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중앙언론사 도청정보 국세청 갔을까 청와대 갔을까

  • 입력 2005년 11월 19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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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들이닥친 국세청 직원들김대중 정부 시절 정부에 비판적이던 주요 언론사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진행될 무렵 국가정보원이 해당 언론사를 도청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2001년 2월 8일 세무조사 당시 주요 타깃이었던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에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쳐 각종 회계장부를 조사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언론사 들이닥친 국세청 직원들
김대중 정부 시절 정부에 비판적이던 주요 언론사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진행될 무렵 국가정보원이 해당 언론사를 도청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2001년 2월 8일 세무조사 당시 주요 타깃이었던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에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쳐 각종 회계장부를 조사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국세청으로 갔나, 청와대로 갔나.

국가정보원이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언론사를 도청한 배경과 수집한 도청 정보가 어디에 보고됐는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는 정권 차원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던 만큼 언론사 도청 정보가 국세청이나 정권 핵심으로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언론사 도청으로 정권의 의도를 뒷받침했다”=언론사 세무조사는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야당 등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권 차원에서 추진한 사안이었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2001년 1월 당시 김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언급한 지 한 달여 만인 2월 8일 전격적으로 착수됐다. 김 대통령이 언론개혁의 화두를 꺼내 분위기를 먼저 잡고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들어간 듯한 정황이었다.

이에 대해 야당 등은 언론사 세무조사가 “정권의 비판 언론 길들이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언론사 세무조사를 놓고 신문과 방송이 서로 다른 입장으로 나뉘는 등 사회적으로 극심한 편가르기 양상까지 나타났다.

이처럼 언론사 세무조사가 2001년 최대 이슈였고, 당시 김대중 정부의 핵심 관심사였던 만큼 국정원은 이들에 대한 정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언론사를 집중 도청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한 전직 직원은 “국정원은 언론사 세무조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돼야 정권이 안정된다는 명분을 가지고 언론사를 도청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무조사 실무를 하는 국세청에 언론사에 대한 내밀한 정보를 넘겨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세무조사를 받는 언론사의 준비 상황과 약점을 도청을 통해 미리 파악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은 당시 R2와 카스(CAS) 등 휴대전화 감청 장비를 본격 운용하면서 도청을 통해 각계 주요 인사의 동향을 24시간 감시했던 상황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언론사 도청이 가능했다.

▽언론사 정보는 어디로=언론사 사주와 간부 등에 대한 도청 정보는 일차적으로 세무조사를 맡은 국세청에 제공됐을 가능성이 있다. 통화 내용 도청에서 언론사의 ‘약점’이 파악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언론사 사주와 간부 등에 대한 휴대전화 번호를 대부분 파악해 세무조사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는 통화도 도청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사 사주 등에 대한 동향 정보는 국정원장을 통해 청와대 등 정권 수뇌부로 보고됐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장은 대통령의 관심이 가장 큰 사안 위주로 보고한다는 점에서 언론계 동향이 주요 보고 내용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DJ측 “할 얘기 없다”▼

국가정보원의 23개 중앙 언론사 사주와 간부 도청에 대해 한나라당은 “언론 자유를 말살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이정현(李貞鉉) 부대변인은 18일 구두 논평을 통해 “입만 열면 자유와 민주를 외치던 정권이 정치인은 물론 언론사까지 도청을 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이는 역대 정부가 해 온 많은 도청 가운데 가장 질이 고약한 것으로, 반드시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심재철(沈在哲) 의원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세무조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취득한 국정원 정보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김대중 대통령 정부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도청 진상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도청자료와 언론사 세무조사 연관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법학교수 출신인 이은영(李銀榮) 의원은 “불행한 과거지만 언론사를 포함해 모든 도청은 용납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다만 아직 검찰조사가 끝나지 않은 만큼 좀 더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웅래(盧雄來) 의원은 “사실이라면 언론 탄압이다. 우선 정보 수집을 위한 단순 도청인지, 언론을 정치에 이용할 목적이 담긴 ‘공작성 도청’인지 구체적인 실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동교동 측은 “할 얘기가 없다”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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