동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태 의원은 “박 대표가 청와대의 일방통행에 한 번이라도 제동을 걸어봤느냐”며 용퇴를 촉구했다. 권택기 의원도 “박 대표가 쇄신의 물꼬를 틀 수 있게 용단을 내려달라”고 말했고 남경필 김성식 의원 등도 “지도부의 용단이 필요하다”며 박 대표를 강하게 압박했다.

반면 친박 의원들은 청와대부터 개혁해야 한다며 박 대표를 옹호했다. 이정현 의원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500명이나 뿌릴 때 (친박에) 단 10명이라도 추천하라고 했느냐”며 “박 전 대표는 (지방선거 때) 칼 맞고 손이 퉁퉁 붓도록 (선거운동을) 했는데 이건 아니다. 전체가 다 사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박계인 이성헌 의원도 “청와대가 당을 부속물로 여기고 있는데 어떤 대표가 와도 마찬가지”라며 “국민 중에 누가 전당대회에 관심이 있느냐. 쇄신하려면 당 대표 사퇴가 아니라 왜 한나라당이 이렇게 됐는지 진단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학재 의원은 “인적 쇄신이 분위기 쇄신을 위한 것이라면 이는 인신공격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친이 소장파 “朴대표 희생양 돼야”
친박 “사람 하나 바뀐다고 되나”

지도부 교체 이견만 드러나
이성헌 “대통령 퇴진…” 발언, 친이측 격앙 고성 오가기도

이날 연찬회에선 유정복 김태원 임동규 의원 등 다른 친박 의원들은 물론 박준선 김동성 이한성 의원과 김효재 대표비서실장 등 친이계이면서도 소장 개혁파와 다소 거리를 두고 있거나 박 대표 측근으로 분류되는 의원들도 지도부 사퇴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박준선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쇄신특별위원회가 완전히 계파 소모임”이라며 “지금 박 대표가 물러나는 게 국민에게 무슨 감동을 줄 수 있느냐”고 말했다. 김동성 의원도 공식 발언을 통해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존재감 없는 사람 하나 바뀐다고 해서 당 지지율이 올라가느냐”고 따졌다.

분위기가 격해지면서 친이와 친박 간에 고성이 오가는 등 충돌 직전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 이성헌 의원이 쇄신특위 여론조사 결과를 거론하며 “국민의 64%가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대통령을 퇴진하라고 할 수 있느냐”며 친이계를 비꼬는 듯한 발언을 하자 권택기 의원이 격분해 “어떻게 대통령더러 물러나라고 하느냐”며 당 윤리위원회 회부를 주장했다. 친이계는 이 의원이 전날 지도부 사퇴를 주장하는 의원들을 ‘장마철 개구리’라고 비유한 데 대해서도 사과를 요구해 한동안 격앙된 분위기가 이어졌다.

당초 이날 연찬회에선 쇄신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친이 소장파 의원들의 바람몰이가 예상됐다. 하지만 친박계가 막판에 세를 결집하며 대표 퇴진론을 강하게 반박하고 나선 데다 일부 친이계 의원들도 가세해 당론이 모아지지 않았다.

친박계가 지도부 교체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원내대표 경선 패배로 내상(內傷)을 입은 데다 친이계가 박근혜 전 대표를 당의 전면으로 끌어내 국정 책임을 분담하려 한다는 의혹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친이계인 권영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국정 동반자라고 했는데 이는 공동 정권을 의미한다”며 “당을 박근혜 전 대표에게 맡기면 된다”고 말했다. 김용태 의원도 “박근혜 전 대표는 더 이상 방관과 냉소만 하지 말고 앞으로 나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박계의 반대에는 또 현 지도부가 물러나면 ‘천적’이나 마찬가지인 이재오 전 의원이 복귀할 수 있다는 경계론도 작용했다.

지도부 교체에 반대하는 친이계 의원들은 지도부 개편에 부정적인 이 대통령의 의중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쇄신 논쟁이 소장파와 원로그룹 간 권력투쟁 양상을 띠는 데 대한 반감도 갖고 있는 듯하다. 한 재선의원은 “친이 직계 중 30명 정도가 이탈했다”고 말했다.

쇄신 논쟁의 핵심인 지도부 퇴진 여부가 결론을 내지 못함에 따라 박희태 대표 체제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 대표는 “내일 최고위원회를 열고 오늘 나온 얘기들을 집중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을 정했느냐는 질문에 “내 마음은 나도 모른다”며 말을 아꼈다. 당 안팎에선 4·29 재·보선 이후 계속돼 온 쇄신 논쟁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함에 따라 계파 간 분란이 계속되고 여당의 국정주도력은 갈수록 약화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원희룡 쇄신특위 위원장은 연찬회가 끝난 뒤 “현재 쇄신특위의 시계는 멈춰 있다”고 말했다.

과천=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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