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대행, 盧배려 독자행보 자제…국회 시정연설 무산

  • 입력 2004년 3월 15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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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高建) 대통령 권한대행의 국회 시정(施政)연설이 고 대행의 완곡한 거부로 사실상 무산된 데 이어 사면법 개정안 처리도 고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둘 다 노무현 대통령을 배려한 성격이 크지만 향후 고 대행의 독자행보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된다.

▽한나라당의 고건 배려=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원내총무는 이날 “고 대행이 난처하지 않은 방향으로 처리하겠다”며 시정연설 요구를 사실상 철회했다.

고 대행은 14일 야3당의 시정연설 요구에 일단 “4당 합의가 필요하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탄핵 결정에 반발한 열린우리당이 임시국회 개원에 동의할 리 만무한 만큼 완곡히 거절한 셈이다.

그러나 고 대행 주변에서 “현 정국 파행이 여야간 정치싸움 때문에 빚어졌기 때문에 정치적 고려보다는 국민 불안을 덜기 위해서라도 국회에서 정책의지를 밝힐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견해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잡음이 일자 고 대행은 이날 간부회의에서 야당의 국회 참석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해 “총리실 간부의 사견이 잘못 알려져 혼선을 빚어선 안 된다”며 참모들을 질책했다.

▽“개정 사면법 거부할 듯”=고 대행은 이날 “23일 국무회의에서 (26일이 처리시한인) 사면법 개정안을 (거부할지, 공포할지를) 결정하겠지만, 관련 부처는 사전에 내 지침을 받으라”고 말했다. 2인자에서 반보 나간 모습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측이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임에도 국회가 ‘국회 의견을 구하라’는 조항을 사면법에 삽입한 것은 위헌”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데다 주무부처인 법무부의 공식 견해도 거부권 행사로 모아진 만큼 고 대행은 이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4·15총선을 앞둔 개정법안의 첫 적용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의 대북송금사건 관련자 사면 건. 한나라당은 거부권 행사 반대, 호남표를 의식한 민주당은 판단 유보, 열린우리당은 거부권 행사를 지지하고 있다.

▽여전히 허리 낮추는 고건=고 대행은 “대통령비서실은 앞으로 국정의 연속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은 노 대통령이 계속 파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박봉흠(朴奉欽) 대통령정책실장에게 지시했다.

고 대행은 이날 오전 김우식(金雨植)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 결과를 박 실장으로부터 보고받고 이같이 밝혔다. 박 실장은 또 대통령비서실 회의 결과를 고 대행에게 보고하고, 고 대행의 지시사항을 대통령비서실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는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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