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권 출범 2년]386출신→전문가-관료 ‘靑 권력이동’ 뚜렷

  • 입력 2005년 2월 21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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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5일 취임 2주년을 맞는다. 지난 2년 동안 여권 내의 권력지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지난해 4·15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세대교체의 폭풍이 몰아쳤고 청와대와 정부에서도 파격과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특히 관료사회는 노 대통령이 주창한 ‘정부혁신’의 깃발 아래 임용-업무과정-평가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시스템 변화가 진행 중이다.》

노무현 정권의 인맥은 출범 2주년을 맞으면서 상당히 물갈이됐다.

집권 초기 노 대통령의 인맥은 대체로 386 학생운동권 출신 참모그룹,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활동을 함께했던 정치권 인사, 법조계 내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소장 학자 중심의 자문교수 그룹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전문관료 출신들이 청와대와 내각의 요직에 점차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기존의 인사들은 정치권과 정부, 청와대 등에 고루 재배치돼 당-정-청을 연결하는 범친노(親盧)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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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386 참모에서 전문가와 관료로=청와대의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 참석 멤버(장차관급) 15명 중에 2년 전 정부 출범 때부터 있었던 인사는 불과 4명. 출범 때 대통령정책실장을 맡았던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정책특보, 김세옥(金世鈺) 대통령경호실장,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내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거쳐 다시 돌아온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 이종석(李鍾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뿐이다.

비서관급 이상 인사 중에서도 초창기 멤버는 천호선(千皓宣) 국정상황실장, 윤태영(尹太瀛) 제1부속실장, 장준영(張俊榮) 사회조정1비서관을 비롯한 6명뿐이다.

노 대통령이 2003년 말 “새로운 친구를 사귀겠다”고 말한 뒤 청와대는 비서관급 이상인 53명 중에 42명이 새 얼굴로 바뀌었다. 물론 이 중에서 김종민(金鍾民) 대변인, 박남춘(朴南春) 인사제도비서관 등 비서관급 10명은 행정관으로 청와대에 들어왔다가 비서관으로 승진한 경우다. 그렇다 해도 3분의 2가량이 완전히 새 인물로 채워진 셈.

노 대통령과 아무 인연이 없음에도 현 정부 출범 당시 청와대에 들어간 외부 인사는 권오규(權五奎·현 주OECD 대사) 정책수석비서관, 반기문(潘基文·외교통상부 장관) 외교보좌관, 양인석(梁仁錫·변호사) 사정비서관, 허준영(許准榮·경찰청장) 치안비서관 등 10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연세대 총장 출신인 김우식(金雨植) 비서실장, 군 출신으로 국가정보원 1차장을 지낸 권진호(權鎭鎬) 국가안보보좌관, 행정관료 출신인 김완기(金完基) 인사수석비서관 등 20여 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 관료 출신만 16명이다.

▽정부에는 ‘신주류’ 부상=정부에는 정치권의 친노 인사와 자문교수 그룹, 초기 청와대 출신 등 여러 그룹이 재편돼 신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내각 출범 초기에는 대선 당시 자문그룹을 맡았던 대학교수 출신과 노 대통령의 코드에 맞는 파격적 인사들이 많이 기용됐다. 그러나 2003년 후반기부터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 김진표(金振杓) 교육부총리, 오명(吳明) 과학기술부총리, 반기문 외교, 김승규(金昇圭) 법무, 오영교(吳盈敎) 행정자치, 윤광웅(尹光雄) 국방 장관과 전윤철(田允喆) 감사원장 등 관료출신들이 새로 부상했다.

고영구(高泳耉) 국가정보원장,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韓勝憲)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 최영도(崔永道) 국가인권위원장 등 ‘민변’ 파워는 여전하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공직사회 변화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2년간 공직사회는 ‘혁신 열풍’에 휩싸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공직사회 혁신을 추진하기 위한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발족했다. 이어 서열 파괴와 공직 개방 등이 잇따랐다.

그 결과 대화와 토론이 이전 정부에 비해 활발해지고 권위적인 공직 문화도 어느 정도 바뀌었다. 그러나 혁신의 핵심인 ‘행정 프로세스의 혁신’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혁신의 주체인 공무원들은 ‘혁신’을 외치면서도 뭘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인사 개혁은 ‘태풍’=참여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관가를 엄습한 것은 인사 태풍. 연공서열 위주의 인사 문화에 익숙해 있던 공직사회에 처음 충격을 준 것은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과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 임명 등 노 대통령의 파격적인 장관 인사였다.

곧바로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서열 파괴 인사가 뒤따랐고, 그 결과는 세대교체로 이어졌다. 올해 2월 현재 1급 이상 고위 공직자의 평균 연령은 53.97세. 참여정부 출범 초기보다 1세가량 낮아졌다. 세대교체가 급격히 이뤄지면서 고위 공직자들 사이에서 ‘1급은 1년짜리’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돌고 있다.

공직을 외부에 개방하고 공무원 인사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것도 큰 변화. 지난해 말 현재 149개 개방형 직위 가운데 58개가 외부인사로 충원됐다. 2006년부터 3급 이상 공직은 ‘고위공무원단’이라는 인재풀에서 경쟁을 통해 임명된다. 이 같은 인사 개혁에 일부 간부들은 “상대 부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경쟁체제의 도입으로 ‘철밥통’이 사라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부처간 벽을 허물고 공직사회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원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게 공직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행정 혁신은 ‘무풍(無風)’=참여정부는 2003년 4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산하에 행정개혁전문위원회를 설치하고 성과 중심의 행정시스템 구축 등 10대 과제를 선정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시행단계에 들어선 과제는 3개에 불과하다. 공직사회 개혁 성과에 대한 공무원들의 전반적인 반응도 아직은 냉담한 편이다. 한 부처의 중간 간부는 “참여정부의 ‘혁신’을 문민정부의 ‘개혁’이나 국민의 정부의 ‘제2건국’처럼 정부가 바뀔 때마다 들고 나오는 구호로 여기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정용한 기자 yongari@donga.com

▼386 측근들 어디로▼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참모 그룹인 386 운동권 출신들은 참여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에 몰려 있었지만 지금은 여권 내부에 흩어져 있다.

386 참모의 맏형 격인 이호철(李鎬喆) 전 대통령민정비서관은 지난해 4월 청와대를 떠났지만 곧 복귀할 예정.

노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이광재(李光宰) 의원은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을 지내다 2003년 10월 썬앤문 사건에 연루돼 청와대를 떠난 뒤 지난해 총선 때 고향인 강원 평창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서갑원(徐甲源) 백원우(白元宇) 의원 등 청와대 참모 출신 386 의원들과 함께 의정연구센터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우(右)광재’와 함께 ‘좌(左)희정’으로 불리던 안희정(安熙正) 씨는 대선자금 수수사건으로 1년간 복역한 뒤 지난해 12월 출감해 칩거 중이다. 정윤재(鄭允在) 국무총리실 민정2비서관은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고 지난해 총선 때 부산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아직 청와대에 남아 있는 386 출신은 윤태영 제1부속실장과 천호선 국정상황실장,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부대변인, 황이수(黃二秀) 행사기획비서관 등. 제1부속실 행정관으로 있다가 롯데그룹 대선자금 수사에 연루돼 구속됐던 여택수(呂澤壽) 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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