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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13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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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체류하다 러 잠입 백모 여인 곧 남한行
한국영사관에도 “실정법 위반” 비난 화살
중국에서 체류하던 탈북자가 중국-러시아 국경을 넘어 난민 자격을 얻은 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러 일간지 ‘노동’에 따르면 2003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중국 옌지(廷吉) 시에 체류하던 탈북자 백모(여) 씨는 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과 한국영사관의 도움을 받아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체류하던 탈북자들이 난민 자격을 얻은 사례는 있었지만 중국에서 체류하던 탈북자가 러시아 국경을 넘어 난민 인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백 씨는 2003년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뒤 옌지에서 위조 중국 여권으로 생활해 왔다. 백 씨는 중국에서 컴퓨터를 배우던 도중 러시아에서 체류하던 탈북자 이모 씨를 인터넷에서 만났다. 이 씨는 러시아 국경수비대의 경비가 취약하고 월경하기 쉬운 곳을 사진으로 찍어 중국-러시아 국경 지도와 함께 백 씨에게 보냈다.
지난해 10월 백 씨는 중국에서 방수복을 사 입고 중-러 국경 가운데 수심이 얕은 그라니트나야 강을 건넜다.
백 씨는 러시아 국경수비대의 불심검문에 걸려 현장에서 체포될 뻔했지만 러시아 군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한인 교회에 잠입했다.
백 씨를 끈질기게 추적한 러시아 당국은 그를 체포해 러시아 법원으로 넘겼다. 백 씨가 재판을 받는 도중 한인 교회는 한국영사관과 UNHCR에 구명을 요청했다.
한국영사관과 UNHCR가 나서자 러시아 법원은 올해 1월 백 씨에게 징역 3개월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형벌을 선고했으며 백 씨는 올 3월 풀려났다.
하지만 3일 백 씨가 난민 자격을 얻은 뒤부터 러시아에선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노보스티 등 현지 언론들은 “백 씨 사건을 좌시할 경우 러시아가 탈북자들의 국적 세탁 장소가 될 뿐만 아니라 북-러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며 정부의 강한 대응을 촉구했다.
러시아 언론들은 또 한국영사관과 선교단체에 대해서도 “러시아 실정법을 무시하고 이민국 관리들을 위협했다”고 비난했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그동안 노동비자를 갖고 러시아에 입국한 탈북자에게 난민을 인정해 주는 문제 등에 대해선 러시아 정부의 ‘음성적인 협조’를 받아 왔다.
하지만 백 씨 사건은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불법 체류하고 있는 이른바 ‘꽃제비’들의 문제라서 러시아 당국이 반발한다는 것.
한 소식통들은 “러시아 당국이 백 씨 사건을 그대로 묵인했다가는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이 러시아로 대거 몰려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