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訪中]中지원 끌어내 경제난 돌파구 찾기

  • 입력 2004년 4월 20일 18시 45분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은 2001년 1월의 방문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점을 보여준다.

지난번 방문은 ‘7·1경제관리개선조치’로 상징되는 북한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계기가 됐지만, 지금은 북핵 문제라는 커다란 암초로 인해 실질적인 개혁 노력이 헛돌고 있는 상황이다. 방문 일정이 대단히 짧고 방문 목적도 실무적 성격이 짙다는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국제환경의 변화=지난번 중국 방문은 남북정상회담(2000년 6월) 이후 남북간의 각종 접촉과 교류가 활발하던 때 이뤄졌다. 내부적으로는 변화를 추진하는 ‘신사고(新思考)’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외부적으로는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출범(1월 20일) 전이었다. 북한이 한국의 지원에 힘입어 변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시점이다.

그러나 이번 방문에는 북핵 문제라는 국제사회의 최대 현안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은 이번에도 끈끈한 대미정책 공조를 과시했지만 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압력도 간간이 불거져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개혁 동력 얻을까=주목할 대목 중 하나는 두 번의 방문 사이에 추진된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김 위원장이 이번에 핵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아 7·1경제개혁의 동력을 다시 살려낼 수 있을 것인지가 관심사다.

악화된 북한의 경제상황은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 7·1조치를 통해 물가와 임금을 현실화했지만 물자 공급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불과 3개월 만에 터져 나온 북핵 위기로 인해 공급부족 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런 시점에 농촌 시범단지인 허베이(河北)성 한춘허(韓村河)를 찾은 것은 시사점이 적지 않다. 현재 북한의 경제수준으로 볼 때 무엇보다도 농촌 개혁, 농촌 현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김 위원장이 판단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핵 위기는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의 대북 지원마저 사실상 중단시켰다. 중국의 동북3성 진흥계획 및 부패척결 움직임과 부닥치면서 표류 상태인 신의주특구 개발계획을 다시 추진하기 위해서도 북핵 문제 해결이 선결 과제다.

지금은 2001년 중국 방문 때보다 훨씬 더 북한 스스로의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짧은 일정=김 위원장은 2001년 1주일간 중국을 방문했다. 이중 4일을 상하이(上海)에 머물면서 푸둥(浦東)의 하이테크 단지와 유전공학연구센터, 증권거래소 등을 둘러봤다. 반도체업체인 NEC와 자동차 제조회사인 GM 등 서방기업까지 방문해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중국 당국도 북한 최고지도자의 ‘시장경제 학습’에 각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중국은 김 위원장의 상하이 방문을 북한 개혁개방의 신호탄으로 파악하고 주룽지(朱鎔基) 당시 총리가 직접 안내에 나서도록 했고, 김 위원장은 푸둥을 보고 “상상을 초월하는 변모”라며 놀라워했다.

반면 이번에는 만 이틀간 베이징(北京)에 체류하면서 중국 지도부와 연쇄 회동을 가진 이외에는 다른 일정이 거의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결국 2001년 방문에 비해 이번 방문은 현안을 집중 논의하는 계산적 성격이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현장 견학’에 주력했던 지난번 방문과 달리 이번에는 양국 현안인 북핵과 대북 경제지원 문제 외에는 다른 사안을 논의한 흔적도 없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핵문제 해결 없이는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을 것이고, 김 위원장은 경제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지원을 적극 요청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정상회담은 감정적 요소가 많이 개입됐던 과거와 달리 국익에 입각해 서로 입장을 개진하는 차원에서 이뤄졌을 것”이라면서 “양국관계는 전통적 우방의 재확인이라는 원론적 수준에서 봉합됐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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